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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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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5 13:3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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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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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석 [가입일자 : ]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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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는 아무리 많이 들어도 귀가 아프지 않고 늘 반가운 낱말 가운데 첫손 꼽힐 것이다. 그런데 일제 침략 뒤로 일본 한자말 ‘감사하다’에 짓밟히고, 광복 뒤로 미국말 ‘땡큐’에 밀려서 안방을 빼앗기고 내쫓겨 요즘은 목숨마저 간당간당한다. 우리말을 아끼고 가꾸려는 뜻을 굳게 세우고 생각의 끈을 단단히 다잡는 사람이 아니면 입에서 ‘감사하다’ 소리가 절로 나오고, 새로운 세상에 남보다 앞장서려는 사람들 입에서는 ‘땡큐’ 소리까지 보란 듯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 우리는 "땡큐",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고맙습니다"라고 했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고맙다’는 ‘곰’에서 말미암았다. 단군 이야기에 단군을 낳으신 어머니로 나오는 ‘곰’, 굴 속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며 백일기도를 드리고 마침내 사람으로 탈바꿈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신 환웅의 아내가 되어 단군을 낳았다는 바로 그 ‘곰’이다. 이 곰은 본디 하늘 위에서 온갖 목숨을 세상으로 내려보내고 해와 달을 거느려 목숨을 살리고 다스리는 하늘 서낭[천신]과 맞잡이로, 땅 밑에서 온갖 목숨을 세상으로 밀어 올리고 비와 바람을 다스려 목숨을 살리고 북돋우는 땅 서낭[지신]의 이름이다.
이런 땅 서낭 ‘곰’을, 우리 글자가 없던 시절의 《삼국유사》에서는 ‘熊(곰 웅)’으로 적었지만, 우리말 그대로 한글로 적으면 ‘???’이었다. 그러니까 ‘곰’의 가운뎃소리 ‘ㅗ’는 본디 ‘ㅗ’와 ‘ㅏ’의 사이에 있는 ‘ㆍ’ 소리여서 듣기에 따라 ‘곰’으로도 들리고 ‘감’으로도 들리던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가미[神]’라고 부르는 것도 우리의 ‘???’을 ‘감’으로 들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다.
일찍이 우리 겨레는 누리 만물을 만들어 내시고 세상만사를 다스리시며 사람의 삶과 죽음을 이끄시는 분, 눈과 귀와 코와 입과 살갗 같은 몸으로는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그런 분을 남달리 알아 모시고 살았다. 애초에 남녘에서는 그런 분이 땅 밑에 계신다고 믿었고, 북녘에서는 하늘 위에 계신다고 믿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하늘 위에 계시던 분[천신]이 땅으로 내려와 아버지가 되시고, 땅 밑에 계시던 분[지신]이 땅 위로 올라와 어머니가 되셔서 우리 겨레를 낳아 기르고 이끄신다는 믿음으로 바뀌어 널리 퍼졌다.
단군 이야기는 바로 그런 믿음이 빚어낸 수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누리 만물을 만들고, 세상만사를 다스리고, 사람의 삶과 죽음을 이끄시는 어머니가 ‘곰(’???‘)’이었다. 세월이 흘러 한글을 만든 15세기 뒤로 오면 ‘고마’로도 썼는데, 이때에는 뜻이 ‘삼가 우러러볼 만한 것’ 쯤으로 낮추어졌고, ‘삼가 우러러본다’는 뜻으로 ‘고마하다’라는 움직씨도 만들어 썼다.
‘고맙다’를 그대로 뿌리와 가지로 나누면 [곰+압다]가 되겠지만, 그것은 [곰+답다]에서 ‘ㄷ’이 떨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고맙다’는 본디 ‘당신은 나에게 목숨을 내주고 삶과 죽음까지 돌보며 이끄시는 곰(서낭)과 같은 분이다.’ 하는 뜻이었다. 어찌 마음의 껍데기나 건네주는 ‘감사하다’나 ‘땡큐’와 견줄 것인가! 이처럼 깊고 그윽한 뜻을 담은 우리말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보잘것없는 남의 말을 우러러보며 즐겨 쓴다는 것은 아무래도 올바른 문화인의 모습이 아니다.
<이상은 김수업명예교수의 글을 퍼왔습니다.>
다음은 김수업교수의 일화 한편입니다.
김수업 선생은 수상소감으로 “석사학위 논문으로 한자 없이 토박이말로 썼다가 2달을 지도교수를 따라다니며 따진 끝에 겨우 학위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이것이 토박이말 가르치기를 평생의 업으로 산 계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시골의 보잘것없는 사람을 외솔 선생님이 끌어내셔서 이렇게 상까지 주시니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무거운 맘으로 돌아간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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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다'는 말이 일본에서 왔다면 되도록 '고맙다'는 표현을 쓰는 게 맞을 것이다.우리는 알게 모르게 일상생활에서 일본식 조어 내지는 일본식 한자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일본식 조어인 줄 알았다 해도 습관이 되어서 고치기도 힘들다.
