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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않는 사람들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7-07-25 15:01:12
추천수 14
조회수   1,968

제목

잊혀지지않는 사람들

글쓴이

조창연 [가입일자 : 2014-08-08]
내용






 


 


 


 




에피소드 1


 


 


예전에 병원근무를 했었다.

동료 두 명과 오전 8 시부터 오후 5 시까지 주간근무를 하고,

또 한 명의 선배동료는 오후 5 시부터 새벽 2 시까지 야간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야간근무하는 선배동료와 얼굴을 보는 시간은,

오후 5 시 교대시간뿐이었다.

물론 일요일 쉬는날에는 이 선배의 집에 놀러를 가서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시골로 달려가,

개울가 풀숲에서,

그물족대로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소주 한 잔을 부딪치는 등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근데 이 선배형님의 특징이,

말을 할때면 꼭 욕을 섞어 얘기를 하는데,

그 욕이라는게 상당히 걸죽하다.

마치 유명한 욕쟁이할머니가 연상되는 그런 욕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욕을 먹고도 기분이 나쁘지않고 배꼽 잡고 웃을수 있었던 사람은 이 선배형님 한 분 뿐이다.




이 선배형님은 형수님과 함께 초등학교앞에서 떡볶이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가끔 놀러가보면 장사가 얼마나 잘되는지,

프라스틱 광주리안에, 백원짜리와 오백원짜리 동전이 금새 수북이 쌓이곤 했다.

천성이 부지런한분이라,

야간근무가 끝난 다음날이면 장사를 도와주고 다시 또 야간근무를 위해 출근을 하곤 했다.




나는 이렇게 야간근무를 하고 다음날에 또 돈을버는 이 형님의 근무환경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나도,

야간근무에 비해 노동강도가 빡셌던 주간근무를 벗어나 야간근무를 하고싶었다.

그러나 내가 이 선배형님보다 늦게 입사를 했고,

이 형님이 버티고있는한 내가 야간근무자리를 차지할 확률은 거의 제로였다.

그저 이 선배형님의 부지런함과 남부럽잖은 재력이 부럽기만 할 뿐이었다.




얼마간의 세월이 흘러, 나는 조건이 좋은 다른 병원에 취업을 하게되었다.

이 선배형님과의 만남이 뜸해지게 되었는데,

그래도 가끔씩 안부전화도 나누고 드문드문 만남은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몆 년이 지난 어느날 초저녁..

형수님으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너머로 울먹이는 형수님의 목소리...

"오늘 형님이 죽었어.."

"예!? 그게 뭔소리요?"




다급히 마눌님과 함께 영안실이 있는 xx종합병원으로 달려갔다.

얘기를 들어보니,

느닷없이 낙지젓갈이 먹고싶다며 오토바이를 타고 시장에 젓갈을 사러가다가,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오토바이와 부딪치며 몸이 공중에 붕 뜨면서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뇌진탕으로 사망하셨다는거다.

평소에 헬멧을 거의 쓰지않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했는데,

일이 이지경이 되었으니 이미 때늦은 후회다.




이후 선배형님의 집은 한번도 가지않았다.

형수님의 얼굴을 보면, 선배형님의 모습이 떠올라 울컥해지는 마음을 가다듬기 어려울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있다는게 무슨 의미인가?

같이 살아 희로애락을 함께 나눌수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에피소드 2




나는 한때 오토바이 타는것에 미쳐 행복했었다.

오토바이 안장에 올라타, 급격한 코너를 칼로 종잇장을 오려내듯 매끈하게 휘돌아 빠져나갈때는

정말 이대로 죽어도 좋다 라는 쾌감이 느껴졌었다.

어디에 한번 빠지면 끝까지 가보는 스타일이라, 대형오토바이를 타보고 싶어졌다.

같은 취미를 가졌던 동네 대학생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이 동생 또한 나 이상으로 오토바이를 좋아하여,

같이 예산에 있는 운전면허시험장에 2종소형 면허시험을 치르러 갔다.

시험기종이 혼다 CB 400 네이키드형이었는데,

처음 올라 타보는 이 오토바이는, 시트고도 높고 무게 또한 육중하여 중심잡는것조차 쉽지 않았다.

출발신호와 함께 첫번째 코너에 진입하였는데,

그만 무게중심을 잃어 앞바퀴가 검지선에 닿는 바람에 이탈하여 불합격!..ㅠㅠ

근데 대학생동생은 젊고 순발력이 뛰어나서인지 한번에 합격!

잘해서 합격한거니 축하를 하면서도 나의 속은 편하지가 않았다.

