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이었던가 "계림문고"라는 세계명작들을 문고판으로 만들어서 팔던 회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흔적이 있을지나 모르겠는데 "브람스토커의 드라큘라"부터 펄벅의 "대지"와 삼국지까지도 존재했던 그곳에 "웃음짓는 초상화"라는 이름으로 번한이 된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아직 인간이 다다르지 못한 미지의 세계 중 하나라면 아마도 사후의 세계일텐데 영원히 젊음을 유지한 채 살고 싶다는 부질없는 욕망을 그린 소설로 기억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무신론자임을 표방하지만 유년시절의 언젠가 "최후의 심판"이라는 소재로 몸서리를 쳤던 기억이 나는데 성년이 된 지금에 있어서는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가 말했던 것처럼
"죽음의 강을 건너는 것 역시도 인생의 한 과정일뿐이다."라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인생의 신생사멸은 고통스럽기도 하고 자신이 시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그 삶의 이면이면에는 그 세대가 아니면 만끽할 수 없는 어떠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암암리에 받아들이기 때문에 죽음 역시도 인생의 한 과정이며 고통이 아닌 거쳐야 할 하나의 관문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서른이 넘어버리니 다소 늙은 걸까요? 씨익~) 이러한 이야기는 영화
"하이랜더"에서도 묘사가 되는데요. 그들이 받았던 형벌이자 저주는 서로를 죽이고 죽이는 가운데 마지막 하나 남은 사람이 받게 되는 상은 인류의 지혜의 총 집산과 더불어 가족들에게 둘러쌓여 죽을 수 있는 인간의 행복을 선사받는 것이었지요.
뱀파이어 헌터 D는 그 화려한 액션과 작화수준의 이전에 이러한 인간이 겪어야 하는 과정인 죽음을 겪지 못하고 영원히 살아야 하는 한 아웃사이더의 슬픔이 가득하게 베어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하며 글을 시작해 봅니다.
이 작품은 참 여러가지로 눈에 띄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굳이 쟝르를 갈라야 한다면 하드코어류에 분할이 될 정도로 처절한 잔인함이 곳곳에 배어있음에도 마치 "킬빌 Vol.1"이 표방하는 잔인의 미학처럼 그 자체가 그다지 눈쌀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도 아니었으며 적어도 2시간이라는 한정된 극장판임에도 불구하고 주는 메세지가 뚜렷하다는 점인데요. 저에게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이 남았던 부분은 그 수많은 화려한 액션은 아니었습니다.
이야기 중반에 헌터인 레일라는 그녀의 경쟁자인 던필에게 농담처럼 말을 건냅니다. 우리 중 누군가가 먼저 죽게 된다면 그의 무덤 앞에 꽃을 바치자고... 그리고 그 수많은 액션이 지나간 다음 몇십년이 흐른 이후에 평화가 찾아온 대지에 한 장례식이 치뤄집니다. 그리고 레일라를 빼다박은 한 소녀가 나무그늘에 서 있는 창백한 남자에게 다가가서 이야기를 거는데... 그 창백한 얼굴을 지닌 이는 다름아닌 저주를 받은 것처럼 영원한 젊음을 지닌 던필이었습니다. 그는 몇 십년전에 농담처럼 던져졌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곳에 왔고 레일라의 우려와는 달리 수많은 그녀를 사랑하는 가족들이 그녀에게 꽃을 바치는 것을 보며 안도하고 다시금 그 끝이 없는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작품이 멋있게 보이는 것은 우리의 삶과 인생과는 다소 상반된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의 주요흐름을 담당하는 4명의 주인공 던필, 레이라, 샬롯트와 마이어 링크는 그들에게 주워진 운명대로 살았다면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열정에 따라 운명과 당당하게 대치하지요. 이 작품이
카타르시스(일명 설사?!? ^^)를 느끼게 하는 이유는
운명의 수레바퀴에 거슬린 삶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낳는가를 아는 우리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삶은 평범하고 남들처럼 사는 것에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시청하는 입장에서 느껴지는 환기작용이 무엇보다 크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이 작품을 만약 감상하실 기회가 된다면 THX Ultra2 /7.1채널이 갖춰진 빠방한 사운드에서 대형화면으로 보실것을 권장하고 싶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화면이 좋고 사운드 효과가 좋은 애니메이션이 상당히 많이 있긴 하지만 끊임없는 리어와 리어센터의 잔향효과와 과거인지 현재인지 모르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혼재된 중세적 세계관이 표방된 상당히 큰 스케일의 애니메이션이기에 잘된 시스템에서 보았을 때는 감동의 크기가 작지 않을 듯 합니다.
초반부터 숨가쁘게 리어와 리어센터로 빽빽하게 차오르는 박쥐의 날개짓과 몇개인지도 모르는 화살이 구울러에게 명중하는 장면들과 전투장면, 그리고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후반부 여자 뱀파이어의 성에 갔을 때 뱀파이어의 목소리가 좌측 프론트, 좌측 리어, 좌측 리어센터, 우측 리어센터, 우측 리어, 우측 프론트로 이동하는 장면은 AV유저로서는 짜릿!!!한 쾌감을 느낄수 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작품의 감독이나 원작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애써
어떤 감독의 어떤 영화라든지 어떤 배우의 어떤 영화라는 식의 카피라이트를 쓴 영화치고 그다지 재미있던 영화가 거의 없었던 것처럼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흐림없는 맑은 눈으로 판단하는게 가장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요? 과거에 수많은 명작들이 있었다면 아마 이 작품은 근래의 AV적 쾌감을 만족시키면서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하드코어나 하드 스릴러에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를 쓰는 것은 다소 넌센스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무가 아닌 숲을 보듯 애니메이션 전체를 두고 본다면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었을까요....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