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진주에 갔다가 다시 대전으로 빠꾸해 왔다.
아는 형님과 물가에 한번 가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홀애비 냄새와 파이프 담배향이 진득하게 배어있는 이 냥반은 일반외과 의사이면서
응급의학 전문가로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지명도를 보유한 분이시다.
취향은 3차원을 넘어 4차원에 가깝지만 지식의 폭이 대단히 넓고 대인관계도 원만하여
국내외적으로 많은 인맥을 쌓고 있고 전세계의 재난현장은 물론,
북한에도 10여 차례 다녀 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 이시다.
워낙 야외활동을 좋아해서 그의 차량에는 온통 레저스포츠 용품으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낚시 정도는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준비완료 상태이고 소형보트도
항상 차량에 탑재되어 있는, 그야말로 레저를 위한 다목적 캠프나 마찬가지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영원히 그럴 것 같은 이냥반네 집은 예상대로 온갖 쓰레기와
패스트푸드 식품, 그리고 언제적에 처박아 두었는지도 모를 고기들이 냉동실에 박제처럼 동결되어 있다.
언제나 내가 우선적으로 해야하는 일들은 청소와 요리이다.
우선 냉장고를 정리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바닥을 쓸고 닦고 요리를 해야만 한다.
평소 짭짤하고 얼큰한 음식을 좋아하는 형님을 위해 되야지고기 두루치기를 들들 볶고
박제와도 같은 쇠고기는 푸석거리지만 그럴싸한 불고기로 변환 시켰다.
그리고 가지볶음을 하고 콩나물 냉국을 끓여 냉동실에 식혀 두었다.
소싯적 다년간의 자취 경험과 아무 때나 무작정 떠났던 10여년간의 무전여행 경험이
아무도 말릴 수 없는 만능 요리사가 된 배경이다.
형님의 입은 함지박 만큼이나 벌어졌다.
막걸리 2병을 곁들인 저녁 만찬을 그런대로 성대하게 해치우고 솟아오른 뱃가죽을 쓰다듬으며
슬쩍 낚싯밥을 던졌다.
- 칠보에 한 번 가볼까요?
- 칠보?
- 네, 예전에 거기에서 고기를 많이 잡았었는데 냇가 왕버들이 예술입니다요.
- 피라미도 월척급이 잡히는데 20cm가 넘는 것이 많아요.
- 뭬야? 피라미는 12cm가 최대 크기인데?
- 제가 직접 잡은 것이 23cm 크기였습니다.
- 에이 뻥도 어지간히 치시게.
- 참말이라니까요?
어쨌건 우리는 그놈의 20cm가 넘는 월척급 피라미를 잡으러 칠보로 떠났다.
동행한 또 한명의 일행은 예전 메디슨에서 MRI . CT를 개발했던 김모 박사다.
예상시간은 1시간 30분 가량이었는데 축지법을 썼는지 1시간 만에 당도하였다.
칠보 면사무소에 주차를 하고 20년 전이나 현재나 크게 변모되지 않은 칠보면 소재지 대로를 활보하였다.
밀짚모자도 사고 낚시 용품도 사고 아저씨들이 즐겨 빨아먹는 “비비빅”도 한 개씩 깨물어 먹었다.
마치 어느 시골로 소풍나온 기분이 들었는데 마음은 유유자적하여 평화롭고 잠시나마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 우선 점심부터 해결 하자구.
- 어디로 갈까요?
- 이따가 저녁에는 저기 식육식당에서 먹기로 하고 점심은 간단하게 하세.
우리 일행은 고향식당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주방과 홀이 훤하게 터진 곳에서 자그마한 할머니가 고기를 썰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다짜고짜 음식을 주문하였다.
- 밥줘요!
- 뭐 디릴까?
- 뭐가 맛있어요?
- 즘심에는 백반이 젤 낫제 뭐.
일행을 쳐다보니 모두가 눈으로 동의를 표시하였다.
나는 주인 할머니에게 곰살맞게 아양을 떨었다.
- 할머니 왜 이렇게 이쁘디야?
- 뭘 자시고 사시길래 이렇게 피부가 고울까 잉?