나름 오토바이를 잘탄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고배를 마시고나니 동생앞에서 표를 내지는 않았지만,

쪽팔려 죽는줄 알았다.

자존심이 상하여 집으로 돌아와,

홀로 쓴소주 한병을 까놓고 쓰라린 마음을 달래었다ㅋ


 


한방에 합격한 동생은 며칠뒤 혼다 CBR 900RR을 구입해

같이 투어를 다녔는데,

앞서가던 동생이 후까시 한번만 주면,

머플러 특유의 굉음을 내며 총알같이 튀어나가 금방 시야에서 점으로 바뀌며 보이지도 않았다.

엑시브 125cc로는 죽었다깨어나도 따라잡을수 없는 가공할 위력이었다.

엄청 부러웠다..ㅠㅠ


 


면허시험을 세 번 더 떨어지고나니,

이래서는 안되겠다싶어, 제천에있는 자동차운전학원을 찾아가 3 일동안 CB 400을 타고 코스연습을 했다.

제천까지 가게된 것은,

당시 오토바이를 구비해놓고 연습을 할수있게 해주는곳 중에서는, 제천이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다.

3 일동안 하루 500 번씩 코스를 돌고나니,

나중엔 CB 400오토바이가 내몸의 일부가 된듯,

마치 어린애가 장난감 갖고놀듯 마음대로 콘트롤을 할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예산 면허시험장에 다시 도전!

결론은 당연히(?) 합격!

마치 하늘에 떠있는 구름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ㅎ ㅎ


 


드디어 나도 대형오토바이를 샀다.

여기저기 참 많이도 놀러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밤 새벽 2 시.. 비몽사몽 잠결에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대학생동생의 친구였는데,

오늘 낮에 CBR 900RR을 타고 달리던 대학생동생이,

oo마트앞 대로에서 불법유턴하던 갤로퍼차량과 충돌하여 현장에서 즉사했다는거다.

충격과 공포였다.

새벽 2시 30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부랴부랴 영안실이 있는 ㅇㅇ종합병원으로 달려갔다.

믿을수없었지만 대학생동생의 활짝 웃고있는 영정사진이 그곳에 있었다.


 


이후,

한때 오토바이를 타다가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마음이 변하여 타던 오토바이를 처분하였다.




내가 살아있다는게 무슨 의미인가?

같이 살아 희로애락을 함께 나눌수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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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신 2017-07-25 15:19:19
답글

죄송한 말씀이지만,모터사이클은

과부제조기 로 유명하지요.

저의 사촌 남동생도 오토바이 타던중
스무살 초반에 콘크리트
벽에..이승을 떠났드랬죠.

남자탤런트들 사망사고 대부분은 교통사고
인데,모터사이클 사고도 한몫하는거
같습니다.

조창연 2017-07-25 16:00:36

    두신님.. 죄송할게 뭐있나요 맞는 말씀 하신걸요.. ㅎ ㅎ
어제 점심때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에, 비도 피하고 점심식사도 해결할겸
중국집에 짜장면 한그릇을 먹으러 들어갔습니다.
우체부아저씨가 식사를 막 마치고 우편물을 배달하려고,
우의를 주섬주섬 챙겨입더군요.
본인이 좋아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은 어쩔수없다 치더라도,
직업적으로 안할수가 없으니,
저 쏟아지는 비를 뚫고 위험을 감수하며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도 많아,
안스럽기도 하면서 안전운행을 하셨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봤습니다.

전성일 2017-07-25 16:03:16
답글

스무나무살에 먼저 하늘나라간 불x친구가 있는데..그 친구와 헤어져 이십여년을 살아가면서 저도 가끔 되묻는 말이...

그때 간 너와 지금까지 살아있는 나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더 산만큼 행복한건가?....뭐 이런 생각이 꾸준히 들지만..

사람은 모름지기 살아있을때 가치가 가장 높은것으로 ,..자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창연 2017-07-26 10:20:02

    성일님.. 살아있을때 가치가 가장 높은것 이란 말씀에 공감합니다.
살아있어야 좋아하든 미워하든 할텐데,
미워하던 사람도 한번 가고나면 화해할 기회마저 없어져 버리죠.
알던 사람이 없어진다는건 두고두고 마음아픈 일입니다.

권태형 2017-07-25 16:39:26
답글

스무살에 내가 죽었다면 아버지 보다 먼저 죽는 불효를 저질렀을 것이고..
이 좋은 술도 제대로 못 마셔보았을 것이고..
술 먹다가 우리 와이프를 만나지도 못했을거고..
오디오는 개뿔이고..
자전거는 개뿔이고..
우리집 강아지들도 못 만났겠지요.

