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별로 사용해보지도 못한 프리앰프를 동호인에게 넘기고서 급전을 마련했다.
입문형 기기이지만, 나름 라우드니스 기능도 있고, 음색도 포근하고 낭창낭창하니 좋은 소리였다.
가장 큰 장점으로는 전면부가 깔끔히 디자인되어있고, 싸구려스럽지 않은 금색 노브로 부인도 좋아했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잠시나마 가족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은 기계를 팔고서 마련한 급전은
내 대학원 등록금으로 사용되었다.
프리가 사라지는 바람에 45 싱글 파워에 소스를 직결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CDP, 턴테이블, 블루투스리시버 중 어떤 것을 직결할 것인가 갈등하다, 결국 블루투스 리시버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멀티탭에서 코드를 뽑기로 결정했다.
장식장안에서 CD와 LP들이 소리없이 나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는것 같았지만, 어쩌랴...
이것이 가족을 위해서는 제일 편한 길인것을
사실 프리, CDP 등등 나머지 기계들을 켜고 끄는 것이 부인과 5살배기 아들에게는 한없이 복잡한 일인듯 했다.
내가 있을 때에야 음악듣는 과정이 한없이 편하지만, 내가 없을 때에는 마냥 귀찮은 일이기에
음악도 머나먼 남의 얘기일 것이다.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어린시절 우리 집에는 소니 붐박스가 하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5~6인치정도의 풀레인지에 트위터로 구성된
2 way 스피커가 좌 우 한조 박혀 있었고, 데크는 하나였지만, 마이크 연동이 되어 노래도 녹음하며 즐기곤 했다.
나름 좌 우 톤 컨트롤에 돌비 기능이 있었고, 아날로그 파워 미터도 있었으며,
버튼을 누르면 녹턴창에 주황색 불이 들어와 운치도 있었다.
아버지는 레코드 가게 주인과 안면을 트고 공테이프에 좋은 곡들을 복사 해서
옴니버스 클래식 테이프를 만들어 오시곤 했다.
어린 시절 테이프를 늘어뜨려 장난치고, 또 혼나기도 했으며, 기계를 만지며 노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국민학교를 들어가면서, 왜 우리집에는 턴테이블이 없고 카세트만 있을까 좀 불평도 해보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바늘이 박살나고, 음반이 휘고 깨지면서 노심초사 하는 턴 테이블 보다는
막 다뤄도 재생에 불편함이 없고, 아이들도 접근하기 편한 카세트가
온 가족의 즐거움에 있어서 더욱 나은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아버지는 아키하바라에서 심사숙고 해서 사온 붐박스였다며 큰소리를 치신다.
당시 고등학교 교사였던 당신의 한달 월급을 몽땅 투자해서 재일교포였던 작은 할머니께 부탁해서 사온거라며.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오디오를 하고 있나.
대학원 등록금을 충당하기 위해 기기를 판 것도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며
기기들로 탑을 쌓아 가족이 음악듣기 점점 힘든것은 아닐까.
30년전에 온 가족이 노래를 들으며 즐겁게 놀던 기억
조용히 FM을 틀어놓고 빨래를 개던 어머니의 모습
주말에 클래식을 틀어놓고 신문을 보며 담배를 태우시던 아버지
다섯살 배기 내가 퍼질러 앉아 테이프를 늘리면서 낄낄거리는 걸 보고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지금 당장 내 아들이 LP판을 던지면서 놀면 나는 어떤 반응을 할까.
MC 바늘이 부러지도록 톤암을 내팽개치며 턴테이블을 돌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커닝햄 245관을 전구마냥 뽑아들고 다니다가 깨뜨리면 어찌해야 하나
로더 스피커 콘지에 볼펜을 꽂으면 나는 어찌해야 하나
내 아들은 30년 뒤에 나를 어떤 아빠로 기억할까.
오늘은 집에가서 닷살된 아들에게 턴 테이블 바늘을 올려보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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