할머니가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천진하고 순박해 보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거의 성희롱에 가까운,
어쩌면 무례할 정도의 행동을 나도 모르게 범해 버렸다.
할머니의 얼굴을 두손으로 감싸고 마치 애인을 바라보듯 쳐다 본 것이다.
할머니가 나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내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속삭이듯 하셨다.
- 나 할머니 아녀!
- 글고 할머니라고 하면 우리 딸이 싫어항게 허지마!
- 옴마? 그럼 할머니 몇짤이야?
- 나 올해 예순 서이.
- 아이고 그럼 누님이시네.
- 그람 지금부터 누님이라고 부를께 잉?
할머니는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을 만들며 웃으신다.
- 이따가 옥수수 삶아줄게 먹고 가.
- 공짜로 주실랑가?
- 그려, 그리고 집에갈 때 한자루 사가지고 가 잉?
우리는 그렇게 고향식당 할머니인지 누님인지와 가까워졌고
다음날부터 개시한다는 삼계탕도 맛뵈기로 한 마리 얻어 먹는 횡재를 하였다.
5,000원짜리 백반 3그릇에 15,000원인데
삼계탕 한마리와 옥수수는 물론 부침개까지 서비스 받는
대박 시골인심을 세트로 경험한 것이다.
칠보는 일곱가지 보물을 담고 있다는 七寶山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이 칠보산에는 신라시대 최치원을 제향한 무성서원과 용계서원, 도봉사와 남천사,
무성리 삼층석탑, 무성리 석불입상, 백암리 남근석 등이 곳곳에 산재해 있고 너른
태인평야를 굽어보는 위치에 있어 예로부터 영산으로 꼽혔다고 한다.
우리는 300년 이상 수령을 자랑하는 왕버드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냇가로 가서
각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낚시 포인트를 잡았다.
형님은 견지낚시를 하고 김박사는 릴로 던지고 나는 3칸 대로 월척 피리미를 겨냥 하였다.
견지는 빠른 물살에서 고기를 잡는 낚시 방법이고
릴은 보다 멀고 넓은 범위의 포인트를 겨냥할 때 유용하다.
대낚시는 이것저것 아무 방법이나 통용할 수 있는 전통적이고 만능의 용도를
가지고 있어 나같은 얼치기 낚시꾼한테는 가장 적격 도구인 셈이다.
고기들한테 별 반응은 없었다.
고기들의 개체수가 감소한 것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20여년 전에 정신없이 낚아
올렸던 고기들은 죄다 피서를 가셨는지 피난을 가셨는지 입질도 하지 않는다.
그나마 제일 선수격인 형님 허리춤의 뀌엄지에 몇 마리의 고기를 매달고 있어
살짝 위안이 되기는 하였다.
자칭 강태공인 김박사는 세월만 낚는 것인지 담배 연기만 뻐꿈뻐꿈 허공에 날리고
있어 물반 고기반이라는 나의 호언장담이 무색하기만 하였다.
투~둑!
고기들이 낚시에 매달린 먹이를 공략하는 느낌이 그렇게 온다.
이것을 낚시꾼들은 손맛이라고 통칭한다.
사실 낚시는 순간포착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라지는 게임과 같다.
어느 순간, 어느 때에 낚싯대를 채느냐에 따라 조과(釣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순간반응이 굼떠 그러한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는 C급도 않되는 낚시꾼 이다.
고기가 이미 진작 낚시 바늘을 물고 있었는데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파닥! 파닥! 몸부림을 치고 “나 잡혔어용!” 이라고 신호를 보낸 후에야 ???!!! 하고
건져 올리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마치 떠나간 버스 꽁무니를 보고 손 흔드는 얼치기와 다름 아닌 것이다.
야구 중계를 보면 헛방맹이질을 하거나 어림 반푼도 없는 공에 스윙을 하는 선수들이 있다.
관객 입장에서 볼 때 “에궁! 저것도 선수라고 ㅉ ㅉ!!" 하는 실망과 한탄이 절로 나온다.
내가 꼭 그짝인 것이다.
그래도 뭐 눈이 멀었거나 멍청하거나 삶을 포기한 고기들을 가끔 낚아 올리기는 한다.
그렇다고 피라미 낚시가 결코 만만하거나 쉬운 것은 아니다.
