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
어느 외진 산골 밭의 정겨운 풍경이 보고싶다.
내 고향 마을에서 면사무소가 있는 법성까지는 편도 시오리 정도로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마을사람 모두가 법성을 갈 때면 자동차가 다니는 신작로 길을 놔두고 공동묘지를 끼고 도는 지름길인
산길로 다녔다.
법성장은 5일장으로 군단위인 영광장 보다는 규모가 작았지만 내다 팔것이 있거나 필요한 것이 있을 때면
대부분의 동네사람들은 법성장을 이용하였다.
마을을 왼쪽으로 끼고도는 산비탈 쪽에는 고구마, 조, 콩 등이 심어진 밭들이 있고 그 밭길을 따라 법성으로
가는 지름길이 이어지는데 중간쯤 언덕 빼기에는 수수밭과 함께 그 주변으로는 묘지들이 많이 형성돼있다.
가파르지 않게 구불구불 이어지는 언덕길은 선선한 바람에 살랑거리는 가을색의 강아지 꼬리 같은 들풀과
작고 앙징스러운 들꽃들이 어우러져 이맘 때 해질녘엔 한번쯤 걸어볼 만한 아름다운 길이며
지금은 그 길 초입에 관광농원이 하나 들어서 있다.
지대가 약간 낮은 오른편으로는 논들이 있고 논길을 지나면 포프라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신작로가
법성에서 영광까지 이어져있다. 그때의 신작로는 산돌이라는 하얀 자갈들이 깔려 있었는데 바람부는 날
차라도 한 대 지나가면 흙먼지를 뒤집어쓰기 일수였다. 도로의 군데군데 움푹 페인 작은 웅덩이에는
비온 후 고물버스가 흘린 폐기름 섞인 빗물이 고여 있곤 했는데 그래서 인지
어른들은 신작로 길로 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마을에서 신작로까지 가는 길의 끝 삼거리에는 자그마한 점빵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스라한 추억속의 점빵은 불가사의 하게도 다른 모습으로 지금도 존재한다,
언제 였던가 어머니 손을 잡고 법성장을 다녀오던 달빛 교교하던 그 밤.
보통, 장날이면 마을 분들이 서넛, 아니면 너뎃명이서 함께 장을 보고 해지기 전 돌아오곤 했지만
그날은 무슨 일인지 우리만 늦게 장을 파하고도 한참지난 해가 져서야 돌아오게 되었다.
땅거미가 내린지는 이미 오래. 사방은 어둑해졌고 달빛이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앞서 걷는 아이가 무서울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말을 붙이는 어머니의 자상함에도 건성으로 답하며
작은 바스락거림이나 풀벌레 소리에도 긴장하며 앞만 보고 걷는 아이의 눈에는 달빛에 그려지는
제 그림자마저 거슬린다.
묘지 근처의 수수밭 옆을 지날 때 쏴아~하며 불어오는 한 무더기의 가을바람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수수대의 목을 밟고 지나가자 순간 큰 키의 수수들이 일제히 긴 이파리를 버석거리는
비명을 지르며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내쪽으로 휘청 거렸고
작은 손을 꼬옥 쥐고 용기있게 걷던 아이도 소스라치게 놀라 결국 “엄니야!” 하며
어머니 치마폭을 붙들 수 밖에 없었다.
아, 그때의 철렁했던 어린 가슴과 풍경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해마다 가을이면 마음속 깊은 곳의 한켠을 아리게 한다.
(어린시절 어머니를 “엄니“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