특히 이 가운데 35건이 올해 선고됐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정부와 국회, 헌법재판소, 대법원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일선 판사들의 목소리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인천지법 이동기 판사는 지난 21일 현역병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입영하지 않은 혐의(병역법 위반)로
기소된 곽아무개(23)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04년 5월21일 서울남부지법 이정렬 판사가 종교적 이유로 입대하지 않은 오아무개씨 등 2명과
예비군 훈련을 받지 않은 황아무개씨 등 3명에게 처음 무죄를 선고한 뒤 52번째 무죄 판결이다.
이 판사는 “양심의 자유는 헌법의 최고 이념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와 직결됐다”며
“병역법 제88조 제1항을 적용해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고,
(곽씨에게) 병역의무 이행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껏 법원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적용해 징역 1년6개월의 ‘정찰제 판결’을 해왔다.
앞서 20일 부산지법 동부지원 권기철 부장판사도 양심적 병역거부자 2명의 무죄 판결문에서
“대체복무 기회를 제공하면 국가도 국가적·공익적 사업에 복무할 수 있는 자원을 얻고
민주국가의 이념적 정당성을 진전시킬 수 있어 안보 상황에 도움이 된다”며 대체복무제 도입을 요구했다.
2004년 첫 무죄 판결 뒤 2007년 1건, 2015년 6건, 2016년 7건이었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은
올해 35건으로 크게 늘었다.
무죄 판결에 동참한 판사 수도 22명이다.
법원의 잇따른 무죄 판결은 2007년 대체복무제 도입을 밝혔다가 번복한 정부의 방치,
17~19대 국회의 입법 좌절, 6년째 계속되는 헌법재판소의 최장기 심리와 무관하지 않다.
무죄를 선고했던 한 판사는 “헌재 등이 바뀔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공감대가 판사들 사이에서 넓어졌다”고 말했다.
수원지법 황재호 판사도 2015년 8월13일 무죄 판결문에서 “국회는 다수결 원리가 지배하고
헌재도 합헌 결정을 한 선례가 있다”고 짚은 뒤 “법원은 ‘정당한 사유’의 해석을 통해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고,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은 법원에
주어진 임무이자 의무”라며 법원의 역할을 강조했다.
연이은 무죄 판결 속에서 대체복무제가 도입될지 주목된다.
대체복무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7월 다시 도입을 권고했다.
전해철·이철희·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대체복무제 도입 법안을 발의했고,
국방부는 지난 19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여론조사 등을 통해 종합 대책 마련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2심 무죄 판결 3건을 심리 중인데,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할 필요성이 있지만,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밝힌 김명수 신임 대법원장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변호하는 오두진 변호사는 “국회와 정부, 대법원과 헌재가 자신의 위치에서
해마다 수백명이 감옥에 가는 집단적인 인권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