이 녀석들은 물흐름이 완만한 곳에서는 잘 잡히지 않고 잘 속지도 않는 특성이 있다.
여울지거나 물살이 빠른 곳이 피라미 낚시의 일반적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데
그나마 오랜 경험과 실수의 반복을 통해 어렵게 터득한 나만의(?) 노하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피라미 낚시는 잡아 올리다가 떨쿼버리는 상황이 절반은 넘는다.
그것은 피라미 낚시 바늘의 미늘이 매우 적어 바늘이 꿰인 곳을 꽉! 물고있지
못하기 때문에 몸부림을 치면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낚이는 순간 잽싸게 잡아채서 원심력을 이용하여 안전지대에 떨어뜨려
놓아야 비로소 포획이 완료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낚시를 했던 곳은 칠보천이다.
어릴 때 사회 교과서에서 배웠던 칠보 발전소(섬진강 수력발전소)가 근경으로 보이는 곳이다.
칠보천은 섬진강 옥정호를 역류시켜 압력수로를 만들고 그 수압을 이용하여 발전을 하는
섬진강 수력발전소에서 쏟아내는 물과 주변 지천들과 합쳐져 이루어진 개천이다.
이 칠보천은 칠보와 태인, 그리고 호남 평야를 적시고 김제시 죽산면에서 원평천과 합쳐지는데
이 강을 동진강이라고 부른다. 섬진강 수력 발전소는 1943년에 건설된 것으로 1944년 건설된
화천 수력발전소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발전소이며 엄청나게 큰 파이프가 산 중상층부에서
아래까지 주~욱 설치되어 있어서 조형적으로도 상당히 아름답게 보인다.
이 칠보천에서 잡는 피라미는 유난히도 씨알이 굵고 힘도 세다.
여기 저기에서 낚시를 많이 해봤지만 칠보천 피라미보다 크고 힘이 센놈은 보지 못했다.
20년도 넘은 언제쯤이었던가!
칠보천이 범람할 정도로 엄청나게 비가 많이 오던 날 겁도 없이 나는 낚시를 한적이 있었다.
그것은 낚시가게 아저씨가
- 지금 낚시를 하면 괴기가 무지하게 잘 잽히니께 한 번 혀봐!
라고 대수롭지 않게 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양반이 찍어준 곳으로 가서 낚시를 던져봤다.
맙소사!
낚시대를 던지기가 무섭게 5개나 매달아 놓은 낚시에 전부 고기가 낚여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흔히 “손맛”이라고 하는 것은 물고기와 힘을 겨루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하찮은 피라미라 할지라도 5마리씩이나 걸리면 정말 장난 아니게 낚시대가 휘청 거린다.
물이 많고 물살이 센 곳에는 자잘한 고기들은 휩쓸려 버리고 대부분 크고 힘좋은 녀석들만 몰려드는데
5마리가 한꺼번에 매달리면 낭창낭창한 낚싯대는 중심을 잡기조차 힘들게 되는 것이다.
그날 나는 정신이 없었다.
무수하게 잡아 올리는 피라미가 양동이에 가득 찰 때까지 거의 무아지경에서 낚시를 했었으니까.
그래서 그 짜릿하고 풍성했던 기억이 현재까지도 피라미 낚시에 재미를 붙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잡다가 잡다가 지쳐 양동이를 들고 모정으로 가는데 동네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신다.
- 아따 많이 잡았네요 잉?
- 여그 괴기가 겁나게 많당게.
그 말들은 20년이 지났음에도 현재까지 전혀 유실되지 않고 그대로 저장되어 있는 중이다.
잡을 때는 몰랐는데 고기를 손질하려고 큰 다라이에 쏟아 놓으니 전혀 피라미같이
보이지 않는 정체 불명의 고기들이 상당수 보였다.
아무리 살펴봐도 평소에 내가 알던 어종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놈들은 무슨 고기인가? 라는 의문이 들어 낚시가게 주인 아저씨에게 물어보러 갔다.
- 피리여, 피리랑게!
라고 심드렁하게 대답 하였다.(피라미를 전라도에서는 피리라고 부른다)
- 엥? 이게 피라미라구요?
