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이맘때로 시곗바늘을 되돌려보자. 그해 3월24일 파주에서 정체불명의 무인기가 추락해서 해당 지역의 기무사, 국정원, 경찰 등이 참여한 합동심문조가 조사를 했다. 기무사가 간사가 된 이날 조사에서 이 무인기에 “대공 용의점이 없다”는 기무사의 의견에 국정원 요원이 동의했다. 그 직후인 28일에 이 무인기를 수거해 간 국정원이 간사가 된 중앙합동심문조가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31일에 백령도에 또 무인기가 추락하자 중앙합심조는 북한이 대남정찰을 위해 이 무인기를 날려 보낸 것으로 판단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크기가 1m 남짓한 소형에다가 조잡한 성능의 무인기가 대한민국 안보를 온통 뒤흔들 소동으로 발전하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지만 북한이 무인기를 집중 운용하기 시작한 2013년 9월부터 전방 군부대에서는 북한의 무인기를 수거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동해와 서해에서 북으로의 귀환에 실패한 무인기가 해류를 따라 떠내려온 일도 있고 야산에서 발견되기도 일쑤였다. 이를 발견한 군부대는 대부분 창고에 보관하거나 내다버리게 마련이었다. 국군정보사령부에서 북한 무인기에 대한 기술적 분석을 한 결과 특별히 관심을 기울일 만한 위협적인 성능은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우리 군에서도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당시 김관진 국방장관이나 합참은 국정원의 조사 상황을 4월2일까지 보고조차 받지 못했다. 국정원이 정보를 독점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전경 사진의 유출
이 당시에는 국정원의 서울시 간첩 증거조작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임박한 시점이었다. 그 이전에 몇 차례 간첩조작이 논란이 될 때마다 청와대는 남재준 국정원장에게 “증거조작이 있었냐”는 확인을 시도했고, 그때마다 남 원장은 “결단코 조작은 없었다”고 답변을 했다. 그러나 실제 조작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청와대는 남 원장이 조직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과 함께 박근혜 정부의 안보정책에 대한 세간의 불신이 커질 것을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가 퍼졌다. 이 때문에 국정원 대공수사국과 서천호 2차장이 궁지에 몰리고 있었고 남재준 원장에게까지 그 불똥이 튈 기세였다. 불안의 먹구름이 내곡동에 몰려올 무렵 청와대를 비롯한 서울 상공을 촬영한 영상 파일이 내장된 북한 무인기는 새로운 정치적 무기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중앙합심조 조사 내용 중 일부가 언론에 유출되어 무인기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던 4월2일,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무인기가 촬영한 사진을 공개하라”는 기자들의 요구에 “그걸 공개하면 무인기의 영상 확보 성능을 북한에 다 확인해주는 꼴이 된다”며 “국가안보상 공개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 <조선일보>에 유출된 영상은 국정원 제2차장실과 청와대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튿날인 4월3일 <조선일보>에는 북한 무인기가 촬영한 청와대를 내려다본 항공사진이 1면에 큼지막하게 보도되었다. “절대 안 된다”던 사진 공개가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누가 보더라도 정치권력 또는 정보기관과 언론의 유착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이 사진이 공개되자 국군기무사령부는 사진 유출의 진원지가 국정원 2차장실이라고 지목하고 군사기밀 유출을 수사하려는 의도까지 내비쳤다. 보도 직후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새누리당 국방위원조차 기무사령관에게 “조선일보를 압수수색하라”고 호통을 치고, 기무사는 “반드시 수사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국정원은 이후로도 무인기 공포에 매달리는 행태를 지속했다. 문제의 사진을 <조선일보>에 제공한 주범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기무사는 사진 유출 전날 국정원 2차장실이 청와대 전경을 찍은 사진을 분석팀으로부터 급히 회수해 갔다는 사실만 확인하는 선에서 조사를 멈춘 것으로 보인다.
