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으로 한국전쟁 참전하셨고 이북5도청 명예군수였던 아버님과는 양방향 정치대화는 아예 불가능했습니다.
군부독재의 대학시절을 보내면서 월간조선과 월간동아(지금과 다른 언론이었습니다)를 봤었는데, 아버님에게 이런 말을 들을 정도였죠.
"건방지게, 네가 뭐라고 이런 걸 봐?"
타임이나 뉴스위크의 한국기사에 대해서는 아예 말도 못 꺼냈죠.
심지어 이스라엘의 만행에 대해 사실을 알려드리려고 하다가 맞을 뻔 했습니다.
분가해서 나이 40, 대기업 부장 그리고 자식까지 생긴 아들에게 정치관을 강요하셨고, (기분좋게 해드리려고 이회창에게 투표하겠다고 했는데도) 열렬히 지지하지 않는다고 빨갱이 *새끼 욕설을 수십 번 퍼붓고 연을 끊자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아버님과는 마음을 터 놓은 정치대화는 불가능하다고 포기하고 지냈는데, 의외로 마지막 순간에 통로가 생기더군요.
아버님이 오래 고생하신 암으로 반신불수가 되셔서 지방 호스피스 요양원에 계셨고 정기적으로 온 가족이 뵈러 갔었습니다.
"천안함은 어떻게 된거냐?"
저는 또 다시 시작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뭔가 뒤틀리면 항상 그런 식으로 일부러 시비를 걸으셨고 결국에는 대판 싸움이 붙는 것으로 끝났으니까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관심이 없어서"
"여기에서는 TV나 신문을 못 봐서 궁금해서 그런다."
요양원에서는 개인 TV를 금지시켰고 단체로 보시는 프로그램은 늘 노인용 오락프로그램으로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민족정론지"로 생각하시던 조선일보, KBS 9시 뉴스는 못 보신 지 꽤 되었죠.
"..."
"정말로 북한이 한거냐? 그걸 가만히 두는거냐?"
의외로 제가 설명해드리는 천안함의 의혹에 대해 아버님이 화도 내지 않으시고 귀를 여시더군요. 그리고 의혹에 대해, 놀랍게도, 부분적인 동의를 하셨습니다.
북한출신의 상당히 과격한 성격, 노인특유의 고집 그리고 무기력한 당신의 상황에 대한 증오심으로 병문안 간 가족들과도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많았는데, 너무나도 놀라웠습니다.
그 후에도 이명박의 강파기 삽질 등등 궁금하신 점을 자주 물어보셨고 아버님은 제 설명 대부분을 수긍하셨습니다.
평생 함께 살았던 시간에 비해서는 순간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아버님과 정치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기에, 불효의 죄송스러움이 새 깃털의 무게만큼 사라지더군요.
지금은 뵙고 싶어도 뵐 수 없기에, 뒤늦은 후회 뿐입니다. 일 핑계대면서 여행을 미뤘던 것이 평생 짐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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