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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 명장설, 경기도문화포털이 앞장서겠습니다?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6-05-10 18:31:06
추천수 20
조회수   1,339

제목

원균 명장설, 경기도문화포털이 앞장서겠습니다?

글쓴이

오세영 [가입일자 : ]
내용
 




요즘 외국학자의 임진란을 정리 중인데 외국학자가 그렇게 혐오하는 원균인데, 경기도문화포털에서는 당당하게 원균을 명장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원모시기가 권력을 쥐었을 때에 조상인 원균 재조명해야 한다고 날뛰더니 곳곳에 이런 식으로 채색된 모양입니다. 


 


원균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칠천량에서의 조선수군 전멸도 예상된 일이었답니다. ㅡ.ㅡ 


 


 


https://www.ggcf.or.kr/html/history/hundred_list.asp?ky_seq=3819&read=&flag=READ&seq=&code=K006&page=1&s_key=A&s_value=&s_order=&s_ky_gubun=&s_ky_area2=


 


원균 장군은 비열하고 전쟁에 패하기만 한 장수인가?


 


... 


 이순신의 전라좌수영, 이억기의 전라우수영 부대와 연합한 뒤에는 옥포·당포· 한산도 등의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칠천량 해전의 패배는 참혹 한 것이었지만, 패배는 예상했던 일이 현실화된 것뿐이었다...


 


역사적으로 원균이 이순신보다 훌륭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분명 이순신은 불세출의 영웅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영웅이 성웅일 수는 없고, 한 사람을 성웅화하기 위해 다른 훌륭한 장수가 매도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적으로 이순신은 이순신이고, 원균은 원균일 뿐이기 때 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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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식 2016-05-10 19:03:49
답글

세영님 블로그의 "우리가 몰랐던 임진왜란" 시리즈 잘 보고 있습니다.

경기문화포털에 이런 내용이 있는 줄 전혀 몰랐네요.

uesgi2003 2016-05-10 19:08:16

    하도 황당해서 일부러 칠천량전투를 정리했습니다. 오늘 저녁에 업데이트할 예정입니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양태섭 2016-05-10 20:19:55
답글

황당해요? 학계에서 원균을 재조명하기 시작한 게 꽤 오래전 일입니다. 님이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uesgi2003 2016-05-10 23:11:26

    재조명한다고 했다가 더 박살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서로 다르게 알고 있는 것 같으니 그렇게 생각하세요.

칠천량해전은 그 어떤 쉴드도 불가능한 전투입니다. 요즘 별게 다 재평가 받고 있으니까 말리지는 않습니다.

나도 세미나 때에 원균 옹호해서 후손들에게 고맙다는 소리 들어봤지만 감히 칠천량전투까지 채색하는 것들은 용서가 안되어서 황당하군요.

원균재조명할 것이 있으면 내게 묻지말고 따로 글 정리하세요.