그런데,더 큰 문제는 지금에도 일본어를 그대로 들여 와 쓰는 얼빠진 인간들이 있다는 것이다.피식민지 근성을 아직도 불식(拂拭)하지 못한 까닭이다.
'개호비(介護費)','코스프레','사양(仕樣)'....나열하자면 한정이 없으니,일제 식민지 잔재들이 아직도 이렇게 많다.
'코스프레' 같은 말은 들여 온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요즘 걸핏하면 '코스프레','코스프레'하면서 정치인이나 일반인이나 쉽게 입에 올려 쓰고 있다.이런 말을 쓰는 걸 볼 때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일본인들이 영어를 자기들 편하게 줄여 쓰는 말을 왜 줏대없이 그대로 끌어 와서 쓴다는 말인가? '재테크'와 같은 단어도 역시 일본식 조어로 알고 있다.일본사람은 造語에 관한 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반면,한국 사람은 남의 말 따라 흉내내어 쓰는 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평소에 자주 생각해 온 바다.
그렇더라도,일본 것을 그대로 가져와 흉내낸다는 것은 아직도 피식민지 근성에 빠져 있는 人士들의 몰지각함이 아닌가?
이제는 진실로 일제의 잔재를 씻어내는 데 정신을 차려야 할 때다.
그리고,또 한 가지.
우리말은 한자어가 70~80%나 섞여 있다.그러나 한글전용 정책을 펴 온지 50 여년이 되어,한자가 문장에서 거의 퇴출되어 온 것도 역시 같은 세월일 것이다.
누구는 한글전용정책이 성공적이라고 하지만,한 편으로는 실패라고 볼 수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외래어와 외국어,일본식 한자어 및 한자어 등을 순우리말로 순화하는 언어인문학적 노력-김수업교수같은 사람들의 활동-은 반드시 필요하고 지속되어야 한다.그러나,한자어에 있어서는 반드시 모든 것을 순우리말로 순화하여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가능한 것도 아니며,그럴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한자어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어의 현실에서,한글전용정책으로 한글로만 써 오다 보니까,한자의 뜻을 거의 등한시하게 되고 거기에 동반하여 음조차도 잊게 되어,틀리게 음을 적는 경우가 다반사다.
예로서,'궤(櫃)짝'을 '괴짝' 또는'괘짝'으로,'문외한(門外漢)'을 '무뇌한'으로,'궤변(詭辯)'을 '괘변'으로,'세뇌(洗腦)'를 '쇄뇌'로 표기하는 등-많이 있지만 비근한 몇 개만 들어서 알 수 있듯이,멀어지면 잊어버린다고 깡그리 잊어 버릴 판국이다.
우리의 인문학적 역사는 훈민정음 창제 이전까지는 물론,창제 이후로도 꾸준히 거의 한자한문으로 표기되어 왔기에,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그날까지 우리의 인문학적 기록물은 끝까지 한자한문으로 남아 있게 된다.물론 번역 작업이 진행되어서 한글화도 이루어지겠지만,한자한문은 끝까지 문헌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한자한문을 모르면 어떻게 한글화가 이루어지겠으며,문화유산의 가치 보존과 계승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한자를 중국글자라고 생각하고 우리말에서 도외시한다면,우리말 어원의 연관성이나 의미,음독(音讀)에 있어서 원할히 할 수 없을 것이다.이미 우리말에 정착되어 대략 2천 년을 사용해 왔기에 말이다.
오래 전에 한글교육정책에 관한 일을 하는 사람이 쓴,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칼럼에서,'小冊子'(소책자)의 '小'를 '작은'이라고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본 일이 있는데,참 웃긴다고 생각했다.
'小'란 한자는 국어에서 허다히,다반사로 쓰이는데,어찌 '小'字를 일일이 '작은'이라고 바꿔서 표기할 수 있겠는가?
소인,소변,소심 등에서 '소'를 '작은'으로 바꾸려면 뒤 한자어도 순우리말로 순화해야하는데,그렇게 된다면 '소인,소변,소심'이란 단어는 우리말에서 완전히 퇴출되고,'작은 사람,작은 마음'으로만 쓰이고,'소변'은 '오줌'으로만 쓰게 될 것이다.그게 가능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이미 한자어는 우리말 속에 깊이 뿌리박혀,순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른 것이다.한자어는 외래어가 아닌 우리말이다.
사소한 것으로써 우리말을 순화한다는 大義를 실행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편협한 소견 외엔 아무 것도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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