스무살 넘어서도 제법 많은 인연들이 이어지네요..
요즘은 와이프랑 손 잡고 남겨두고 먼저가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조창연 2017-07-26 10:20:45

    태형님.. 사람의 운명이 내맘대로 할수가 있는게 아니겠지만,
자연재해나 사고사 자연사 병사만 아니라면,
위험이 수반되는건 본인이 인지할수 있으니,
나와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절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염일진 2017-07-25 17:01:56
답글

다이나믹도 좋지만...
절제를 해야죠..

조창연 2017-07-26 10:21:35

    1진을쉰.. 앞으로 다이나믹은 몸에 해롭지않은 오디오로 해야겠습니다 ㅎ ㅎ

이종호 2017-07-25 17:53:36
답글

저도 30대 중반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 아들놈 앞에 태우고 종로 교보문고에 책을 사러 갔다 지금은 없어진 청계고가 밑을 달려 집으로 오던 중
복개된 둔턱에 바퀴가 걸리면서 눈깜짝 할 새에 아들놈을 에어백 삼아
그위로 엎어지고 제 위로 오토바이(제파)가 올라타는 사고가 난 뒤
바로 그 다음날 치킨집을 하던 친구넘에게 그냥 가져가라고 했는데
그 오토바이로 배달도 잘 가고 잘 쓰던 놈이 어느날 병원에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고 갔는데 멀쩡히 서 있는 덤프트럭 밑으로 기어들어가
오른쪽 쇄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그 오토바이는 폐기 처분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ㅡ.,ㅜ^

전성일 2017-07-25 18:01:53

    그니까..칭구분께 흉기를 드린거군요.....3=3=3

이수영 2017-07-25 18:18:41

    나뻤어요~ 친구한테...

이종호 2017-07-25 19:19:53

    내 이 드런 잉간들을 걍 확....ㅡ.,ㅜ^

김승수 2017-07-25 19:45:28

    주기도 하시능군요 .. ★일이네요ㅡㅡ;;

이종호 2017-07-25 22:01:10

    갈취만이 내세상 이었던 시절이 그리워짐돠 ㅡ.,ㅜ^

조창연 2017-07-26 10:22:27

    종호엉아가 누구에게 뭘 줬다는소린 첨 들어봅니다
★일이긴 하네요 ㅋ ㅋ

이종호 2017-07-26 12:11:18

    우이쒸...ㅡ,.ㅜ^
내 이 드런 녕감탱이를 걍 확.....

임향택 2017-07-25 18:36:52
답글

짠~~~ 하네요.. ㅠㅠ

조창연 2017-07-26 10:23:22

    향택님.. 몆년이 지났지만 요즘도 가끔씩 그 모습이 떠올라 짠합니다..ㅠㅜ

이영록 2017-07-25 18:58:08
답글

IMF 직후에 110CC 제파(스쿠터)로 처음 시작했습니다.
이후 유니텔 중고장터에서 1,200KM 탄 거의 새것 같은 마그마를 구입했죠.
마그마 사러 망원동에 가니까 차주는 과천지역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약혼자가 오토바이 팔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는다해서 처분한다고 하더군요.
조금 가격내고를 하려다 여의치 않고 메뉴얼바이크 운전도 못해서 그만두려니
몰래 지켜보던 온 식구들이 모두 나와서 그냥 가져가라더군요 ^^
부품을 구할 수 없어 마지막 처분까지 약 17년을 탄 것 같네요.
제파 스쿠터로는 넘어져서 깁스까지 하고,
마그마 때는 크게 다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몇차례 넘어진 적이 있습니다.
오토바이 위험하죠.
우리 애가 탄다고 했으면 바로 처분했을텐데 다행이 우리애는 관심을 안보이네요.
근 20년 가까이 출퇴근용으로 타고 있네요.
편리함을 포기하기 어려워요.
처음에는 아침일찍 직장근처 체육관에 운동하러 가려고 타기 시작했는데
결국은 오토바이를 타니까 별로 걷지 않아 운동부족으로 몸이 불고ㅠㅠ
2년 전에 2종소형면허를 땄는데 3년 이상 걸려서 20회이상 낙방 끝에 정말 어렵게 합격했네요.
지금은 250CC 대림 데이스타로 출퇴근합니다,.

