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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장] 골목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6-10-13 23:33:25
추천수 18
조회수   684

제목

[백일장] 골목

글쓴이

심재현 [가입일자 : 2001-03-16]
내용




읽으시기 전에 "혜화동"을 재생시켜 들으면서 읽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



=================================================================



골목







지난 일요일
, 어머니가 이사했다.



내가 2살 때인 1972년 한남동에서 이사와



44
년을 살았던 봉천동 좁은 골목 여덟 평 집을 떠나신 거다.




그 여덟 평 작은 집에서
3남매가 자랐고,




지금은 마흔 여섯 중년 아저씨가 된 막내인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스물여섯 해를 살았다
.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7년을 홀로 살았던 집이다.


 






봉천동 좁은 골목에는 서로 마주보고 10여 가구가 살았다.




집마다 아이들이 두셋은 있었고
,




우리세대 어릴 적 골목
, 그 풍경이 일상이었다.






 


어스름한 기억에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




골목길은 포장도 안 된 흙바닥이었다
.




그리고 그 흙바닥은 훌륭한 놀이터였다
.




겨울이면 움푹하게 구멍을 파 구슬놀이를 하고
,




길쭉하게 땅을 파 자치기를 했다
.




왜 그 추운 겨울에 손을 호호 녹여가며 구슬치기를 했는지
...




숨바꼭질과 다방구는 기본이요
,




딱지치기
, 비석놀이, 땅따먹기, 와리가리 등등...


 






나무젓가락으로 고무줄총을 만들어 파리를 잡고,




모나미 볼펜으로 물총을 만들었다
.




바늘에 종이로 날개를 달아
다트를 만들었고,




집집마다 나무 대문은
다트판이 되었다.




병뚜껑은 망치로 두드려 펴고
,




양철가위로 톱니모양으로 오려 표창을 만들었다
.




역시 표적은 나무 대문이었고
,




무협영화에서처럼 손을 떠난
병뚜껑 표창은 멋지게 날아가 박혔다.


 






올림픽 종목 만큼이나 놀이 종류는 다양했고,




스마트폰 앱 만큼이나 자작 장난감도 풍부했다
.


 






좁은 골목은 풍요롭지는 못했다.




그러나 낡은 단어가 되어버린
이웃사촌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그런 곳이었다
.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쌍문동 그 골목 풍경이




낯설지 않은 게 그 때문일 것이고
,




동물원의
혜화동을 들으면 가슴이 뭉클하고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


 






응팔에서처럼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한 집, 두 집 골목을 떠났다.




그리고 어머니가 이사하고
1970년대부터 골목에 살았던 원주민 중




남은 집은 이제 앞집 한 집뿐이다
.




이사했다고는 하지만 걸어서
10여 분, 멀지 않은 곳이다.




그래도 이사 전날 앞집 아주머니와 얘기하면서




어머니도
, 아주머니도 많이 아쉬워했단다.




아니 그럴 수 있겠나
.


 






풍요롭지 못했던 시대였고,




3
남매를 키워야 했던 부모님은 매일이 고단했을 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다
.




