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하세요, 회원님?
대구에서 글하나 올려 봅니다.
우리 아부지(?) 이승을 떠난지 8년이 가까워 옵니다.
위의 글에서도 밝혔듯이...아부지의 막걸이 한되 60원 이였습니다.
때는 1970년 제가 대구 원대동 오거리 싸롱(?)근처에 살았을때 이야기 입니다.
요기 김 승수 얼쒼(?) 께서는 대구 원대동 오거리 쌀롱 하시면 금방 알아 체리실거라 압니다.
제가 국민학교 다닐때 우리 작고한 아부지는 그시절 대구 제일모직(아직도 대구역 근처에는 제일모직 사택이 이 있습니다) 다녔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와서 저에게 주전자를 주면서 근처 막걸리 집에가서 막걸리 한되를 받아 오라고 저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
그럼 잽싸게 달려가 막걸리를 받아 왔습니다.
막걸리집은 길거리에 있었으면 큰장독에 얼음 주머니가 들어 있는 독안을 쪽대(?)를 휘 저으며 한되를 받아옵니다.(그때만 하더라도 2차선 도로 였습니다)
막걸리 집에서 집까지 거리는100미터거리 히야시(?) 된 막걸리를 들고오면서 주전자를 입에 대고 막모금 마셔 봅니다.
이게 탁주인데.... 무슨 맛일까???
그렇게 한두모금 마시고 들고오면...우리 아부지는 분명히 한되의 정량을 아십니다.
조금 모자라는 한되를 갔다 드리고난후....저는 옥상에 올라가 먼하늘을 바라 봅니다.
이시절 저는 원대오거리 근처(현 대구은행자리)천막을 치고 스커스 구경도 했습니다.
원대동을 지나 남쪽으로 걸어거면 다릿발에 말발굽 갈아주는 것도 보았고 기차 철길을 걸어 남쪽으로 가면 비산동이 비산성당도 있었습니다.
우째 그때 그시절은 묵을것이 그렇게 모자랐는지....???
저는 나이가 얼마되지 않는 중년 입니다.
69년 대구 부민극장(지금은 없어졌음) 쑈 할때 젊은 청년 나훈아(이때만 하더라도 티브 메스컴 나오기전에 극장 쑈에 많이 나왔음) 도 보았으면,일원짜리 지폐도 쓰보았고, 해태 풍선껌도 씹어보고,그시절 미국원조 옥수수 가루로 만든 옥수수빵(4-5개 들이) 도 묵어 봣습니다.
저는 지금 미군부대 복직해서 정년될때 까지 열심히 근무 잘하고 잇습니다.
(*세월 말이죠 눈 끔뻑끔뻑하고 지나보니 40년시간 후딱 가버립디다.결론은 흘러가는시간 헛되이 보내지 맙시다)
다음에는 연도순대로 다시 글을 한번 올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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