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숙 이대교수가 신간을 내었습니다.
어떤 혹자는 조기숙을 친노의 조갑제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저보고는 꼰대라고 하더군요.
그것도 참 재주입니다 그려.
추천사: 훌륭한 시민이 훌륭한 국가를 만든다
유시민 (작가)
지난해 어떤 신문의 기사 때문에 불편한 일을 겪었습니다. 출판 관련 일을 하는 분들한테 누가 추천사를 쓰면 책 판매에 도움이 되는지 물어보았더니 인문·교양서 분야에서는 제가 영향력이 제일 세다고 했다는 겁니다. 추천사를 써 달라고 청하는 전자우편이 확 늘어나서 웬일인가 싶었는데, 바로 그 기사 때문이었나 봅니다.
남들한테 책을 추천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제게 훌륭한 책을 고르는 안목이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설사 그런 안목이 있다고 해도 사람의 취향은 다 다르기 때문에 그 책을 읽고 나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판할 분이 많을 겁니다.
원고료를 받고 남의 책을 추천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걸리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책 추천사를 쓰지 않기로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렇지만 예외 없는 원칙은 없는 법이지요.
저자가 예전에 크게 신세를 졌던 분이라서 거절하면 인간으로서 도리를 저버린다는 죄책감이 들 때, 상업적 목적 없이 공익 증진을 위해 발간하는 책일 때는 예외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일독을 권할만한 책이어야 하며 원고료는 받지 않습니다. 이 책도 그런 예외에 속합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백성의 마음을 따라 다스리는 것’이 최선의 정치라고 했습니다. 2천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반박할 수 없는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진리를 실천하려고 하면 다툼을 피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백성의 마음’이라는 게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합니다.
그래서 어느 시점에서 ‘백성의 마음’을 파악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백성의 마음’이 늘 선하고 올바른 쪽에 가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은 뇌가 작동해서 생기는 것이고 우리 뇌에는 고등 영장류만이 아니라 포유류, 조류, 파충류까지 동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성의 마음’은 지혜로우면서 어리석고, 선하면서도 사악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유권자들은 선하고 현명한 판단을 하기도 하지만 악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플라톤이 아무 이유도 없이 민주주의를 배척하고 철인정치를 옹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가진 공화국입니다. 나라마다 제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본질은 같습니다. 주권재민 또는 인민주권의 원리에 따라 권력자를 대중이 선출하고, 권력을 여러 곳으로 분산하여 서로 견제하게 하며, 선출된 권력의 한계와 임기를 정해두는 것입니다.
선을 최대한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악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악을 최소화하고 최대의 선을 실현하려면 현명하고 유능하고 선한 사람을 권력자로 선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그것을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대중이 어리석음에 빠지거나 사악한 충동에 휘둘리면 민주주의는 중우정치로 전락합니다. 심지어는 민주주의 그 자체를 폐기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지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훌륭한 국가는 우연한 행운의 산물이 아니라 지혜와 윤리적 결단의 산물입니다. 시민이 훌륭하고, 훌륭한 시민이 정치에 참여해야 훌륭한 민주주의국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추상적 이론탐구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국의 현실정치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려는 조기숙 교수의 학문적 노력을 존경합니다. 그는 실제로 정치에 참여해 보기도 했던 정치학자입니다. 포퓰리즘을 연구한 이 책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시민들이 지혜와 윤리적 판단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대중의 감정과 충동을 부추기고 거기 편승해 권력을 장악하려고 하는 포퓰리스트를 알아보는 지혜, 인간의 선한 본성과 윤리적 본능에 의거해 국가의 정의를 실현하려고 하는 민주적 리더십을 찾아내어 힘을 실어주는 결단력을 함양하는 데 참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바라는 시민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