- 근데 왜 이렇게 크고 통통해요?
- 여그 피리들은 저 밑동네에 먹을 것이 많혀서 배터지게 처먹으니께 딴데 것보다 크당게.
(전남은 말미를 “께”라고 발음하고 전북은 “게”라고 발음한다)
나는 도저히 그 말을 믿기 어려웠을뿐더러 혹시 다른 어종을 이 동네에서는
피리하고 하지 않을까? 라는 의문을 버릴 수가 없었다.
모정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를 끌고 오시는 노인에게 다시 물어 보았다.
- 할아버지 이게 무슨 고기예요?
- 그거 피리잖여, 피리도 몰러?
- 이게 진짜 피라미가 맞아요?
- 당신 어디서 왔능가? 피리를 피리라고 하제 뭐라고 한당가?
- 근데 무슨 피라미가 이렇게 커요?
- 그거야 모른디 좌우간 여그 피리는 솔찮이 커.
나는 그 이후로 몇 번을 더 물어본 끝에 전혀 피라미로 보이지도 않는 체구를 가진
물고기를 어쩔수 없이 피라미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단다.
그래서 제일 큰놈 몇 마리를 골라 다시 낚시가게로 가서 줄자를 빌려 크기를 재 보았다.
가장 큰놈이 무려 23cm.
제일 작은 놈이 19cm.
이후 나는 그 어디, 그 어떤 곳에서도 그렇게 통통하고 힘차고 큰 피라미를 잡아보지 못했다.
수의학 박사 임동주가 쓴 우리나라 민물고기 대백과 사전을 찾아보면,
피라미의 학명은 Zacco Platypus.
분포는 한반도, 중국, 일본, 대만.
크기는 80mm~120mm. 최대 170mm까지 자란다고 씌어 있다.
그렇다면 칠보천의 피라미는 과연 어떤 돌연변이 종이길래 그토록 맘모스처럼 커진 것일까?
그렇다고 생태역학이나 서식환경을 조사할 수도 없는 일이니 내 나름대로,
또는 자기 합리화를 위한 근거를 찾아보기로 하였고 그 결론은 다음과 같다.
물론 당연히 엉터리 결론이자 추측성 근거이지만 그렇다고 100% 허위사실도 아닐 것이다.
그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칠보천, 축현천, 용호천, 정읍천, 덕천천, 원평천은 전부 큰 분지나
평야를 이루는 곳에 위치해 있고 비옥한 토양에서 생성되는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게 공급될
것이라는 나름의 이유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즉, 피라미의 주식인 각종 미생물이나 수서곤충, 또는 부착조류 등이 풍부하니
당연히 영양공급이 넉넉할 수밖에 없고 칠보천의 피라미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돌연변이성 크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뭐, 아님 말고......!
좌 . 우 . 지 . 간~
그날 나는 옛날같이 겁(劫)나게 큰 230mm나 되는 피라미를 낚지는 못했지만
170mm 정도의 크기의 피라미는 잡았더랬다.
최소한 나의 뻐~엉! 같은, 작은 꽁치만한 피라미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라도
확인시켜 준 것임에는 틀림없는 명백한 증거이기도 하다.
칠보 발전소 뒤편으로 검은 비구름이 뭉실뭉실 떠 올랐다.
보나마나 비를 잔뜩 탑재한 비구름이다.
아니나 다를까 불과 5분도 되지 않아서 사정없이 소낙비가 쏟아져 내렸다.
부지런히 낚싯대를 걷고 모정으로 피신하였는데 잡은 고기를 세어보니
얼추 30여 마리는 넘어 보였다.
어떤 녀석은 여전히 혈기방장하여 팔팔하게 파닥거리고
어떤 녀석은 모로 누워 입주뎅이만 껌벅껌벅하며 사망 직전이고
어떤 승질급한 녀석은 일찌감치 자살해 버렸는지 바닥에 누워 계시다.
빗줄기가 사납게 볼때기를 때려대는 와중에도
우리는 300년이 넘어 보이는 왕버드나무 군락을 구경하러 갔다.
뭐 모정 바로 옆에서부터 10여 그루가 줄지어 서있으니 거기서 거기지만 말이다.
- 이게 버드나무라고?
