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로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즐겨찾기추가
로그인 회원가입 | 아이디찾기 | 비밀번호찾기 | 장바구니 모바일모드
홈으로 와싸다닷컴 일반 상세보기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CBS 조한욱 교수의 오늘] 2016. 3. 1 벨라폰테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6-03-01 07:31:33
추천수 13
조회수   704

제목

[CBS 조한욱 교수의 오늘] 2016. 3. 1 벨라폰테

글쓴이

조한욱 [가입일자 : 2010-05-05]
내용
 [CBS 조한욱 교수의 오늘] 2016. 3. 1 벨라폰테

안녕하세요, 한국교원대학교의 조한욱입니다. 1927년 오늘 자메이카 출신의 대중가수 해리 벨라폰테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흑인의 고통을 노래했을 뿐 아니라 흑인 인권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도 재정적으로 지원했고, 서구의 아프리카 식민지 경영에도 반대했습니다. 전 세계의 유명 가수들을 모아 We are the World라는 곡을 만들어 아프리카 난민을 돕기 위한 계획을 꾸미기도 했습니다. 매카시 시대에 요주의 인물로 꼽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가수를 가둘 수는 있으나 노래는 가두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였습니다.

 
Harry Belafonte ~ DANNY BOY ~
추천스크랩소스보기 목록
henry8585@yahoo.co.kr 2016-03-01 07:46:07
답글

오늘 헤리 벨라폰테가 태어난 날이군요. 저는" 마틸다 "노래를 좋아 합니다.

조한욱 2016-03-01 08:41:39

    마틸다 좋죠. 청중이랑 같이 호흡할 수 있는 노래...

김정수 2016-03-01 08:20:25
답글

매일 매일 좋은 정보 감사 드립니다.
출생년도가 잘못된것 같습니다. 1927년생으로 현재 88세가 됩니다.

조한욱 2016-03-01 08:37:42

    고맙습니다. 방송 전에 발견해서 방송은 제대로 했는데, 원고를 못 고쳤군요.

염일진 2016-03-01 09:00:30
답글

정열의 카르멘 영화도 찍었죠?

김주항 2016-03-01 09:03:49
답글

19 19 년 오늘은 착하디 착한 분덜이
독립 만세를 외쳤던 날 이기도 합니다....~.~!!

염일진 2016-03-01 09:18:03

    와싸다 만세..~!

[좀 착해진 기분이 듭니당...ㅋ~~]

이종철 2016-03-01 09:25:16

    교주님은 그 때 뭐 하셨나유...♡&&

김주항 2016-03-01 09:33:04

    TV 보구 있었 씀다.....~.~!!

이종호 2016-03-01 11:01:32
답글

순국선혈들의 희생으로 지켜낸 대한민국이 친일파 후손들로 개한망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분들께 면목이 없습니다...ㅠ.,ㅠ^

"쿠쿠루쿠쿠 라팔로마" 를 좋아합니다...

김주항 2016-03-01 11:37:49

   
쿠쿠루쿠쿠 팔로마가 아닌가요....??

(쿠쿠루쿠쿠 띠팔로마 였었나....??)

조한욱 2016-03-01 12:40:35

    쿠쿠루쿠쿠 팔로마가 맞습니다. 굳이 번역하자면 "구구구구 비둘기" 쯤?

이종호 2016-03-01 12:40:41

    시방 시비거시능겨? 3.1절날...ㅜ.,ㅠ^

김주항 2016-03-01 15:49:46

   
잉가니 갈촤 주면
고맙다 할 것이쥐....~.~!! (3 일 절만 하시지 몽니는?)

진성기 2016-03-01 11:42:02
답글

이 글 보고 벨라폰테 시디 꺼내 듣고 있습니다.
카네기 홀 공연 시디 입니다.

조한욱 2016-03-01 12:39:28
답글

옛날에 썼던 칼럼 댓글로 올립니다.

애국자 벨라폰테

1959년 4월 19일, 명성 높은 카네기 홀에 신사숙녀가 운집했다. 흑인 가수 해리 벨라폰테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1부에서는 미국 흑인들의 애환을 담은 노래가, 2부에서는 서인도제도의 칼립소풍 노래가, 3부에서는 세계 곳곳의 민요가 울려 퍼졌다. 이 공연은 벨라폰테의 생애를 반영하며 동시에 예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흑인의 고통을 노래했을 뿐 아니라 흑인 인권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도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미국 내부의 인종차별을 넘어 서구의 아프리카 식민지 경영에도 반대했다. 그는 서인도제도를 포함한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외교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카스트로나 차베스와 같은 지도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남아프리카 출신의 미리엄 마케바, 그리스 출신의 나나 무스쿠리와 같은 가수들을 미국의 청중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전 세계의 유명 가수들을 모아 “우리는 한 세계(We are the World)”라는 곡을 만들어 아프리카 난민을 돕기 위한 계획을 꾸민 사람 중 하나다.

이런 그의 활동이 미국 정부와 마찰을 빚은 것은 당연하다. 매카시 시대에 요주의 인물로 꼽혔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가수를 가둘 수는 있으나 노래는 가두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특히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충돌은 잘 알려져 있는데, 이라크 전쟁을 벌인 부시를 서슴없이 “세계 최대의 폭군”이라고 불렀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그의 언급에 비판을 예상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자 “하라고 하시오. 이견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꿈은 “해리 벨라폰테, 애국자”라 새겨진 묘비를 세우는 것이다.

  • 광고문의 결제관련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