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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장출품작1] 아버님과 마음을 터놓고 지냈던 유일한 시기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6-10-11 13:40:54
추천수 20
조회수   662

제목

[백일장출품작1] 아버님과 마음을 터놓고 지냈던 유일한 시기

글쓴이

오세영 [가입일자 : ]
내용




실향민으로 한국전쟁 참전하셨고 이북5도청 명예군수였던 아버님과는 양방향 정치대화는 아예 불가능했습니다. 



군부독재의 대학시절을 보내면서 월간조선과 월간동아(지금과 다른 언론이었습니다)를 봤었는데, 아버님에게 이런 말을 들을 정도였죠.



"건방지게, 네가 뭐라고 이런 걸 봐?"



타임이나 뉴스위크의 한국기사에 대해서는 아예 말도 못 꺼냈죠. 



심지어 이스라엘의 만행에 대해 사실을 알려드리려고 하다가 맞을 뻔 했습니다. 



분가해서 나이 40, 대기업 부장 그리고 자식까지 생긴 아들에게 정치관을 강요하셨고, (기분좋게 해드리려고 이회창에게 투표하겠다고 했는데도) 열렬히 지지하지 않는다고 빨갱이 *새끼 욕설을 수십 번 퍼붓고 연을 끊자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아버님과는 마음을 터 놓은 정치대화는 불가능하다고 포기하고 지냈는데, 의외로 마지막 순간에 통로가 생기더군요.



아버님이 오래 고생하신 암으로 반신불수가 되셔서 지방 호스피스 요양원에 계셨고 정기적으로 온 가족이 뵈러 갔었습니다. 



"천안함은 어떻게 된거냐?"



저는 또 다시 시작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뭔가 뒤틀리면 항상 그런 식으로 일부러 시비를 걸으셨고 결국에는 대판 싸움이 붙는 것으로 끝났으니까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관심이 없어서"



"여기에서는 TV나 신문을 못 봐서 궁금해서 그런다." 



요양원에서는 개인 TV를 금지시켰고 단체로 보시는 프로그램은 늘 노인용 오락프로그램으로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민족정론지"로 생각하시던 조선일보, KBS 9시 뉴스는 못 보신 지 꽤 되었죠.



"..."



"정말로 북한이 한거냐? 그걸 가만히 두는거냐?"



의외로 제가 설명해드리는 천안함의 의혹에 대해 아버님이 화도 내지 않으시고 귀를 여시더군요. 그리고 의혹에 대해, 놀랍게도, 부분적인 동의를 하셨습니다. 



북한출신의 상당히 과격한 성격, 노인특유의 고집 그리고 무기력한 당신의 상황에 대한 증오심으로 병문안 간 가족들과도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많았는데, 너무나도 놀라웠습니다.



그 후에도 이명박의 강파기 삽질 등등 궁금하신 점을 자주 물어보셨고 아버님은 제 설명 대부분을 수긍하셨습니다. 



평생 함께 살았던 시간에 비해서는 순간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아버님과 정치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기에, 불효의 죄송스러움이 새 깃털의 무게만큼 사라지더군요.  



지금은 뵙고 싶어도 뵐 수 없기에, 뒤늦은 후회 뿐입니다. 일 핑계대면서 여행을 미뤘던 것이 평생 짐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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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2016-10-11 13:55:05
답글

ㅜㅜ 잘 읽었습니다.

아버님을 변하게 한 건 세상을 돌아보게 된 이유인가 봅니다.

uesgi2003 2016-10-11 14:11:03

    제가 늙어가니 아버님을 뒤늦게 이해하게 됩니다.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만든 시대를 미워해야했습니다.

전성일 2016-10-11 14:08:28
답글

항상 좋은 정보를 주셔서 잘 보고 있으며, 본문도 잘 읽었습니다. 추천 누지르고 갑니다.

uesgi2003 2016-10-11 14:11:18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와싸다에 제 나름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창연 2016-10-11 14:16:27
답글

잘읽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에 아버님이 변하셔서 아드님과의 사이가 가까워져 보기좋습니다.
어려운거 두가지가 있다면,
남의 주머니의 돈을 내 주머니에 넣는것과
내 머리속의 생각을 남의 머리속에 넣는것
후자가 훨씬 더 어려운듯 합니다.

이종호 2016-10-11 14:20:49
답글

저도 그렇듯 저희 아버지와는 이곳과 그곳을 사이에 두고서 앙금을 가라앉히게
되더군요..
저 또한 제 자식과 그렇게 거리를 좁히게 되겠지만....ㅡ,.ㅜ^

곽정범 2016-10-11 14:27:30
답글

부모님 (특히 아버님)과의 대화에서 옳고 그름은 별 의미가 없죠
험난한 세상을 살아오신 경험이 고집(?)으로 굳어져 버려서요..
부모님과의 지난 이야기들은
어느집이나 별반 다르지 않네요.

이민재 2016-10-11 14:36:16
답글

다른 여러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근현대사의 우리나라가 험난 그 자체였습니다. 그 삶을 살아가야했던 민초의 생은 말해 뭣하겠습니까. 세월을 탓해야겠고 불운을 탓해야겠지요.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인데 현재나 미래나 앞이 안보이니 얼마 안남은 세월이여, 오늘도 무사히! 를 빌고 내년에는 기필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길 바래야지요.

김준남 2016-10-11 17:00:00
답글

눈시울이 붉어지고, 저도 고향에 계신 아버지 생각이 나네요.

다행히 아직 정정하시지만, 여전히 민족정론지 조선일보 애독자에다, 저는 빨갱이입니다.
오랜만에 고향내려가면 9시 15분 전에 사단이 나죠.
같이 9시 뉴스를 10분을 못봅니다. ㅋㅋ 어머니가 같이 쇼파에 앉아 있지 말라고 하시죠 ㅋㅋ

그러나 이제는 아버지의 스테미너 향상을 위해 가끔 부아를 돋구어 드리는 것도
효의 일종이라 생각되어 가끔 약하게 서브를 넣고는 합니다.

되려 리시브가 점점 약해지는 것 같아 휑한 마음입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

조영석 2016-10-11 22:08:38
답글

마음이 여러지셔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북 출신이시니 좌익에 대한 완고함을 이해할 수 있네요.

완고함도 나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남아 있을 때 그런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모든 걸 깨우치셨다기보다 기력이 쇠해지신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네요.

참 인생 무상입니다.

허인예 2016-10-11 22:18:35
답글

효도.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깨닿게 되는 부모님에 대한 사랑.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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