- 그럼요. 왕버드나무입니다.
- 버드나무가 종류가 많은가 보네?
- 네, 수양버들, 능수버들, 갯버들, 용버들, 왕버들 등이 있습죠.
- 그렇게나 많나?
- 훨씬 더 많을 걸요?
급기야 모정에 앉아 스마트 폰으로 버드나무 종류를 찾아 보았다.
으잉?
나도 몇종류를 나불거리고 아는척을 하긴 했으나 이렇게 많은 종류가 있는줄은 전혀 몰랐다.
왕버들, 선버들, 갯버들, 버드나무, 수양버들, 능수버들, 개키버들, 용버들, 갯버들, 눈갯버들,
참오글잎버들, 호랑버들, 진펄버들, 늪버들, 눈살버들, 큰살버들, 들버들, 육지꽃버들, 섬버들,
강계버들, 매자잎버들, 쌍실버들, 참오글잎버들, 꽃버들, 가는잎꽃버들, 긴잎꽃버들, 떡버들,
반짝버들, 선버들, 털왕버들, 쭉버들, 눈갯버들, 좀꽃버들, 좀분버들, 긴매자잎버들, 좀호랑버들,
여호버들, 난쟁이버들, 키버들, 붉은키버들.........!!!
무려 41종이나 된다.
이 중 어쩌면 같은 종을 다른 이름으로 표시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종이
더 있는지도 모르지만 생각보다 엄청 많은 종류에 땀짝! 놀란 것은 사실 중의 사실이라는 거다.
우리는 버드나무 종류의 다양함에 새삼 놀랐고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는 와중에서도
장군처럼 버티고 서있는 왕버들 나무들을 세어보기로 하였다.
하나, 두~울, 서이, 너이...... 도합 16그루.
태풍때문었는지 벼락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질병으로 돌아가셨는지
부러지고 고사한 나무까지 합하면 20그루는 족히 넘었던 것 같다.
근래 사람의 수명이 대폭적으로 높아져 흔히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이 나무들은 300년을 더 살고도 여전히 장대한 근골과 풍성하기 그지없는 줄기,
그리고 이파리들을 과시하고 있어 한편으로는 부럽기 짝이 없기도 하다.
허긴 바오밥 나무는 6,000년을 살고도 여전히 건강하시니 무신 할 말이 더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왕버들 나무들을 그냥 초목의 하나로 생각하기 보다는 같은 생명체로서
존경과 경외하는 마음으로 공손하게 대하기로 하였단다.
- 아이고, 나무님들 건강들 하시지유?
- 오늘 기분은 워떠시대유?
- 진지는 잡솼는가유?
......!
한낱 초목에 불과하지만 장구한 세월에도 끄떡없는 건강과 풍채를 소유하고 있는 왕버들.
만물의 영장이 무슨 대수라고 자연만물에 대해 의시딱딱 거릴 수 있을 것인가.
생명을 유지하고 그 삶을 살아가는 과정은 인간이나 초목이나 똑같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하루살이나 7년을 땅속에 살고 햇볕은 1년도 보지 못하는 매미까지도 말이다.
순식간에 하늘을 덮어버렸던 검은 구름은 남서풍에 실려서 먼 산 너머로 스르륵! 넘어 가신다.
그렇게 순식간에 퍼붓던 빗줄기도 짧은 시간에 냇물을 뻘겋게 만들어 놓고 뚝! 그쳐 버렸다.
애초 계획하기로는 쇠고기를 구워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하였는데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애매하기 그지없는 30여마리의 피라미 때문에 고민 스러웠다.
- 어떻게 하지?
- 뭘요?
- 이 고기들을 어떻게 할 거냐고?
- 매운탕......#$%&*ㅜㅠ....!
- 근데 어디가서 매운탕을 끓이냐고?
솔직히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집으로 가져가자니 끓이는 것도 그렇지만 가져가는 사이에 부패할 것이
십상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 점심 먹었던 식당가서 한 번 부탁해 볼까요?
- 해줄까?
- 모르지요. 뭐 돈 준다고 하면 않되겠습니까?
일단 우리 일행은 점심을 먹었던 식당으로 가기로 하였다.
