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따라 머리 위에서는 황인용씨가 인터뷰중이라 계속 말소리가 들리고 플래시 터지는 섬광이 번쩍여서
음악을 듣는데는 조금 방해를 받았습니다.
나중에 아래쪽에 내려와 인터뷰 마무리 사진 몇 장 찍기 전에
우리에게 먼 데서 오셨는데 조금 시끄러웠지 않았냐고 하더군요.
전 거기서 일하시는 바리스타겸 디제이(머리모양을 아주 눈에 띄게 만든 분)에게 한 곡만 부탁드렸습니다.
1812년 서곡의 대포소리를 들어보고 싶었거든요.
그때 틀어주고 있던 헨델의 곡이 끝나자 제가 신청한 음악을 틀어줘서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크게 감동하지는 못했습니다.
그곳의 공간과 장비가 훌륭하다는 점을 부러워합니다만,
저 같이 게으른 사람은 일단 LP를 운영하는 일보다는
지금의 PC-fi로 만족하겠다고 생각했죠.
한 마디로, 편리성을 추구하면서 만족합니다. .
순전히 제 기억만을 뒤져서 말씀 드리자면 황인용 옹께서는 원래 음악과는 전혀 상관없는 TBC아나운서 였구요, 진행프로도 장수만세라는 노인프로를 오랜기간 하셨죠.
그러다 어느날 라디오 음악진행도 하셨는데 그때만도 그냥 유행하는 팝 정도 방송하는 프로였는데 몇년 하시다보니 주변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과 유대가 생기면서 음악을 깊이있게 듣기 시작하셨나봅니다. 아울러 오디오도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80년대 초중반 영팝스라는 프로를 하면서 슬슬 깊이있는 음악을 방송하기 시작하고요, 그때 단골 게스트가 전영혁씨였죠. 그당시는 성시완씨가 디제이 콘테스트에서 구상음악이란 주제로 1등을 하면서 미국, 영국중심의 음악을 소개하는 정도였던 음악프로들이 유럽, 제3국의 음악소개가 봇물 터지듯 소개가 되기 시작합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전영혁씨도 황인용씨 프로에 나와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라든지 그런류의 음악을 자주 소개하기 시작하고요.
황인용씨가 오래전 오디오잡지의 인터뷰를 보면 자기는 뭐에 하나 빠지면 깊이 들어가는 성격이라고 했는데 그랬는지 대중음악뿐 아니라 클래식까지 섭렵하기 시작하고 좋은음반도 많이 사모으고 또 오디오에도 깊이 빠졌습니다. 80년대 90년대초까지는 황인용씨는 최고의 인기 아나운서로 소득순위 1위를 달릴만큼 수입도 좋았던 시절이라 더욱 더 깊이 빠지신게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그러다 이젠 나이도 들고 방송활동도 뜸해지면서 그간 모은 수입과 음반, 기기들을 몽땅 한자리에 모아 소일할 곳을 찾아 처음에는 평창동에 음감실을 열였다가 지금의 헤이리로 최종안착하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