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상 선생 6.20 의거"를 아시는지요?
일본이 역사 왜곡하는 것보다 한국인이 한국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지난주 토요일에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소록도 한센병 환자
들이 일제시대에는 물론 해방 후에도 처절한 인권 유린을 당한 사실
을 방송했는데요. 이춘상 선생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춘상 선생은 1942년 6월 20일 오전 8시 5분 소록도갱생원(현재 국립소록도병원)
일본인 원장 수호(周防正季)를 식칼로 살해하는 의거를 일으킨 분입니다.
경북 성주가 고향인 이춘상 선생은 당시 27세였고 한센병(나병) 환자였던 분이지요.
수호 원장은 소록도 한센인 환자들의 고혈을 짜내 자신의 동상(9m 넘는 크기)을
세우고 매월 20일마다 소록도 한센인과 병원 직원 전원에게 참배를 강요했습니다.
1942년 6월 20일에도 "월례 참배"가 열렸고 차에서 내려 걸어오던 수호 원장에게
이춘상 선생이 가슴에 숨겼던 칼을 빼들고 다가가 "너는 한센인들에게 지나친 행동
을 했다. 네가 죽어야 우리가 산다"고 쩌렁쩌렁하게 외친 후 수호의 오른쪽 가슴을 찔
러 오전 9시40분 절명케 했습니다.
이춘상 선생은 결국 1942년 12월 7일 사형이 확정돼 1943년 2월 19일 대구에서 교수
형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춘상 선생의 의거 직후 일본 언론들은 "제2의 안중근"이라고 떠들었다는 기록이 있습
니다. 일본인에게는 안중근만큼 악랄한 테러리스트라는 뜻이고 한국인 입장에서는
안중근만큼 기려야 할 인물이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안중근은 의사로 현양하면서 이춘상 선생은 철저히 외면하는 한국 역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안중근과 이춘상의 차이라면 안중근이 이름 있는 집안 사람에 권총을 사용했지만
이춘상은 천시되던 나병 환자에 식칼을 사용해 의거를 일으켰다는 사실뿐입니다.
권총이 식칼보다는 멋져보이는 것일까요? 일제강점기에 소록도에 갇혀 살던 이춘상
선생이 무슨 수로 권총을 구할 수 있었겠습니까.
10여 년 전에 이세용(61세, 교회 장로)이라는 분이 사비로 "이춘상 선생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의거일(6월 20일)과 사형집행일(2월 19일)에 기념식과 추도식을 열어오다
혼자 힘으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몇 년 전부터 추도식만 열고 있다고 하네요.
제가 이세용 장로와 오늘 통화를 했는데 국가보훈처에 이춘상 선생을 독립유공자로
지정해 달라고 두 차례 신청했다가 모두 기각당한 후부터는 기운이 빠져서 기념사업
회를 유지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일제시대에 경찰서에 폭탄 던지려다가 실패해도 "000 열사"라고 역사
책에 기록하는데 이춘상 선생 같은 분을 기억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역사왜곡
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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