조창연 2017-07-26 10:24:40

    영록님께서도 오토바이를 오래 타셨군요.
저도 큰오토바이를 처분한 이후,
동네마실용으로 구입한 씨티에이스 110을 14 년 째 타고있습니다.
말씀처럼 편리함을 포기하기 어렵다보니까 가까운 거리도 걷지않게 되어,
운동부족으로 배가.. ㅎ ㅎ

henry8585@yahoo.co.kr 2017-07-25 20:24:18
답글

이제 저도 50대 중반...3년후엔 환갑. 저하고 같은 해에 태어 났지만,이미 저보다 먼저간 친구들도 많이있고,올때는 순서가 있는데 갈때는 순서가 없어요.
창연님, 말씀 하니깐 생각이 납니다. 1976년도 중학교 3학년때 급우한명 수영장 갈돈이 없어,대구 강창교(지금도 있음)에 수영갔다가 물쌀에 휘말려 호부 16살에 심장마비로 이미 40년전에 이세상을 보냈습니다.
비피해로 고생하시는 분에게는 미안 하지만 오늘대구에는 장마기간에 비구경(?) 오늘 쪼메 해 봤습니다.

조창연 2017-07-26 10:25:35

    선태님.. 누구나 가슴한켠에 아픈 기억 한 두가지는 있을겁니다.
살아있슴에 감사하고 타인에게, '그래도 그사람 괜찮은 사람이었어'
하는 기억정도는 남게 잘살아야겠습니다.^^

진성기 2017-07-25 23:13:29
답글

오늘 진주까지 가서 친한 선배 장례미사에 다녀 았습니다.
참 열심히 살았던 사람인데
두달 전 고향 집에 서 췌장암 투병중 얘길 듣고 문안차 진주에서 산청 가는 길목의 시골마을에 까지 갔었습니다.
그 마을에 있는 서당지기 집이 비어 있어서 그곳에서 자연 식으로 치료중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이 치료로 나을것을 확신 한다고 말했었습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췌장암은 아직 별
뾰족한 치료가 없어 거의 사망 하는 병이라
병원치료 거부하고 나름 자연 요법에 의지하고 있는 선배에게 병원 가란 말 을 못하게[ㅆ더군요.
그래서 그 자연 요법 에 관한 이론 을 듣고 저도 확신 시켜 주었습니다,
분명 병원 치료보다는 훨 좋을 거라고
의사인 저의 격려가 힘이 되었던 모양이니다.

하지만 두달만에 들려온 사망 소식
놀라지는 않았지만 알고 지냈던 지난 40년의 기억 들 땜에 맘이 많이 허전 하고 멍합니다
같이 친하게 어울렸던 40년 지기들 중 10여년전에 갑자기 죽은 친구 생각도 나고
하필이면 죽은 두 명 다 약사네요.
이제 그 친구의 죽음에서는 슬픔도 멍한 마음도 다 가셔지고
가끔 하제에서 더올리는 그의 이름에서도 허전함이나 슬픔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지만
아직도 우린 잊지 못하고 있어 오늘 장례 미사 끝에서도 얘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떠나 보낸 선배의 죽음 그 슬픔도 시간이 흐르면 보고싶다는 마음으로 바꿔 지겠지요.

조창연 2017-07-26 10:26:48

    성기님.. 선배님의 명복을 빕니다.
인명은 재천이라 병원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경우가 있죠.
친하게 지내셨다니 더 마음이 아프시겠습니다.
말씀처럼 슬픔도 곧 보고싶은 마음으로 바뀌며 담담해지실겁니다.

조영석 2017-07-26 10:42:23
답글

오토바이로 전국 여행하는게 소원이었는데 창연 님 말씀 들어보니 이게 자살행이네요.

명이 오토바이에 실린 걸까요, 아님 오토바이는 계기에 불과한 것일까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네요. 인명재천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조창연 2017-07-26 11:13:44

    영석님.. 인명은 재천이란 말이 맞는듯도 합니다.
저도 오토바이를 오래 탔고,
단독 3박 4일 일정으로 강원도일주 투어를 다녀온적도 있습니다.
제가 아직 살아있는것은 오토바이를 잘타서라기 보다 그저 운이 좋았을뿐이죠.
그 운이란 것도 결국 재천이라 볼수있는거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바이를 타던 제 지인 몆 분은 세상을 달리했습니다.
그런걸로보면 오토바이가 위험을 안고있는것도 사실입니다.
어차피 수명이 그것밖에 안된다면, 그 사람은 오토바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안으로 엮일수 있겠지만,
아무튼 제 경험상 오토바이가 위험한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타시겠다면 그것 또한 본인의 선택이겠지만,
저에게 조언을 구하신다면 저는 말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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