저녁시간이라 홀과 방에 제법 많은 손님들이 앉아있었다.
나는 낮에 애교를 떨어 바쳤던 식당 누님에게 애교와 아부탄 1발을 장전하고 발사 하였다.
- 아이고, 누님 또 왔시오^^
- 근데 누님 이거 매운탕 끓여 줄 수 있어요? 돈 디릴께......
- 피리 잡았어?
- 네.
좋다 싫다 내색도 없이 식당 누님은 달랑 고기를 인수해 가시더니,
뚝딱! 뚝딱! 뭔가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찐옥수수 3개를 휙 던져주며,
- 시장할텐디 이거 우선 먹고 있어.
옥수수는 정말 진짜로 맛이있었다.
윤기나면서도 야무진 알갱이가 차지면서도 톡톡 터지는 식감이
사카린을 넣어 삶은 길거리표 옥수수하고는 유전자부터 다른 것 같았다.
나와 감박사는 하모니카 불 듯 알갱이를 훑어 씹어먹고,
형님은 절반으로 뚝! 부러뜨려 손톱으로 하나씩 알갱이를 따서 잡수신다.
영락없이 옛날 하나씨(할아버지를 부르는 전라도 방언)와 할매가 잡수시는 모습이다.
옥수수를 다 먹기도 전에 누님은 매운탕 냄비를 가져다 주신다.
아~니 벌써?
불과 5분 남짓인데 무신 초특급 쉐프라고 그 짧은 시간에 매운탕을 만드셨남?
이거 보나마나 비린내에 범벅된 매운탕이 아닐까? 라는 선입견이 그냥 확! 들어서
입맛이 돌기는커녕 도대체 이걸 매운탕이라고 먹어야 하나? 라는 비관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 누님 이거 더 끓어야 하는 것 아닌가?
누님은 힐끗 쳐다보더니 한마디 던지신다.
- 왜, 삐린내 날 것 같아서?
- 네, ......!
- 그럼 더 끓여서 먹어.
- 근디 피리는 오래 끓이면 고기맛이 없고 양념맛 밖에 안나.
- 그래도 자작하게 더 끓여서 먹을께요.
- 알아서들 혀. 근디 내가 피리요리를 30년을 넘게 했당게.
뭐 그러셨건 말건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다시 매운탕을 끓여대기 시작하였다.
찌그러지고 시꺼먼 불때가 여기저기 박혀있는 납작한 양은냄비가 이내 열을 받아들이고 끓기 시작하였다.
불쌍한 피라미들은 눈도 감지 못하고 뜨거운 냄비바닥에 줄지어 누워 있다.
그 모습을 쳐다보니 갑자기 ‘명태’가 생각이 났다.
‘명태’는 오현명이 불러서 유명해진 가곡인데 작곡 당시 ‘그것도 노래냐?라는
비아냥을 무수히 받았던 설움많은 노래이다.
명태
검푸른 바다 밑에서
떼지어 줄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대로 컸을 때
.......중략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집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되었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 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
......중략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쫘악 쫙 찢어져 내 몸이 없어질 지라도
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
명태, 명태라고......!
우 화~화~화~하~하~하!!
한국의 대표적 바리톤 오현명이 낮고 굵직한 목소리로 명태를 부를 때
그 해학적인 가사와 함께 묘한 비조화속의 조화를 느꼈던 것은 비단 나뿐만의 느낌이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뒷주머니에 2홉짜리 쐬주 한병 쑤셔넣고 명태쪼가리 우적거리며
갈지자 걸음을 걷던 풍경도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었던, 불과 20~30년 전의 서민의 풍속도가 아니었던가!
양은냄비에 누워있는 피라미는 애호박과 양파에 뒤섞여 있고 대파도 한주먹 얹어져 있다.
양념은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약간의 고추장 냄새가 배어 나오고
다진마늘과 고춧가루가 뽀굴뽀글 끓어오르는 방울속에 튕겨져 나온다.
-지금 먹어도 되는디....
주방의 누님이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듯 한마디 하신다.
뭐, 무신 맛이나 있을라구?
솔직히 우리 셋 모두 똑같은 생각이었던 듯 심드렁한 얼굴로 매운탕을 먹기 시작하였다.
