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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5천억 탈세와 6천억 탈세!!??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6-09-20 22:30:26
추천수 18
조회수   1,497

제목

1조 5천억 탈세와 6천억 탈세!!??

글쓴이

양원석 [가입일자 : ]
내용
 이건희 삼성의 탈세는 1조 5천억이었죠!

롯데는 6천억이라는데, 서미경의 전 재산 압류라고 언론에다 나발을 불어대는군요.

그나저나 청와대의 우병우(수정본) 문제는 꼬리를 감추고,

롯데에서 큰 소리나게하는 짓거리 만드는 건가 봅니다.

진경준, 홍만표, 우병우를 롯데로 퉁친다는 수를 부린 계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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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수 2016-09-20 23:10:28
답글

오래된 개인적인 원한이 있을수도...
마주쳤는데 눈을 안깔았나?

손은효 2016-09-20 23:57:02
답글

유병우(X)우병우로 바로잡고, 미 군정이후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면서 한번도 도전받았던 적이
없었던 유일의 보이지 않는 최고권력으로 기반을 다져나가다가 노무현 대통령때 한번 흔들렸던적 있었죠
강금실에 이어 바톤을 이어받은 희대의 배반자 천정배가 법무장관을 맡아서 검찰의 편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노무현대통령의 퇴임이후 정말 처절하고 가혹하게 보복을 당했던 겁니다.
보이지 않는 검찰의 권력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너무 적다는 것, 작금의 권력흐름도 별반 다르지 않을겁니다.
누가 건드립니까? 정치인들

yws213@empal.com 2016-09-21 00:26:48
답글

은효님, 당시 노무현대통령께 덤비던 그 개들 기억합니다.
언젠가 날잡는 때가 올 것입니다. ^^
+++++++++++++++++++++++++++++++++++++++(아래는 대들던 개들에 대한 기억입니다.)

까마득히 먼 옛날 얘기처럼 들린다. 헌정사상 최초인 ‘대통령과 평검사간의 대화’가 벌어졌던 2003년 3월 9일의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들 간의 대화는 대화를 뛰어넘어 격렬한 논쟁으로 치달았다. 배석한 강금실 법무장관과 검사들 간의 설전 역시 뜨거웠다. 문자 그대로 맞장 뜨는 분위기였다.
한 검사는 노대통령의 형 건평씨 문제를 거론했다. 또 다른 검사는 ‘대통령이 취임 전 검찰간부에게 청탁전화를 한 일이 있잖느냐’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거죠”라는 노대통령의 반응이 튀어나왔다.
노대통령은 검찰을 장악할 의도가 없다고 강조했고, 검사들은 인사위원위 등을 통한 신분보장을 요구했다. 검사들의 대통령에 대한 공격적 언사는 ‘검사(檢事)스럽다’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인터넷에서 단번에 최고의 인기어가 된 ‘검사스럽다’의 의미는 대략 7가지로 기억된다. 그 모두가 매우 부정적인 뜻풀이지만 그래도 젊은 검사들의 객기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그 뜻풀이 중의 하나가 ‘아버지에게 대드는 싸가지 없는 자식을 빗댄 말’로서 당시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

그러나 대통령에 들이댄 그들의 칼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사라진 게 아니라 그 비수가 국민의 기본권을 겨냥하고 있다.
MBC PD수첩에 대한 1심 무죄판결에 대한 논란만 해도 그렇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정치성향이 강한 법관은 형사재판에서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며 “근무평정을 엄격히 해 10년이 지나면 철저한 심사를 통해 자질을 검증하고 다시 10년간 재임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법관 재임용제를 부활시키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법부를 권력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발상이다. 일부 보수언론들은 심지어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후 5년간 무죄 선고가 배 이상 증가한 것을 비판의 자료로 보도했다. 대검 통계를 인용, 2000~2004년 1심 재판 연평균 무죄선고율이 0.15%였으나 이 대법원장 취임 후인 2005~2009년 5년 동안에 약 2배(0.27%)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재판에서 무죄 선고가 많아졌다면 무리한 기소를 했거나 유죄를 입증하지 못한 검찰이 부끄럽고 책임질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여기에 판사들의 학술적 연구모임인 ‘우리법연구회’까지 해체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른바 좌편향이라는 색깔론을 재탕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한 판사들의 사진을 보도하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이들의 사진을 불태우는 보수단체들의 시위가 잇따르고, 법개정을 통해서라도 판사들마저 권력의 하수인으로 만들겠다는 여당의 이념공세가 계속되고 있다.
실소를 자아내는 것은 원인제공자인 검찰의 반응이다. PD수첩에 대한 무죄판결 후 김준규 검찰총장은 정치가보다 더 정치적 언행을 보였다. 사법부 판단에 “국민이 불안해한다”며 전국 검사 1700여명을 대상으로 화상 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그는“검찰은 가야할 길을 의연하고 당당하게 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촛불시위 때 마구잡이로 붙잡힌 시위자들 중 1000여명을 약식기소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100만원~300만원에 이르는 벌금형을 받고 깊은 고민에 빠진 학생과 가난한 시민이 수두룩하다. 이들은 대부분 단순 참가자들이다. 오죽해야‘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나서 이들을 접견하고 무료로 정식재판을 맡아주었겠는가. 그것으로 부족해 민변 변호사들은 시민을 위한 형사절차 안내책자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인터넷 논객‘미네르바’ 박대성씨에 대한 검찰의 구속기소는 국민에 대한 검찰의 태도를 구체화한 상징적 사건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계기로‘걸면 걸린다’는 점을 국민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공익을 해칠 목적 하에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전기통신법 위반)로 쇠고랑을 찬 박씨는 지난해 4월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7년 전 검사들’ 그리워

