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기 내어 올려봅니다. )
고향 집으로 가는 가을 오후의 버스 안.
면사무소가 보이는 작은 고개를 넘어 가을 빛이 가득한 길을 지나고
한 무리의 중학교 꼬마들이 차에 올랐다.
이 길에 들어설때마다, 어린 후배들을 볼 때마다,
나는 지나버린 시간을 생각한다.
버스 안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가 ,
학생들이 한두명씩 내리면서 조금씩 여유로워진다.
한 소년이 아까부터 차 가운데에서 팔짱을 낀 채로
이깟 속도, 흔들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아무것도 잡지 않고 혼자서 서서 간다.
다들 까불며 친구들과 즐거운 대화를 하면서 집에 가는길.
소년은 말을 걸어주는 친구도 없이 고집스럽게 혼자 서있다. 여전히 팔짱을 낀 채,
창 밖을 바라보고 서있다. 가끔은 흔들리면서. 자리가 생겨도 서 있다.
눈에 띄게 왜소한 체구, 검게 탄 얼굴, 어릴적 상처인지
커다란 흉터가 코 밑에 나 있다. 그래 그 소년은 언청이다.
저 소년의 푸르른 날들이 어떨지 나는 조금 알것도 같다.
나는 점점더 작아지고, 남자 애들은 점점더 건강해지고,
계집애들을 점점더 예뻐져만 갔었지...
그래 그때부터 나의 푸르름도 어긋나 있었다고 변명을 하자.
그런 고집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소년에게 알려주고 싶다가,
내게는 저런 고집도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낸다.
그러는 동안
차창 밖으로는 금빛으로 물결치는 들판이 스쳐 지나고 ,
나는 코스모스 밭을 생각한다.
다양한 색의 코스모스가 바닷가 큰 밭 가득히 피어
모두 제 각각의 높이에서 , 하지만 모두 함께
바다에서 불어오는 서해 바람속에서 끝없이 춤을 추는
그래! 전 우주를 마주한 것 같은 코스모스 밭이다.
풍요로운 들판과 ,
못난 꽃은 한개도 없는 코스모스 밭을 생각하다가
쭉정이로 가득찬 나의 가을까지 생각이 미친다.
바다가 보이고, 서서 가던 소년이 내린다.
무심코 소년을 따라가던 내 눈길에 아주머니 한분 나타나,
세상에서 가장 기쁜 순간 처럼 반가운 얼굴로 소년을 맞는다.
소년은 고집도 버리고 쑥스러운 웃음과 함께 행복 속으로 걸어간다.
그래 그 사람은 어머니다.
어머니...
이 세상 모든 별들은 영겁의 시간 뒤엔 서로 끝없이 멀어진 채로
모든 빛이 꺼지고, 캄캄하고 차가운 공간만 남을거라고 하지...
그 빛이 사라지기 전에,
물결치는 금빛 들판도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 밭도,
많이 많이 보아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