일단 막걸이 한잔씩 입가심하고 얄포롬한 피라미 살점을 떼어 안주로 삼았다.
그런데 두분 모두 아무런 말씀들이 없으시고 부지런히 피라미 해체작업에 몰두하고 계신다.
나를 포함한 세사람 모두 별로 먹잘 것도 없고 뜯을 것도 없는 피라마들을 앞접시에 옮겨놓고
열심히 젓가락으로 헤집고 있었던 것이다.
- 아따 그거 생각보다 무지 맛나네?
- 허 참, 피라미 요리를 이렇게 맛있게 먹어보기는 첨인 것 같습니다.
- 이 . 하 . 동 . 문~
참새가 황새걸음을 쫒아가기는 애시당초 어림 반품도 없는 것이고
아마추어 동네 바둑이 프로 기사의 반면 구상을 어림짐작도 못하는 것과 같이
30년 경력의 프로 요리사의 경험과 손맛을 의심한 우리는 내심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역시 세상은 넓고 사람들도 많고 내공 깊은 무림 고수들도 많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 것이다.
솔직히 우리는 식당 누님한테 괜시리 미안하고 송구하고 죄송스러웠다.
밥 3공기와 막걸리 2병밖에 주문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에잇! 벼룩도 낮빤대기가 있지!
어떻게 시골 식당이라고 뻔뻔하고 추접스럽게 적당히 눙쳐서 저녁밥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일말의 양심을 쿡! 쿡! 찔러대는 3인의 공감대가 도의적, 양심적,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
거 뭐시기냐......보편타당함은 물론, 공정거래 질서에도 위배된다는 생각을 동시에 가졌던 것이다.
- 누님, 여기 되야지 고기 한접시 볶아줘요.
식당 누님이 흘끗 식탁을 쳐다보더니,
- 됐어. 그만 자셔!
- 아니, 뭐 그래도......!
- 뭐, 아직 배가 안찼어?
- 그래도 먄해서리.....!
- 그만 먹어, 살찐게
- 아이 그래도 막걸리 한 병 더주시고 한접시 볶아줘요!
- 됐당게, 미안해서 그려?
- 네~
- 맛있게 먹드만, 밥먹고 막걸리 먹고 강냉이까지 먹었으면 됐지 뭘 더먹을라고?
우리는 옥신각신도 아닌 사정을 하다가 결국 식당 누님의 단호하고도
추상같은 명령을 따르기로 결의하고 말았다.
사실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워서 그랬던 것이지 음식을 더 먹을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손님의 생각까지 짚어 주던 속깊은 생각에 내심 적잖게 감동을 하였음은 물론이다.
- 누님 여기 계산.
- 20,000원만 줘
- 네?
- 잔소리 말고 20,000원만 내고 담에 또 와 잉?
- 아이고 내가 20년만에 왔는데 언제 또 올 수 있겠어요?
- 사람 인연은 몰라. 내일 또 올지 모레 또 올지.
식당 누님은 세상을 달관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하였다.
나는 또 한 번 그런 누님의 볼에 테러를 가하고야 말았다.
- 쪽!
- 누님 잘 먹었어요. 또 올께요^^
누님은 눈을 흘기면서도 곰살맞은 내 뽀뽀가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딸도 같이 웃었다.
대전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조금 넘었다.
아침에 칠보로 출발한 시간이 오전 11시 쯤이니 하루의 절반쯤을 칠보나들이에 사용한 셈이다.
녹작지근한 육신을 샤워로 닦아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형님은 피곤했는지 벌써 다랑다랑 코를 골며 주무신다.
그러면서도 못내 아쉬움이 가시지 않았다.
도대체 그 작은 꽁치만한 피라미는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20년의 세월이 결코 짧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그 사이에 서식환경이 대폭 악화된 것은 아닐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몽땅 잡아가버린 것이 아닐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냇가의 왕버들은 여전히 풍채좋은 모습으로 버티고 서 있었다.
나는 20년이나 늙었는데 이 나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는 것 처럼 보인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그자리에 그대로 버티고 서서
세월이 가는지 네월이 가는지 괘념치 않고 흐르는 물과 함께 영원히 칠보천을 지키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