그러나 웃은 쪽은 검찰이다. 그를 감옥에 보냄으로써 인간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마저 투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국민불안’은 이런 때 제격이라고 할 수 있다.
7년 전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격론에 참여했던 검사들은 이제 중견의 검찰간부가 됐다고 한다. 어떤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부장에 오르기도 하고, 또 어떤 검사는 대검찰청 과장이 되기도 했다는 소식이다. 새삼 그 논쟁을 다시 되새기는 이유는 그들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시절 대통령에게 대든 ‘삿대질’마저 그리운 까닭이다. 지금 평검사들은 검찰의 위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출처] [김광원 칼럼] 대통령에게 대들던 검사들|작성자 전기쥐

yws213@empal.com 2016-09-21 00:36:36
답글

이명박이 현직 대통령으로 있을때,
그의 개가 된 검찰에 의해서
전직 대통령의 예우도 해주지 아니한 사태는
노무현 대통령 밖에는 없을 것이다.

.
1) 1987년 2월 박종철군 추모시위를 주도한 부산의 인권변호사 노무현을
구속하라는 정권의 지침을 받들어, 부산지검 검사들은 영장을 들고
판사들의 집을 하룻밤 새 세 차례나 찾아다녔다.
당시의 부산지검장이 바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다.
세 차례 모두 영장이 기각됐으나 검찰은 결국 7개월 뒤
대우조선 노조파업 개입 혐의를 걸어 구속에 성공했다.
.
2) 2003년 대통령 취임 직후 열린 ‘검사와의 대화’는 하극상 논란 속에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 ‘검새’라는 씁쓸한 유행어를 남겼다.
훗날 검찰과의 격렬한 갈등을 시사하는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
3) 이듬해 탄핵에 앞장선 것도 김기춘·김용균 등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내 검사 출신 정치인들이었으니 우연치고는 묘하다.
.
4) 퇴임 뒤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 에서
“대통령이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면 검찰도 부당한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겠느냐는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며
“검찰이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으면 정치적 독립을 보장해줘도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고 실패한 검찰개혁을 아쉬워했다.
.
5) 공직자비리수사처 등 제도적 개혁을 해놓지 못한 상태에서
검찰의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고 후회했다.
.
6)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캐디 성추행 사건으로 기소돼 망신을 당하더니
잘나가던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정윤회 게이트 뒤끝에 낙마했다.

노 전 대통령 수사를 맡았던 홍만표 전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이
하필 서거 7주기에 정운호 게이트로 벼랑 끝에 몰렸다.
악연은 사후에까지 이어지는 것인가.........
당시 주임검사이자 중수1과장이던 '우 병 우'
현 청와대 민정수석의 향후 운명을 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yws213@empal.com 2016-09-21 00:37:22
답글

이인규(李仁圭, 1958년 1월 22일 ~, 경기도 용인)
이명박 정부에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역임하였다. 임채진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일 때 특수수사를 지휘하는 3차장 검사를 지냈고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지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맡았으며, 주변인물, 일가족을 차례 차례 소환하고 수사 현황은 실시간 언론에 공개되었다.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 일가가 고가의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등 허위 사실이 매체에 유포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다.
권력에 대하여는 형식적으로만 수사하면서 죽은 권력에 대해서만 먼지털이식으로 수사를 진행하였다는 국민적 비난을 받았다. 2009년 6월 기수와 서열을 파괴하고 천성관(사법시험 22회)이 검찰총장에 내정된 이후 고검장급 8명이 모두 공식 사임하거나 사의를 표시하였고, 그는 2009년 7월 14일에 퇴임하였다.

http://c.hani.co.kr/hantoma/1852450

대검 중수부장 이인규
수사기획관(주무) 홍만표
중수1과장 (직접 조사) 우병우
중수2과장 (2003년, 노무현 대통령께 대든 놈) 이석환 (현 제주지검장??)

참단범죄수사과장 (계좌추적 등) 이동열
국세청장 : 한상율

법무장관 김경한
검찰총장 임채진

결재 : 이명박
바람잡이 : 조중동

정태원 2016-09-21 07:33:37
답글

좀 다른 이야기라 죄송한데뎌 이번 부산 지진 때 ㅈ데백화점에서
지진의 기미가 있는데(백화점 문닫기 20분 전) 방송으로 아무런 문제 없으니 마저 쇼핑
즐겁게 하라는 방송 내보내고 판매하는 비정규직? 빼고 정규직 직원끼리 전부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하네요. 이거 20년 전 삼풍 때와 너무나도 닮았네요
이정도면 ㅈ데는 기업이라기 보다는 악마라고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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