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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성씨에 대한 간단한 설명입니다.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6-05-16 17:24:10
추천수 22
조회수   2,439

제목

일본 성씨에 대한 간단한 설명입니다.

글쓴이

오세영 [가입일자 : ]
내용
 

(인터넷에 혐일자료가 꽤 많은데 그 중에 일본 성씨가 전국시대의 문란한 성생활에 따라 만들어졌고 기모노도 그런 목적이라는 주장이 있어서 간단한 배경설명을 한 것입니다. 혹시 그런 종류의 글을 보시면 출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요즘 왜군의 코무덤/귀무덤, 조상님의 노예생활을 정리하고 있어서 일본에 대해 좀 불편한 감정입니다. 그렇더라도 악랄하게 왜곡된 거짓이 퍼지는 것은 막아야겠죠.)





중세 일본은 워낙 무식했던 시절이어서 일부 세력층만 성씨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새로 성씨를 만들거나 높은 사람에게 한 두 글자를 내려 받아 사용했죠.



그래서 일본의 절대 영웅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마쓰다이라에서 바꾼 것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워낙 가문이 미천해서 많이도 바꿨습니다. 



그러다가 메이지 유신과 더불어 농민들도 성씨를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지명, 직업명, 상점명 등으로 엄청난 수의 성씨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인터넷에 출처없이 떠도는 이야기는 참 위험한 것이 많습니다.



기모노에 대해서는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듣던 35년 전 이야기가 아직도 좀비처럼 살아돌아다녀서 설명할 가치도 없습니다. 그 때는 워낙 교육이 부족했을 때라 선생이 그런 소리를 수업시간에 할 정도였죠.



베개를 메고 다닌다고 했는데 기모노의 오비라는 끈을 몇 번 묶는 치장에 불과합니다. 펼치면 베개나 모포가 될 수도 없는 형태입니다. 제가 아는 지식범위에서는 일본여성의 팬티가 없었기에 원래 안에 안 입었고 남성도 훈도시라는 허접한 천 하나만 가렸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모노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만나봐야 알겠지만 전국시대는 생존이 목적일 정도로 궁핍한 생활이었습니다. 기모노를 구경해본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우리 평민처럼 삼베 옷으로 대충 몸만 가리고 살아가던 시대입니다. 



일본 유곽의 몸파는 여자들도 돗자리를 가지고 다녔지 모포를 등에 접어가지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에도 시대에는 ‘묘지타이토(苗字帶刀)’라 해서 무사 계급만이 성씨를 쓰고 칼을 지닐 수 있었다. 성씨는 칼과 함께 세습적 신분의 특권이었다. 일반 평민은 세습적 성씨를 갖지 못했다. 무사 계급이 전체 인구의 6퍼센트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일본의 ‘전통’은 부부 동성제가 아니라 ‘성씨’는 없고 이름만 있는 ‘무씨제(無氏制)’ 사회였다고도 볼 수 있다.


메이지 유신 후 신정부가 1870년에 ‘평민묘자허용령(平民苗字許容令, 苗字는 성姓을 뜻한다)’을 공포해 처음으로 일반 서민도 성씨를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평민들은 성씨가 오히려 납세와 군역 등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여 사용에 소극적이었다. 그러자 메이지 정부는 1875년에 ‘묘자필칭령(苗字必稱令)’을 공포하여 유럽식 호적 제도를 도입하였고 이에 따라 일본인들은 모두 성씨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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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흥 2016-05-16 17:31:08
답글

난 일본 미운짓할때 성 인용해서
일넘들 잡놈이라고 그러는데
그럼 안되것네요 ㅜ.ㅜ

uesgi2003 2016-05-16 17:37:14

    정말 악랄하게 퍼진 자료입니다. 이전 글에 단 댓글은 수정하겠습니다.

다른 글에 기분이 상했었던 차에 괜히 공격적인 댓글을 달았습니다.

박영문 2016-05-16 19:34:37
답글

보다 더 근본은 지배층의 효율적 지배를 위해 허가(?)한 것입니다. 지배층이 성씨를 부여함으로 자기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한국의 화폐 도안에 항일운동가가 들어갈 수 없는가? 을사늑약 주도자 이토 히로부미를 한국민은 정말 환영했는가? 실제 초빙한 것도 당시 왕조(지배층)입니다. 역사적으로 의아한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닌데 근본적인 것을 찾아 보면 대부분 지배세력의 지배 효율화로 귀결됩니다.

박헌규 2016-05-17 11:05:31
답글

일본은 중앙집권적 관료제도가 잘 조직 되었던 우리와는 다른 소위 봉건적 시스템이었던 것 같습니다.
봉건제도이라는 것을 교과서로만 배운 우리들로서는 언뜻 그림이 잘 안그려지는데
농민이라는 신분은 농노로 농토에 포함된 부속물정도로 취급되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국가나 민족이라는 개념에 또 주인에 대한 유대감, 충성 이런 따위도 없었을 것 같고
지들을 수탈하던 무사가 말타고 나가서 싸우면 누가 이기나 구경하다가 새로운 패권자가 결정되면
또 그 아래서 농노가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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