정작 이후 흐름은 수사가 진행되기보다 무인기 공포가 무한대로 확산되는 방향으로 치달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4월7일 오전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북한제 추정 무인기가 우리나라를 전방위로 정찰한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 군 당국이 관련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것은 방공망, 지상정찰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언론은 제대로 날지도 못해 떨어지고 실시간 영상을 전송하지도 못하는 작은 비행체 3대를 앞세워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 조잡한 무인기는 불과 일주일 만에 생화학무기를 탑재한 대량살상무기로, 청와대와 정부청사를 공격하는 자폭기로, 원자력발전소도 위협하는 가공할 무기로 재창조됐다. 파국과 종말에 대한 불안을 대량생산하는 감정의 뇌는 언론의 자극적인 무인기 보도에 신속하게 반응했다. 아프리카의 물도 못 먹는 나라에서도 다 운용하는 수준의 저급한 무인기는 대한민국 안보 실패의 파국적 이미지와 공포의 노예가 된 대중심리를 조장하는 위력적인 정치무기였다. 이렇게 되려면 무인기는 <조선일보> 보도대로 청와대 상공에서 약 20~30㎏의 폭탄을 달고 내려올 수 있는 가공할 핵무기로 돌변해야 했다. 강남의 고층빌딩 사이를 유유히 다니면서 우리를 감시하는 괴물로도 둔갑해야 했다. 이 시기에 유력 언론으로부터 시작된 무인기에 대한 기사는 5410건이 검색된다. 여기에는 야당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있기 하루 전에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6개월 사이 영공을 침범한 무인항공기가 추락해 드러난 것만 세 차례로, 더 많은 무인기가 수백 회, 수천 회 드나들었을지 모른다”며 “안보 무능 정권으로 불러도 할 말이 없게 됐다”고 공포 만들기에 가세했다. 여와 야를 가리지 않고 이 시기에 한국의 정치세력들은 대한민국 안보는 실패해야만 했고, 그래야 자신들의 발언에 무게가 실리는 이상한 국면이었다. 작은 무인기 사건 하나가 정치쟁점화되자 <시엔엔>(CNN)은 “한국 안보가 북한의 장난감에 당했다”고 조롱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북한 무인기의 위협은 별것 아니다”라는 말은 금지되어 있다. 만일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북한의 군사위협에 안보의식을 잠식하는 적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야당은 무인기가 심각한 위협인데 정부가 뭘 했느냐는 질타를 함으로써 공포 만들기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논리에 갇혀버렸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있자 사태는 더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김관진 국방장관을 비롯한 합참 작전 관계자들까지 북한 무인기를 “심각한 위협”이라며 대책 마련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당장 북한 무인기를 방어할 새로운 감시체계에 대한 요구가 절박해지자, 기존에 육군이 운용하게 될 저고도 국지방공레이더가 개발되기를 기다릴 여유가 없어졌다. 우리 장비로는 북한 무인기를 포착할 수 없기 때문에 또 외국에서 저고도 레이더를 사와야 했다. 그러나 세계의 어떤 레이더도 저고도로 날아오는 작은 비행체를 잡아낼 수는 없을 것이고 결국 육군 교육사령부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렇게 군은 지난 2년을 허비했다. 그러나 결론은 하나. 북한 무인기를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2년 후인 올해 3월20일. <연합뉴스>는 2년 전의 무인기를 국방과학연구소가 복원하여 시험해본 결과 “기껏 400~900g 정도의 수류탄 1개를 매달 수 있는 수준이었다”며 사실상 무기로서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무인기의 정보수집용 카메라 역시 자동전송 기능이 없는 1980년대 수준의 구닥다리라는 이야기다. 외신에서는 처음부터 장난감 수준이었다고 본 북한 무인기를 2년이나 걸려서 분석을 했다는 군 당국의 설명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국방부 “안보상 안된다” 했지만
북한 무인기 찍은 청와대 사진 유출
누가 언론 제공했는지 밝히지 않은 채
공포심리 조장되며 ‘정치무기’ 둔갑
새 무기체계 도입 논의까지 나와
원래 무인기 도처에서 발견됐지만
‘위협적 성능 없다’고 판단했던 것
이제야 ‘조잡한 무기’임을 다시 확인
정치권력-정보기관-군의 상부상조
공포의 모르핀을 든 손은 누구인가
무기 도입 비즈니스의 기원
북한 무인기 소동은 우리나라 안보에 있어 거대한 낭비였다. 우리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진 공포’에 노예가 된 순간 합리적 이상과 군사적 전문성은 연쇄적으로 붕괴되었고, 그 결과 우선순위에서 뒤처진 위협에 엄청난 자원을 이미 투입했으니 말이다. 이런 비합리성은 비단 무인기 하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북한에 존재하는 낯선 것만 밝혀지면 안보에 엄청난 낭비와 혼란을 초래하는 비정상적 상황으로 치달았고, 어느새 우리에게 개선하기 어려운 관성이자 습관이 되었다.
