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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 월 충청도 이모가 돌아셔서 갔다가 들은 얘기들.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6-05-15 04:18:41
추천수 16
조회수   2,499

제목

지난 2 월 충청도 이모가 돌아셔서 갔다가 들은 얘기들.

글쓴이

진영철 [가입일자 : ]
내용
지난 2 월 이모가 돌아가셔서 충청도에 갔다가 둘째 삼촌을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육영수 여사 집안 얘기를 들었었는데..





그 집안이 상당히 대단한 집안 이었다는 얘기가 들리더군요.





삼촌 말씀이.





"외정때도 일본 경찰서장이 부임하면 제일 먼저 인사 드리러 찾아왔다~" 그만큼 대단한 집안이었다 라는 얘기도 있었고.



"박정희 대통령을 사위로 맞는데 별로 탐탁치 않아했고 나중에 별을 달고 왔어도 그리 환대하지는 않았을 정도로 대단한 집안 이었다."





라는 말씀을 하더군요.



재산도 많았고 지역에 미치는 영향력도 대단했고 군에서 장군이 사위로 와도 그리 탐탁치 않아 했을 정도의 집안이었다라는 얘기죠.





왜 탐탁치 않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데 뭐 나중에라도 알려지겠죠.



육영수 여사가 뭐 박정희씨한테 시집가서 고생도 많이 했고 그랬죠.





삼성병원 응급실 하나가 육영수 여사 전용으로 만련되어 있었다라는 일화도 들려오더군요.박정희 대통령 한테 직언을 하다가 가끔 재털이로 맞아서 그렇다 라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가 들려오기는 하네요.





뭐 육영수 여사의 곧은 성품이 어디 하늘이나 개천에서 그냥 뚝 떨어지거나 솟아 오른것은 아니라는 얘기가 되겠네요.







일제치하에서도 일본의 관리가 인사를 하러 왔을 정도라면 대단한 집안이라고 보기는 봐야 할것 같습니다.





뭐 육영수 여사 집안이 뒤로 독립운동 자금을 대줬다면 대 대단하다고 해야 겠으나 친일집안인지 반일 집안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네요.









뭐 요즘 육영수 여사가 추진한 지붕 슬레트 개량 사업이 일부에서 도마에 오르기는 했으나 석면의 발암 여부는 여즘에나 알려졌지 그 당시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기는 합니다.





락스를 구충제로 먹던 시절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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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길 2016-05-15 09:27:46
답글

옥천 옛동네(구읍)의 정지용 시인 생가와 제가 좋아하는 묵집과 가까이 있어서 그 동네를 가끔 가는데요...
한 동안은 버스들을 타고 많은 어르신들이 성지순례 마냥 단체로 다녀가곤 했지요...
저야 묵만 먹고 오지만요...

daesun2@gmail.com 2016-05-15 11:42:43

    ㅎㅎ 그렇군요

박노균 2016-05-15 10:32:25
답글

대지주였다고 하니까.. 요즘으로 치면 재벌이거나,, 최소한 금수저라고 봐야겠죠.

daesun2@gmail.com 2016-05-15 11:42:58

    그렇네요.

금수저~~

이승훈 2016-05-15 11:16:29
답글

다음에 이렇게 나오네요
* 육영수의 선친, 친일파 거두 육종관

daesun2@gmail.com 2016-05-15 11:42:23

    친일파였군요.

반전을 기대했는데 말입니다~~

황준승 2016-05-15 12:17:19
답글

직언을 하다 재떨이로 맞았나요?
제가 그동안 알기로도 영계 너무 밝히지 말라고 직언 하다 맞았다고 얼핏 들은 것 같아요

daesun2@gmail.com 2016-05-15 16:24:41

    전해지는 얘기다 보니 정확도는 기다할수가 없죠

이영록 2016-05-15 14:21:29
답글

삼성병원은 1991년경 설립되었을겁니다.
제가 삼성생명건물에 근무할 때 삼성의료원 설립을 위하여
의사,간호사 등 병원관계자 모집이 진행되었거든요.
육영수여사는 1974년인가 총을 맞았구요.
삼성병원에 육여사 전용병실은 뭐가 잘 못 알려진 내용인 듯 합니다.

daesun2@gmail.com 2016-05-15 16:25:05

    다른병원을 잘못 기억하나 봅니다.