그러나 학원도
, 스마트폰도 없었던 그 시절을 살았던 나는




아직 철이 덜 들었는지




그 시절이 마냥 아름답게만 기억된다
.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답던 유년의 추억이여
~~~




 





2016년 10월 13일



늦은 가을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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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2016-10-14 00:33:02
답글

사람은 추억을 먹고사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특히.. 인생의 년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추억의 농도가 더 진해진다죠 ...

잘 ... 읽고 갑니다 .. 헤헤

심재현 2016-10-14 01:06:05

    현재는 힘들어도 그나마 지난 시간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까요. ^^

박태규 2016-10-14 02:45:47
답글

참 잘 쓴 글입니다.
작고 꾀죄죄하며, 아무렇게나 그어 놓아 제 멋대로 구부러져서
몇가지 낙엽과 먼지들이 뒤덮는 대책없는 골목 .
솥단지와 이부자리들을 신주처럼 둘러매고 새로운 삶의 서식지로 향해가던 이사,
그리고 사정상 미처 떠나지 못한,
남은 자들의 정겨움 배인 눈물 있는 배웅,
그러나 그건 나를 8할쯤 거두고 이만큼 씩이나 영육을 키워준,
쉽게 내칠 수 조차 없어 ,어김없이 울컥 눈물 배인 추억으로 존재하는,
누구 말마따나 더럽게 엉겨붙어 떨어지지않는 ,
때로는 지겹고 때로는 회한으로,
하지만 아름답게 잘 채색된 것으로 위장하여,
우리들의 내면의 한켠을 자리하고 있습니다.
작은 토끼털 붓으로 세세하게,
일점 투시도같은 구도로
수채화같은 상념들을 잘 그려냈습니다.
바람같은 갈증으로 생의 한 군데를 묘사하셨지만
삶의 또다른 진실이 함께 하기에
그것은 비록 작으마하나
끝간데 없는 감동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불식중에 이런 글들을 볼 수 있게 해 주신 일진 님의 뜻이 더욱 고마워 지는 밤입니다..

심재현 2016-10-14 10:23:10

    좋은 글,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이종호 2016-10-14 09:22:48
답글

태규님의 예리한 분석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재현님의 유소년기 골목놀이...저와 별반 다르지 않았네요...^^
유독 놀이에 약했던 저는 구슬치기보다는 주먹쌈치기를 잘해서
동네 얼라들 구슬과 딱지 심지어 우표까지 싹쓸이를 하는 바람에
애들이 매일처럼 저희 집앞에 와서 농성과 시위를 해대어
죄다 나눠주고 엄니께 무척 혼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의 도박으로 가세가 기운 것도 모자라
저까지 세미 갬블링에 자질(?) 을 보인 것이 꼴보기 싫으셨던 듯....

그 이후론 동네 아이들과 담쌓고 열심히 공부만....ㅡ,.ㅜ^

심재현 2016-10-14 10:25:00

    갈취는 그 시절부터...^^;;;
저는 그런 놀이에는 재능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종호 2016-10-14 10:27:07

    대신 재현님은 공부를 잘하셨잖아요...^^

이민재 2016-10-14 09:36:52
답글

같은 시대를 살다보니 사는 지역은 달랐지만 거의 비슷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었나 봅니다.

골목길, 한옥, 슬라브집, 병두껑 주우러 시내 순례하기- 꾀죄죄한 추리닝 하나 걸친 차림으로 - 병두껑 펴서 동네친구들거 따먹기, 동네대항 야구나 혹은 축구로 내기시합, 서울 시내외 3류 동시극장 다니기 등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하지만 떠오르네요.

심재현 2016-10-14 10:42:37

    방학 때면 거의 매일 같이 야구하러 학교 운동장, 동네 공터 등지를 찾아 다녔네요.
때론 서로 먼저 왔다고 다투다 패싸움도 하고...^^;;;
동시극장의 추억도 새록새록 하고요. ^^

전성일 2016-10-14 09:54:19
답글

지금 같이 폐쇄(?)되지 않았던 공동 화장실의 세멘트 기둥에 유독 진한 유광 청동색의 몸매를 가진 왕눈이 파리가 그 시절을 떠올리면 번개같이 기억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이종호 2016-10-14 10:28:37

    참기름 병마개님두 유광 청동색 왕파리를 아시는군요...ㅡ,.ㅜ^
왕자님처럼 곱고 이쁘게만 자랐을 용모인데......

전성일 2016-10-14 10:39:00

    유모가 있을땐 응가를 처리해줬는데...유모가, 집사가 떠난 후론... ㅠ.ㅠ 3=3=3

심재현 2016-10-14 10:43:45

    아~~~그 왕파리~~^^;
다행히(?) 저희 동네는 공동 화장실을 이용하는 곳은 아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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