그 행태는 대략 세 단계로 전개된다. 첫째, 북한에 “못 보던 위협이 나타났다”며 호들갑을 떤다. 핵미사일부터 장사정포, 공기부양정, 잠수정과 같은 핵심 무기는 물론 사이버 위협, 전자파 폭탄, 생화학무기 등 북한의 위협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하는 낯선 모습이어야 한다. 이전에 북한에 존재했던 무기라도 그 사용 방식이 낯선 모습으로 나타나야 공포가 된다. 2014년 북한이 중거리 노동미사일을 발사 고각을 높여 사정거리를 짧게 발사하자, 이것을 예전에 없던 새로운 남한 공격 신호로 해석한 주한미군사령관의 깜짝 발언이 그것이다. 북한의 장사정포가 산 앞의 갱도에 있다가 산 뒤로 이동하자 우리가 제압할 수 없는 새로운 위협으로 돌변한 것도 그러하다. 기존의 무기라도 새로운 용도로 재활용되어야 한다.
둘째는 “그런데 우리에겐 대책이 없다”며 국가 파멸의 이미지를 구체화한다. 서울에 거대한 버섯구름이 이는 장면과 함께 사회가 대혼란에 빠지고 한순간에 파멸되는 구체성을 획득해야 한다. 우리에겐 대책이 없다는 점이 더욱더 확실하게 강조되어야만 기사가 된다. 여기서 우리 국방은 모든 대책이 다 준비되지 않은 완전하지 못한 집단으로 격하되어야만 정치권력이 정치논리로 국방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공포를 조장함으로써 수월하게 대중을 통치해야 하는 정치권력은 끊임없이 군사문제에 개입하고 싶어한다. 사실 무인기에 대한 대책은 합참의 일개 과나 육군 교육사령부의 한 부서에서만 고민해도 될 지엽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대통령과 장관, 국정원장이 직접 나서서 대책을 지시할 만큼 비정상적으로 확대되었다. 군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정치가 나서서 각성시키고 해결해주는 ‘위신 세우기’가 가능하려면, 군은 적당히 무능한 집단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항상 대책은 없어야 한다.
셋째, 이 정도가 되면 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외국의 무슨 무기가 들어와야 한다”며 구체적인 무기 도입 비즈니스를 시작한다. 예전에 많은 돈을 들여 도입한 무기는 이제 북한의 새로운 위협에 대해서는 쓸모가 없는 무용지물로 전락한다. 국내 연구기관이나 방산업체가 개발하는 무기는 수준이 낮기 때문에 대책이 될 수 없다. 국내에서 개발 중이라도 이를 중지시키고 반드시 외국에서 무기를 사오는 것으로 그 대책이 나와야 한다. 그것도 가급적 비싼 첨단무기,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신무기라야 한다. 이렇게 완결되는 이야기는 매번 새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국방비 증가를 부추기는 탐욕의 구조를 형성한다. 대부분의 방산비리 사건이 충분한 사업 타당성 검토와 체계적인 사업관리 영역을 초월해서 어느 날 갑자기 들어오기로 결정된 무기도입 사업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제대로 된 검토를 거치지 않고 단지 지엽적인 필요에 의해 도입되는 무기는 비리를 부르는 초대장이다. 여기서 우리 사회는 안보가 불안해야만 국방 체제가 작동하는 이상한 풍조를 만든다.
공포와 탐욕의 이중 나선 구조
안보에 대한 수요는 밑 빠진 독과 같아서 그 배고픔은 영원히 충족될 수 없다. 공포와 탐욕이라는 이중의 나선 구조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안보국가는 스스로의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려는 본성으로 움직인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2년 전의 그때처럼 또 전군에 경계강화 지시를 하달했다. 최근 군은 북한의 연이은 대남 위협에 대해 전군지휘관회의를 열어 북한의 임박한 공격에 대비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테러방지법도 없고 사이버안전대책도 없다는 식으로 한동안 국가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정치권력은 새로운 안보대책을 만들고 난 다음에 북한의 또다른 위협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안보의식이 약한 국민에게 윽박지르고 잔소리를 퍼부어댄다. 정보를 독점한 국가정보원은 일종의 모르핀 주사처럼 새로운 북한의 위협을 제공한다. 그 치명적 중독성에 의해 우리의 합리적 이성과 체계적이어야 할 국가안보의 구조가 붕괴되기 시작한다. 정작 심각한 것은 우리가 마땅히 대비해야 할 안보위협마저도 이 때문에 대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안보 사기극’이라고 불러도 될 2년 전 무인기 사건을 되돌아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종대
▶ 김종대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할 말은 하는 군사전문가. 1993년부터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 보좌관과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으로 활동하면서
국방정책이 결정되는 과정과 별들의 암투를 지켜봤다. 권력과 군대가 독점하는 안보가 아닌
‘진짜 안보’를 지향한다.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