진성기 2016-05-15 18:39:28

    1981년 삼성벼원에서 잠시 일한적 있습니다.

확인해보니 1968년 설립되었습니다.

daesun2@gmail.com 2016-05-15 18:55:01

    아 제 기억이 맞나 봅니다.

김재흥 2016-05-15 16:31:22
답글

박대통령과 친척관계인가요..

daesun2@gmail.com 2016-05-15 18:35:33

    친척이요?

음 .... 너무 허황된 추측이신데요.

김재흥 2016-05-15 20:42:51

    제목과 글을 연결해보니 먼친척분이 그런소릴 한건가..
아주 단순 궁금증이 발동해서 물어본겁니다
혹시 불쾌하셨다면 사과 드리죠

허환 2016-05-15 20:31:26
답글

어머니가 아시는 분이 육영수여사 동네에 살았는 데...
육영수의 선친 육종관은 팔도마다 첩이 하나 씩 있던..
번식력(?) 높은 소문난 친일파로 소문이 자자하다더군요.

육여사 본인도 박정희에게는 두번째 부인이었고...
육여사의 어머니가 육종관의 여성편력에 얼마나 힘들게 살아 왔는 지를 똑똑히 보아왔었기에

박정희가 자신의 부친보다 더 화려하게 여성편력에 빠지는 꼴을 보고서...
재떨이에 맞도록 박정희와 싸우지 않았을까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김재흥 2016-05-15 21:07:07

    박정희가 문경국민학교에서 2년 7개월인가 근무한걸로 나오는데
그전에 이미 본가에서 결혼을 햇더군요
부인이름이 김호남 딸이 박재옥이죠
그리고 처자식 냅두고 관동군관학교 지원하고
일본 패망후 몰래귀국해서 군내서 좌익 빨갱이 운동하다가 잡혀 사형언도 받죠
재밌는건 그와중에도 본처는 팽개치고
이화여대 이현란과 동거를 합니다
남로당검거 작전으로 잡혀갈때 이현란이 임신중였고 출산했지만 아이는 사망합니다

제가 가장 궁금해하는건
이런 박정희를 지역 대지주이고 친일파 육종관 딸이
왜 첩이나 다를바없는 곳에 시집을 보냈냐는 겁니다
육종관이 사위를 싫어했다는걸 보면 아버진 대충 알고 있었던것 같은데
..........
먼훗날 박정희가 대통령이되고
박근혜가 최태민에게 홀려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자
김재규가 이사실을 알리고
박정희가 최태민 박근혜를 불러 친국을 합니다
딸이 울고불며 모함이라고 하자
박정희가 없던 일로 하고 덮어라 그랫다던데..

박정희는 자기딸을 유린한 남자조차 용서한것보면
뭔가 일반적이지 않는 여자관을 가지고 있었던건 확실합니다
여성편력이 독특한 분엿지 않나 싶네요

그러면서 육종관 앞에서 육영수 박정희가 오버랩되더군요
딸팔자 엄마를 닮는다고 하던가요?

daesun2@gmail.com 2016-05-16 04:27:28

    엄청난 집안인데 행실은 상당히 나쁜 편이군요.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말이죠.


육영수 여사의 곧곧함이 결국 아버지의 행태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네요.


최태민씨와 박근혜씨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밝히고 처벌해 봐야 박정희씨 스스로의 체면에 먹칠 한다는 생각을 했을수도 있겠죠.

그래서 덮었을 것으로 봅니다.


일본에서 박정희씨를 "일본인 보다 더 일본은 다은 사람" 이라고 얘기했다는 것을 보면 여자를 아주 하찮게 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식 사고 방식이 그랬으니까요.

뭐 일본도 요즘은 어림도 없는 얘기지만 말입니다.



왜 박정희씨의 여성편력이 심했는가 어떻게 보면 자신을 냉대했던 처가댁에 대한 복수심도 일부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사위를 왜 따뜻하게 맞이하는가?


자기딸 이뻐해주고 잘 대해달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점에서 육씨 가문이 박정희씨를 냉대했다는 것은 충청도 쪽에서는 익히 알려져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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