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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학익진에 대한 부연설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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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3 11:32: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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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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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학익진에 대한 부연설명입니다.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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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성 [가입일자 : 2008-12-18]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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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저의 2차대전 학익진 사용에 대해서 말도 안된다라는 주장을 하시는데요
저의 근거는 이렇습니다.
먼저 학익진이라는 전법에 대해 설명을 해드리지요.
학익진은 중국의 병법에 나오는 진법중에 하나입니다. 긴뱀처럼 이어진 장사진, 여러가지로 변형되며 적을 괴롭힐 수 있는 팔괘진법 등등 - 수많은 진법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학익진은 말 그대로 학이 날개를 편 형상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진법입니다. 한자 고무래 정자와 너무 닮아 정자진법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진법을 가장 완벽하게 적용하신 분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구요. 이순신 장군이 결코 학익진을 창조해 낸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분은 누구보다 많은 진법을 비롯한 병법에도 상당한 경지에 오른 분이었습니다.
일찌기 이순신장군을 싫어하는 이가 높은 관직에 있는 이에게 이순신장군을 두고 병법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한낱 무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하며 모함하자 나중에 그 높은 관직에 있는 이가 이순신 장군을 볼 기회가 오자 따로 불러 병법에 대해 물어봅니다. 이에 이순신 장군은 즉석에서 각종 진법을 그려보이며 자세히 설명하자 그는 자기가 남의 말만 듣고 큰 실수를 했다고 인정한 일이 있을 정도였지요.
영화 명량을 보신 분들 중에 이런 생각을 해 보신 분이 있을지 모겠습니다.
명량해전에서 겨우 12척 혹은 13척의 배로 수백척의 압도적인 전력의 적을 상대로 싸워 이겼는데 왜 거의 대등한 전력으로 이긴 한산도 대첩이 임진왜란 3대 대첩중 하나이고 왜 세계 3대해전으로 꼽히느냐구요.
한산도 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이 쓴 전법이 학익진이었는데 크진 않지만 어쨌든 전력상 우위의 적을 완벽하게 괴멸시킨 전투였기에 ㅡ 해전역사상 가장 전투로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학익진의 진법이 수백년 뒤 항공모함의 공중전력으로 싸우는 전투에서 왜 적용이 되느냐고 - 그건 말도 안된다고들 하시는데요.
조금 깊게 들여다보면 저의 말이 전혀 터무니 없지않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일본이 이른바 대동아 경영권의 기치아래 동북아와 동남아 등을 침탈할때부터 미국은 이미 일본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한반도 침탈에 이어 만주사변 및 만몽 영유계획을 통해 중국을 먹어 들어가고 이어 동남아로까지 뻗어나갈때 미국은 일본이 장차 자신들을 목표로 할 것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예측을 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과연 손만 놓고 있었을 까요?
제가 올린 글에서도 언급이 되었지만 이에 미국은 진작부터 일본에 대해 나름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전쟁능력과 전쟁의 방향,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의 역사까지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일본이 청일전쟁, 러일전쟁, 그리고 멀리는 여몽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하려 했으나 그마저 실패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일본이 단한번도 외적으로부터 진적이 없었지만 오직 한번 임진왜란에서 이름없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명장 이순신으로부터 완벽하게 패했던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학익진으로 인해 진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걸 학익진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T 형 진법으로만 이해했지요.
2차대전은 개전 초기에는 거함과 거포로 이루어진 전투였습니다. 해전의 경우에 거함과 거포를 맹신하는 경우가 많아 탄생한 군함들이 바로 미국의 미주리호, 일본의 무사시와 야마토함, 독일의 비스마르크 호 등이지요.
초기의 이러한 거함과 거포에 대한 맹신과 추종은 이후 여지 없이 무너지게 되는데 바로 항공모함 전력과 항공모함에 탑재된 공중전력으로만 싸웠던 미드웨이와 산호해 해전입니다.
이러한 해전에서 초기 니미츠와 그 밑에서 일하는 수많은 지휘관들은 처음 학익진으로 ㅡ 그들이 말하는 T 형 진법으로 나갑니다.
다만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으로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했던 한산도 대첩과 달리 해전의 방향은 전혀 다르게 전개 되지요.
니미츠를 비롯한 그 밑의 참모들 누구도 학익진으로 전세를 펼쳤다는 것이지 그것으로 미드웨이와 산호해 해전으로 이겼다는 것을 결코 아닙니다.
이미 그러한 전법으로 상대방을 포위하다시피 해서 궤멸시키는 시대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학익진이 미드웨이와 산호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거나 아니면 상당한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이미 거함, 거포, 항모전단으로 전쟁을 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옛날 진법이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였으니까요.
저의 주장에 대한 나름의 제 설명은 이것입니다.
그리고 자꾸 니미츠가 일선에서 지휘를 안했는데 왜 그를 거론하느냐고 하시는데 제가 거북선을 만든 이가 실제로는 나대용과 이름없는 목수 및 이름없는 병사들이지만 나대용을 알건 모르건 그냥 보통 거북선을 만든 이는 이순신 장군이라고 말하는 것에 비유해서 설명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지금도 저의 주장과 생각이 틀리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반론을 제기 하고 싶은 분들은 각기 나름의 근거로 주장해 보시기 바랍니다.
해명할건 해명하고 또 제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고치겠습니다.
다만 핵심이 아닌 지엽적인 부분을 말씀하시거나 답할 가치가 없다는 등의 기분나쁜 발언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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