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 명단은 박영수 변호사(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를 통해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수의 전현직 검찰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박 전 회장은 2009년 1월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이 임명된 뒤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딸들도 처벌하겠다'며 강하게 압박하자 돈을 준 정치인과 관료들 30여 명의 명단을 작성해 제출했다"는 것이다.
박 전 회장이 작성한 명단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현직 검찰간부들의 명단도 포함돼 있었다.
박연차 회장은 반 총장이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있던 2005년 돈을 준 이유에 대해 "베트남 주석을 국빈 자격으로 한국에 초청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취지였다"고 진술했지만 검찰은 진술조서에 기록으로 남기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주요 수사단서였던 박연차 회장 여비서에게서 압수한 '회장님 일정관리표'에도 반 총장의 이름이 두 번 기록돼 있었다고 한다.
박 전 회장은 이인규 중수부장이 취임한 뒤 대검 중수부장 출신이면서 이인규 중수부장과 가까운 박영수 변호사를 선임했다. 박 변호사가 서울지검 2차장일 때 이인규 중수부장은 형사9부장으로 SK비자금 수사를 지휘하기도 했다.
박 변호사가 대검과 조율을 하면서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를 작성했는데 일부 인사들의 경우 구체적인 액수까지 기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에는 당시 주임검사였던 우병우 중수1과장의 절친인 최윤수 검사(현 국정원 2차장)에게 5천달러를 줬다고 기재돼 있었지만 돈을 돌려줬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특히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반기문 사무총장의 대선출마설이 나돌자 "반기문 웃긴다. 돈 받은 사실이 드러날텐데 어쩌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저런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겠나?"라는 말까지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부장으로부터 직접 말을 들었다는 한 관계자는 "이 전 부장이 자신의 입으로 '박 회장이 반 총장에게 3억원을 줬다'는 얘길 했다"고 전했다.
이인규 변호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과거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를 받았다는 시사저널의 보도와 관련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나는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변호사가 '사실이 아니다'가 아니라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해명한 것은 사실상 언론보도를 시인한 것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어서 파문이 더 커질 전망이다.
한편, 박연차 전 회장이 제출한 '박연차 리스트'는 지금도 대검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인규 변호사는 지인들에게 "박 전 회장이 제출한 '박연차 리스트'는 지금도 대검에 있다"고 공공연하게 말한 것으로 복수의 관계자들이 확인했다.
문제는 검찰이 이 문제를 다시 수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돈을 준 박 전 회장의 뇌물공여는 공소시효가 7년이어서 끝났지만 뇌물수수는 15년으로 바뀌었다. 검찰의 의지에 따라서는 수사가 가능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