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싹은 쌍으로 난다.
제 무게가 감당하기 벅찬 땅을 헤집고 제 삶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
씨앗은 잎과 줄기를 땅 위에 내 놓는다.
이제 갓 눈 뜬 새 줄기는 제 몸 새우기도 벅차다.
새 줄기에서 처음 나오는 잎은 줄기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렇다고 잎을 하나만 내밀면 한쪽으로 기울어져 땅으로 쓰러져
결국 썩게 된다.
그래서 한 쪽으로 기울어 쓰러지지 않도록
잎은 정확히 반대쪽에 쌍을 이뤄 싹을 낸다.
그래야 비로소 힘드나마 균형이 맞아 곧바로 서서 자랄 수 있다.
줄기가 어느 정도 튼튼히 자라게 되더라도
새로 내는 잎은 꼭 쌍으로 나온다.
줄기가 더 자라 새 잎을 낼 때도
혹여 한 쪽으로 치우쳐 불량하게 자라지 않도록
정확히 반대편에 균형을 이뤄 잎을 낸다.
살아갈 준비가 덜 된, 그러니까 사람들이 외떡잎 식물이라 부르는,
듣기에 따라서는 외로워 보이는
옥수수 같은 것들도 무작정 지르고 보는 게 아니다.
새 잎을 낼 때는 줄기와 같은 방향으로 내서 줄기에 부담을 주지 않고
뿌리로 버티게 한다.
줄기에 잎이 달랑 하나만 달리면 힘의 균형이 맞지 않아
일시적으로 똑바로 자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다음 싹은 반드시 반대편에 내 놓아
균형을 맞춘다.
층층이 나온 잎은 정확히 그 반대편에 있다.
알뿌리 식물들의 싹도 규칙이 있다.
한쪽으로 여섯 개의 잎줄기를 냈다면, 다른 쪽에도 6개를 낸다.
그래야 바로 선다는 것을 안다.
식물은 아는 대로 행동한다.
틀림 없다.
아는 대로 행동하고 그것은 어떤 조건에서도 틀림 없다는 것만큼
뭉클하게 하는 것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억세게 자란다 할 칡이나 환삼덩쿨 같은 덩쿨 식물을 보면
잎이 3개, 5개 식으로 홀수로 나 있는데
자세히 보면 짝을 이루지 못한 가운데 잎이 유달리 크다.
그러니까 양쪽 두 개는 정확히 쌍으로 자라고
짝을 이루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가운데 잎은 그 잎들을 지탱하는
새끼 줄기와 정확히 짝을 이루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니까 홀로 있는 것은 없다.
줄기만 그런 게 아니고 꽃도 그렇다.
꽃받침 위의 꽃 잎도 2, 4, 6, 8... 짝을 이룬다.
3, 5, 7.. 식으로 홀수가 되더라도
꽃잎의 배열은 원을 정확히 3, 5, 7 등분해 균형을 맞춘다.
멍뭉이들의 팔, 다리도 각각 둘이다.
멍뭉이 다리가 4개라 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멍뭉이를 고기로 여기는 사람이 아닌 한,
얼굴 가까이 있는 게 손이고, 먼 쪽에 있는 것이 다리다.
멍뭉이에게 손! 하고 요구하면 똥구멍 가까이 있는 것을 내밀지는 않는 걸 봐도 그렇다.
다른 게 다 두 개로 짝을 이루는데 발만 네 개일 리 없다.
눈도 둘, 콧구멍도 둘, 귀도 둘.
각각 짝을 이뤄 균형을 맞춘다.
그래서 쓰러지지 않고,
바르게 숨쉴 수 있고,
바르게 볼 수 있다.
아닌 건 아니라고 짖을 수 있다.
어느 것인가 하나만 있다면 쓸쓸하다.
외롭다.
서럽다.
살기가 싫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입이 하나다.
눈, 코, 귀, 팔, 다리, 모두 짝을 이루고 있는데
입만 하나다.
배가 고프지 않는 데도 입이 쓸쓸했던 이유가 있었더라.
그래서 사람들은 입을 맞대나 보다.
먹는 데 쓰느라 모르고 있다 막상 배가 부르니 알아챘더라.
입이 하나라 쓸쓸했고, 외로워서 서러웠기에
다른 사람의 입을 보면 포개어 짝을 이루고 싶었나 보더라.
외로움과 서러움이 사무칠수록 짝에 맞댄 입술에 힘이 더 가는가 보더라.
쪼~~오~~옥.
안을 들여다 보니 가슴도 하나다.
심장엔 좌심실 우심실, 좌심방 우심방, 이렇게 짝을 이뤄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다가도
문득 돌아보면 그래봤자 하나를 이리 저게 쪼갠 것에 불과한 지라
다른 가슴을 보면 포개고 싶었나 보더라.
다른 가슴에 더 가깝게 대고 싶어 팔에 힘이 들어갔나 보더라.
그러고 보니 몸의 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평소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하나 밖에 없는 게 있더라.
그래서 .....
음....
그런가 보더라.
그래서 멍뭉이들이 암컷만 보면 그리 환장했나 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