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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패전에 대한 추가 설명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6-07-13 12:26:45
추천수 14
조회수   986

제목

일본의 패전에 대한 추가 설명

글쓴이

이춘성 [가입일자 : 2008-12-18]
내용
많은 분들이 그저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폭탄을 맞으면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했다고 알고 계십니다.

짧고 어줍잖은 저의  지식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드려 볼까 합니다.



2차대전중  원자폭탄의 힘을 알고 그것을 개발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던 나라가 대표적으로  일본과  미국, 독일입니다.   결과적으로야 누구나 아시는 것처럼 미국만이  성공했습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지휘하는  이른바 맨해튼 계획에 의해  원자폭탄을 완성한 미국은   그 힘을 누구보다 잘알아서  일본에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극렬한  반항으로  대응하자 어쩔수 없이 사용하게 됩니다.  일본은 아시다시피  전원 옥쇄를 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전멸할때까지 미군을 상대로 저항했습니다.  이에 미국은  이런 식으로 일본 본토를 점령해 나간다면  수십만명의 미군이 더  희생될 것이라는 예측을 하게 되고  어쩔수 없이  원자폭탄 사용을 하게 됩니다. 

 

이부분은 거의 모든 분들이 아시고 계실 겁니다. 



그러나  일본이 원자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고  무엇보다  원자폭탄 실험을 한반도에서  했던 것은 많이들 알지 못하시더군요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에  맨해튼 계획을 주도했던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있었다면  ㅡ  물론 밑에 수많은 과학자들이 있었지만요. ㅡ   그리고  소련의 2차대전 이후 원자폭탄개발에 이고르 쿠르차토프가 있었다면  일본에는   니시나 요시오 박사가 있었습니다. 



일찌기 서구로의  유학을 통해 실력을 쌓았던 니시나 요시오는  이후 일본에서 원자폭탄 개발에 매진하게 됩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일본이 지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즉 과달카날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에서 연전연패를 하게 되고  급기야 미군은 오키나와까지 상륙합니다.. 

이어 미국은  B ㅡ 29를 비롯한 폭격기들을 동원해서 일본의 본토까지 맹폭하기에 이르지요.



이에 일본은  더 이상 본토에서  원자폭탄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원폭개발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당연히 그 모든 설비를  이전해서라도  개발을 해 나가기로 합니다.   

그렇게 해서 어느 곳으로  이전해 갈까 고민한 끝에 결정된 곳이 우리나라 북한의 함경남도 함흥 입니다. 

여기서 잠깐  함흥을 설명해 드려야  위의  문제에 대한 해답에 도움이 됩니다. 



함경남도 함흥은  내륙으로는 함흥평야가 있고  또한 부전강과 장진강 등  많은 수자원을  끼고 있습니다.  

더불어 무엇보다 좋은 조건으로는 바로  가까운 곳에  흥남항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일본은 이곳을 한반도 병탄이후부터 중국진출을 위한 병참기지로 낙점해서  수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일본의  수력발전건설에  독보적인  이였던 노구치 준을 불러다가  부전강과 장진강을 비롯한 여러 곳에 수력발전소를 세웁니다.    수력발전을 위해 인공호수까지 만들 정도로 엄청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죠.



그리고 함흥공업지구를  조성해서  장차 중국을 침략했을 때를 대비해서  수많은  군수물자를 생산하게 합니다. 

더불어  일본군의  식량조달을 위해  비료공장까지  건설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중국진출을 위한 완벽한 병참기지로 키워낸 겁니다.



원자폭탄 개발에는 수많은 설비와  최고 인력뿐만 아니라  막대한 전기가  필요합니다.

미국이 맨해튼 계획을 위해  발전소와  도시 하나를 건설했었을 정도라면 이해가 되실겁니다. 



일본의 본토가  그야말로 무방비상태로  ㅡ 일방적인  폭격을 당하게 되자  일본은  원폭 개발을 위한 설비와 인력을  모두 함흥공업지구로 이전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막대한 전기와  공업시설, 더불어  흥남항까지 있었으니 그 어느 곳보다 좋은 최적의 장소였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한가지 더 중요한 것은 북한에 우라늄매장량이 상당하다는 이유도 작용했습니다.  일본은  원폭을 만들이 위해 진작부터 일본본토와 한반도에서 우라늄 매장량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그때 북한지역에  우라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정제된 우라늄은 독일로부터  U보트를 통해  공급받을 계획이긴 했습니다만 .. 



아무튼  일본은  45년 8월 6일과 9일에  원자폭탄을  맞아서 그야말로 초주검상태로까지 몰리지만  바로 그 다음날인 8월 10일에  니시나 요시오 박사가  주도해서 만든 원자폭탄 시제품을  흥남항 앞바다에서  실험하게 됩니다.



일본은  원폭실험이 성공하게 되면 어떻게든  미국 본토에  투하해서  미국과의 전쟁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었지만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흥남앞바다에서  실험된 원폭은  폭발하지 않았고 이에 일본은 더이상 전쟁수행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항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욱하고 어리석은 이의 어줍잖고 같잖은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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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2016-07-13 13:30:54
답글

미처 몰랐던 비사를 알게되었네요...^^♥
일본의 원폭실험이 성공했다면 세계사가 어떻게 변했을
지 모르겠네요...
그랬다면 녹조라떼 땅박이와 다까키 마사오의 후손들은 살판..
지금도 살판났지만...ㅜ.,ㅠ^

강민구 2016-07-13 16:25:49
답글

오호 재밌네요^^

황준승 2016-07-13 19:01:50
답글

흥남에 대규모 공업시설이 있었고,
거기 시설들을 봐서는 분명히 원자폭탄을 연구하고 있었을 거라는 내용은 봤는데,
실제로 실험까지 시도했다는 얘기는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일본 대단했네요.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지 않고 그대로 통일이 되었더라면
흥남의 그 거대하고 발전된 공업시설들을 고스란히 활용할 수 있었을텐데요.
일본이 급히 항복하고 퇴각하느라 핵개발 관련 중요시설과 자료만 없애버리고
나머지 공업시설들은 고스란히 남겨놓고 떠난 것 같은데,
흥남철수 때 폭파시켜 버렸고, 이후로도 평양이나 흥남 같은 도시를 몇년간 무수히 폭격을 해서
나중에 흥남에는 건물이 다 사라져 버린 사진을 봤습니다.
북한이 미국을 철천지 원수로 볼만도 하겠더라고요.
미국이 그렇게까지 한건 재고폭탄 소진을 위해서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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