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을 통해 많은 분들의 지난 시절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극한 정성으로(?) 모시고 있는 [스님]이란 별칭을 갖고 계시는 와싸다 회원님의 고향인 영월을 하이원을 가는동안 경유하면서 애들이 볼만한 게 있을까 찾아보다가 사진박물관이 있어 들러보았고(동강 사진박물관으로 추정) 그곳에서 1800년대 후반, 1900년도 초,중반 시대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어 둘러보는데...참 아스라한 느낌과 포근한 느낌이 들더군요.(사진 내용으로만 보면 초라하고 남루한 행색, 쓰러질 것 같은 초가집, 씻지않아 말그대로 땟국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이지만)
이러한 느낌은 1900년대 다른 사진첩을 보면서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전생의 어떤 이유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제가 오랜 시간을 상계동쪽에 있는 불암산 앞자락에 살았고 지금은 뒷자락(별내)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앞자락에 살았던 유년시절의 경우 상계역-당고개역은 물론 노원역까지의 반경사이 약 2-30십년간의 환경변화를 고스란히 기억속에 갖고 있습니다.
지금 상계역 앞에 19평형대 아파트가 들어서 있지만, 들어서기 전에는 미로같은 작은 집들이 즐비했고(아는 사람이나 찾아갈 정도로 촘촘히 가건물같은 집들이 있었음), 이곳에 아파트 계획이 들어섰을때 상계동 작명이후 최초일 듯한 데모가 생겨(대학생들 참여) 경찰의 진압이 있었기도 했습니다. 가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은 새로지은 아파트로 입주할 수 있는 형편이 되는 사람이 전무했기 때문에..(아마 그분들은 어디 다른곳으로 이주했겠죠)
지금은 상계역과 당고개역의 복개하천 중간쯤에 있는 나름 유명 냉면집이 그 당시에는 당고개라는 언덕을 오르는 우측에 자리해서 국민학교 시절 어른들은 냉명을 드셨지만, 면이 안 끈기는 괘씸한 냉면을 싫어해 짜장면을 주문해 멱었던 기억도 납니다.
신상계 초등학교로 입학했는데, 상계초등학교로 전학해서, 새로 생긴 중계 초등학교로 다시한번 전학했는데, 결국 졸업은 신상계 초등학교에서 하는...초등학교를 3군데나 다닌 화려한 전력도 있고..
중계 초등학교에서 집에 가려면(노원방향) 높은 뚝방길의 칼바람은 여전히 기억속에 있습니다.
지금도 이곳을 지나다보면 예전에 기억이 고스란히 담아져 있다보니..더 정겹고, 느낌이 포근해지곤 합니다.
은행사거리 학원을 다니는 애들을 가끔 데려다주려, 픽업하러 다니는 중에 예전에 살았던 집을 슬몃이 가보곤 합니다...당시에는 참 궁궐같은(?) 집이였는데 지금보면 참 작고 궁색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지만 당시 살았던 기억이 스쳐가면 역시나 입가에 아빠 미소가 흐르곤 합니다.
국민학교 시절 일요일 아침마다..밖에 친구가 와서 "성일아~~~ 공차러 가자"..하고 깨우면 "아 저 시키는 잠도 없나...하면서 투덜대면서도 일어나...다른 놈 깨우러가는...한 댓놈 불러서 흙먼지가 철철 넘치는 학교 운동장에서 공차던 기억이 생생하고요..같이 공찼던 불x 친구들은 한넘만 세상을 등졌고 나머지는 지금도 술잔을 꺽고 있습니다.
노원역에서 동일로 방면(공릉동-수락산역 라인)에는 예전에 벽돌공장이 즐비했고 벽돌을 찍을 흙들이 곳곳에 산더미 같이 쌓여있고....군 복무중 휴가나와 택시를 탓는데..처음가는곳으로 가길레..왜 상계동으로 안가냐니깐...이곳으로 가는게 맞다고 하더군요..(당시 노원역 라인의 아파트가 엄청 들어서서 다른 곳인줄 알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분명 논리적으로 지금이 행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 예전에 같은 곳에서 거주하셨던 분들의 공감을 위해 구체적인 사례를 적었습니다.(거주하지 않았던 분께는 달나라 이야기여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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