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은 목사라고 불렸지만 정작 신학교육은 전혀 받은 적이 없고 자칭 영세교 교주로 행세하며 온갖 사기행각을 일삼았던 사람이다.
1975년 육영수 여사 사망 직후 최태민이 박 대통령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내 만나게 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뒤 대한구국선교단(구국여성봉사단)을 설립해 총재로 취임하고 박 대통령이 명예총재로 이름을 올리면서 함께 활동하게 된다.
1990년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씨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이런 편지를 쓴 적 있다.
“진정코 저희 언니는 최태민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합니다.
” 박 대통령은 1991년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최태민이) 우리 사회를 걱정하는 사람으로 느껴서 그분과 같이 일하게 됐다”고 해명한 바 있다.
“내가 누구에게 조종을 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8월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마친 후 단상을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박 대통령과 최태민의 기묘한 관계는 사위 정윤회로 이어진다.
정윤회는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을 지냈고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른바 ‘문고리’ 4인방도 정윤회의 천거로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대선 주자로 떠오른 2006년 이후 행적이 묘연했지만 2014년 11월 공개된 이른 바 정윤회 문건에 따르면 박 대통령 당선 이후 막후 실세로 군림하면서 국정을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검찰은 정윤회 문건이 허위라고 결론 내리고 문건 유출자인 조응천 당시 비서관과 박관천 행정관 등을 기소했다.
박 전 행정관은 검찰에 출두해 “우리나라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가 정윤회,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최순실의 이름이 다시 등장했다.
20일 한겨레에 따르면 올해 1월 설립된 K스포츠라는 재단의 이사장에 최순실의 측근이 임명된 것으로 확인됐다. 최순실이 직접 이사장 선임에 개입한 정황도 확인됐다.
당초 K스포츠 재단과 미르 재단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전국경제인연합회 소속 재벌 대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각각 288억원과 486억원의 출연금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순실이 재단의 설립과 운영에 깊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5공화국 ‘일해 재단’의 재현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청와대가 개입하지 않으면 그런 거액을 기업들이 자진해서 출연할 리 없고 대통령 해외 순방에 동참할 수도 없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은 20대 시절부터 언니 동생 하는 사이로 과거 승마 선수였던 최순실의 딸이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과정에서도 청와대 차원의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조응천 의원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윤전추 행정관의 입성도 최순실과 인연이 작용한 것”이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 모든 정황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속고 있는 언니가 불쌍하다”던 박근령의 심정으로 국민들이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가를 개인사업화했다면 박 대통령은 빈약한 대인관계에 국가권력을 송두리째 내맡기는 모양새다.
불쌍한 것은 언니가 아니라 그런 언니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들이다.
최순실 같은 이들이 무능한 대통령의 뒤에서 호가호위하며 민주주의를 농단하는 현실은 참담하기 짝이 없다.
이 사건은 단순히 측근 비리를 뛰어넘어 비선 실세들의 국정 농단 사건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최순실 등이 부당하게 권력을 남용하고 더욱 거대한 이권 사업에 개입돼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