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예전에 병원근무를 했었다.
동료 두 명과 오전 8 시부터 오후 5 시까지 주간근무를 하고,
또 한 명의 선배동료는 오후 5 시부터 새벽 2 시까지 야간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야간근무하는 선배동료와 얼굴을 보는 시간은,
오후 5 시 교대시간뿐이었다.
물론 일요일 쉬는날에는 이 선배의 집에 놀러를 가서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시골로 달려가,
개울가 풀숲에서,
그물족대로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소주 한 잔을 부딪치는 등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근데 이 선배형님의 특징이,
말을 할때면 꼭 욕을 섞어 얘기를 하는데,
그 욕이라는게 상당히 걸죽하다.
마치 유명한 욕쟁이할머니가 연상되는 그런 욕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욕을 먹고도 기분이 나쁘지않고 배꼽 잡고 웃을수 있었던 사람은 이 선배형님 한 분 뿐이다.
이 선배형님은 형수님과 함께 초등학교앞에서 떡볶이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가끔 놀러가보면 장사가 얼마나 잘되는지,
프라스틱 광주리안에, 백원짜리와 오백원짜리 동전이 금새 수북이 쌓이곤 했다.
천성이 부지런한분이라,
야간근무가 끝난 다음날이면 장사를 도와주고 다시 또 야간근무를 위해 출근을 하곤 했다.
나는 이렇게 야간근무를 하고 다음날에 또 돈을버는 이 형님의 근무환경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나도,
야간근무에 비해 노동강도가 빡셌던 주간근무를 벗어나 야간근무를 하고싶었다.
그러나 내가 이 선배형님보다 늦게 입사를 했고,
이 형님이 버티고있는한 내가 야간근무자리를 차지할 확률은 거의 제로였다.
그저 이 선배형님의 부지런함과 남부럽잖은 재력이 부럽기만 할 뿐이었다.
얼마간의 세월이 흘러, 나는 조건이 좋은 다른 병원에 취업을 하게되었다.
이 선배형님과의 만남이 뜸해지게 되었는데,
그래도 가끔씩 안부전화도 나누고 드문드문 만남은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몆 년이 지난 어느날 초저녁..
형수님으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너머로 울먹이는 형수님의 목소리...
"오늘 형님이 죽었어.."
"예!? 그게 뭔소리요?"
다급히 마눌님과 함께 영안실이 있는 xx종합병원으로 달려갔다.
얘기를 들어보니,
느닷없이 낙지젓갈이 먹고싶다며 오토바이를 타고 시장에 젓갈을 사러가다가,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오토바이와 부딪치며 몸이 공중에 붕 뜨면서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뇌진탕으로 사망하셨다는거다.
평소에 헬멧을 거의 쓰지않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했는데,
일이 이지경이 되었으니 이미 때늦은 후회다.
이후 선배형님의 집은 한번도 가지않았다.
형수님의 얼굴을 보면, 선배형님의 모습이 떠올라 울컥해지는 마음을 가다듬기 어려울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있다는게 무슨 의미인가?
같이 살아 희로애락을 함께 나눌수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에피소드 2
나는 한때 오토바이 타는것에 미쳐 행복했었다.
오토바이 안장에 올라타, 급격한 코너를 칼로 종잇장을 오려내듯 매끈하게 휘돌아 빠져나갈때는
정말 이대로 죽어도 좋다 라는 쾌감이 느껴졌었다.
어디에 한번 빠지면 끝까지 가보는 스타일이라, 대형오토바이를 타보고 싶어졌다.
같은 취미를 가졌던 동네 대학생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이 동생 또한 나 이상으로 오토바이를 좋아하여,
같이 예산에 있는 운전면허시험장에 2종소형 면허시험을 치르러 갔다.
시험기종이 혼다 CB 400 네이키드형이었는데,
처음 올라 타보는 이 오토바이는, 시트고도 높고 무게 또한 육중하여 중심잡는것조차 쉽지 않았다.
출발신호와 함께 첫번째 코너에 진입하였는데,
그만 무게중심을 잃어 앞바퀴가 검지선에 닿는 바람에 이탈하여 불합격!..ㅠㅠ
근데 대학생동생은 젊고 순발력이 뛰어나서인지 한번에 합격!
잘해서 합격한거니 축하를 하면서도 나의 속은 편하지가 않았다.
나름 오토바이를 잘탄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고배를 마시고나니 동생앞에서 표를 내지는 않았지만,
쪽팔려 죽는줄 알았다.
자존심이 상하여 집으로 돌아와,
홀로 쓴소주 한병을 까놓고 쓰라린 마음을 달래었다ㅋ
한방에 합격한 동생은 며칠뒤 혼다 CBR 900RR을 구입해
같이 투어를 다녔는데,
앞서가던 동생이 후까시 한번만 주면,
머플러 특유의 굉음을 내며 총알같이 튀어나가 금방 시야에서 점으로 바뀌며 보이지도 않았다.
엑시브 125cc로는 죽었다깨어나도 따라잡을수 없는 가공할 위력이었다.
엄청 부러웠다..ㅠㅠ
면허시험을 세 번 더 떨어지고나니,
이래서는 안되겠다싶어, 제천에있는 자동차운전학원을 찾아가 3 일동안 CB 400을 타고 코스연습을 했다.
제천까지 가게된 것은,
당시 오토바이를 구비해놓고 연습을 할수있게 해주는곳 중에서는, 제천이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다.
3 일동안 하루 500 번씩 코스를 돌고나니,
나중엔 CB 400오토바이가 내몸의 일부가 된듯,
마치 어린애가 장난감 갖고놀듯 마음대로 콘트롤을 할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예산 면허시험장에 다시 도전!
결론은 당연히(?) 합격!
마치 하늘에 떠있는 구름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ㅎ ㅎ
드디어 나도 대형오토바이를 샀다.
여기저기 참 많이도 놀러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밤 새벽 2 시.. 비몽사몽 잠결에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대학생동생의 친구였는데,
오늘 낮에 CBR 900RR을 타고 달리던 대학생동생이,
oo마트앞 대로에서 불법유턴하던 갤로퍼차량과 충돌하여 현장에서 즉사했다는거다.
충격과 공포였다.
새벽 2시 30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부랴부랴 영안실이 있는 ㅇㅇ종합병원으로 달려갔다.
믿을수없었지만 대학생동생의 활짝 웃고있는 영정사진이 그곳에 있었다.
이후,
한때 오토바이를 타다가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마음이 변하여 타던 오토바이를 처분하였다.
내가 살아있다는게 무슨 의미인가?
같이 살아 희로애락을 함께 나눌수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