양태섭 2016-05-11 00:39:01
답글

공부하시는 분 같은데...,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하고 학자는 논문으로 말한다고, 님도 논문을 써서 당당하게 나가는 게 정도 아닐까 싶습니다.
.
님 링크를 따라 경기문화포털에 들어갔습니다. 문제의 대목;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르자 조정과 도원수 권율은 부산포의 왜 군 본진을 공격하도록 명령하였다. 부산포 공격은 이순신을 파직하고원균을 통제사로 임명한 이유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부산포 공격은 수 많은 난제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1597년 당시 왜군의 전투력은 왜란 초 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보강되었고 조선 수군에 대한 대응전술 도 잘 준비되어 있었다. 조선 수군도 함선을 새로 건조하고 군졸들을 훈련시켜 전력이 증강되었지만, 전염병 등으로 입은 손실이 컸고 무엇 보다 이순신 휘하에 있었던 장수들이 원균의 지휘를 받지 않으려 하면 서 결속력이 약화되어 있었다. 더구나 경상도 해안이 왜군에게 점령된 상황에서 수군 단독으로 공격하는 것은 섶을 지고 불어 뛰어드는 격이 었다. 원균은 육군과 수군의 합동작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하지 만 원균의 주장은 도원수 권율에 의해 묵살되었다. 냉정함을 상실한 상 태에서 결행한 한두 차례의 작은 전투에서 패배한 뒤에는 출전을 머뭇 거린다는 이유로 권율에게 곤장까지 맞았다. 원균은 치욕에 몸을 떨었 다. 평생을 전장에서 보내면서 싸움에 임해서는 물러설 줄 몰랐던 용장 에게 곤장은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끓어오르는 울분을 참지 못해 원균은 틀어 박혀 술만 마셨다. 결과적으로 칠천량 해전의 패배는 참혹 한 것이었지만, 패배는 예상했던 일이 현실화된 것뿐이었다."
.
윗글 필자가 말하고 싶었던 부분은 생각컨대 '육군-수군 합동작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 수전은 예외없이 연안 전투였으므로 육군-수군 합동작전이 상식이었습니다. 임진란에서 왜군 패배의 결정적 포인트가 바로 이 대목이었습니다. 일본수군이 이순신한테 판판이 깨지는 바람에 육군의 전라도 진입에 실패했고, 이게 전황의 대국을 그르쳤다, 이게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분석이었습니다. 정유재란 때 수군을 특별히 신칙한 게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윗글에 보다시피, 원균은 수군 단독 출정을 강요당했습니다. 한바다 전투가 아니고, 본영을 공격하는 데 수군 단독작전? 누가 봐도 몰상식한 작전이지요.
칠천량 패전은 원균한테만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권율의 책임도 따져야 맞고, 권율의 책임을 따지자면 당시 전황이 전체적으로 어떠했는지, 그리고 권율의 판단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재선 2016-05-12 07:00:42

    한가지 묻고 싶은게
왜 누구는 더 열악한 상황에서도 승리를 이끌었는데
누군가는 다 말아먹었는가 하는 것이고
원인이야 어찌됐던 패장은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나쁘면 최소한 현재의 전력이라도 보존하는 것이 차후를 위해서라도 선택을 해야할텐데
자신의 치욕을 못참아서 자기의 부하를 패할것이라 생각한 전투에 쏟아넣는것은
6.25때 유재흥과 비슷한 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정식 2016-05-12 10:52:42

    6.25때 유재흥 : 현대판 원균

여기서 차이점 : 원균은 그래도 죽음으로 체면을 지켰지만 유재흥은 살아남아서 여러나라 대사로 해외여행하시다 국방장관도 역임. 전투에서 이탈 시 심지어 경비행기로 탈출하심. ㅎ

양태섭 2016-05-12 11:54:01

    최재선님//
1. 왜 누구는 더 열악한 상황에서도 승리를 이끌었는데
누군가는 다 말아먹었는가 하는 것이고...> 승패는 병가지상사입니다.
2. 원인이야 어찌됐던 패장은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원균은 전사했슴니다. 변명한 적 없구요, 떠드는 것은 우리입니다. 죽은 사람이 말을 못한다고 일방적으로 독박을 씌우는 짓은 못할 짓입니다.
3. 상황이 나쁘면 최소한 현재의 전력이라도 보존하는 것이 차후를 위해서라도 선택을 해야할텐데
자신의 치욕을 못참아서 자기의 부하를 패할것이라 생각한 전투에 쏟아넣는것...> 인용글에서 보다시피, 원균이 사지로 들어간 선택은 원균의 선택이 아니고 조정과 권율의 선택입니다. 원균은 군명을 받쳤을 뿐입니다.
.
일이 잘못 되자, 책임을 부하에게 몽땅 전가시키고 자기는 쏙 빠지는, 이런 사람들이 지금도 있습니다. 설마 이런 사람이 잘했다고는생각ㅎ지 않겠지요?

이기호 2016-05-11 11:03:03
답글

將在軍君命有所不受라 했으니 유구무언이죠

양태섭 2016-05-11 11:23:07
답글

사족: 권율에 대한 평가
. 이순신이 백의종군할 때 권율 휘하였습니다. 말이 종군이지 사실은 무위도식이라 주변의 눈총이 곱지 않았고 대접도 썩 좋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때마다 이순신을 감싸고 배려한 사람이 권율입니다. 권율이 인간적으로는 퍽 대인이었던 것 같아요.
. 그럼에도 이순신의 권율에 대한 평가는 각박합니다. 아니, 신랄합니다. 무능하다는 것이지요. 참고할 만하다 싶어 사족을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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