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란 책을 내면서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한일 양국의 미래를 위한 냉철한 시각을 갖자고 주장했다.
그것이 진영논리로 따질 일인가와 가해자 이면서 피해자에게 사과는 커녕 모독적 행위를 되풀이 하는 일본에 대해 냉철한 시각을 갖는다는 것이 고작 저들의 어거지 주장을 되풀이 해서 들어 보는 일인가라고 묻고 싶은데 그걸 법원이 나서서 단죄 한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좀 유감스럽다.
고려대 경제연구소 정안기 연구교수(51)
는 지난 15일 ‘동아시아 경제사’ 수업시간에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있었고 몇 달만 일하면 고국으로 돌아갈 비행기삯을 구할 수 있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 남은 것” “그 시대엔 모두가 친일파였다. 당시 시대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당시 수업을 들은 고려대 학생과 관계자 등이 18일 밝혔다. 정 교수는 이날 수업시간에 아베 담화를 옹호하는 내용의 서울대 이영훈 교수의 ‘한국인, 당신들은 누구인가?’ 칼럼을 복사해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분은 증세가 좀 중증이다
---정 교수의 문제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해 11월6일 익명으로 제보를 올릴 수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의 글이 올라온 바 있다. 익명의 고려대 학생은 이 글에서 “2학기 정안기 교수님의 ‘경제학개론’ 수업에서 (교수님이) 식민사관을 가지고 계셨고 그것을 수업시간에 이야기하신다”면서 “‘일본이 우리나라를 수탈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일본은 우리나라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거나 ‘야스쿠니신사가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발언을 하셨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18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문제와 관련해) 지나치게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어 실체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우리가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려는 건데 끊임없이 과거라고 하는 문제가 우리 발목을 잡고 사람들의 세계관, 역사관을 왜곡시킨다는 것은 이상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시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 1명 때문에 99명의 ‘보통’ 사람들이 모두 죄인 취급을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면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해 역사교과서 개혁, 국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일본에 대해서 한소리 하실 만큼 이분들 다 일본 유학파들시다.
박유하 교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일하여 게이오대학(慶?大?)에서 학사과정, 와세다대학(早?田大?)에서 석.박사과정 모두 일본 문학을 전공했다. 귀국한 뒤 현재까지 세종대학교 일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의 을 번역하여 한국에 소개하였으며, 소세키(夏目漱石)의 , 야마다 에이미(山田詠美)의 ,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의 , 등, 많은 소설을 번역하기도 하였다.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오사라기 지로 논단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오사라기 지로 논단상은 매년 아사히신문이 정치 경제 국제관계 분야의 수준 높은 저작 1, 2편을 선정해 시상한다---
그리고 제국의 위안부는 2015년 7월 일본의 진보언론(사실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견해를 게재한다) 마이니치신문에서 주관하는 "제27회 아시아 태평양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고려대 정교수는
1990년 고려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 경제학과에서 석·박사과정을 거친 뒤
96`98 일본학술진흥재단(JISPS) 특별연구원 http://www.jsps.go.jp/j-fellow/index.html 체제비 정착비 항공권 지급.--이 되는데 이단체는
日本?術振興?は、天皇陛下の御下賜金により昭和7年(1932年)に創設されて以?、80余年にわたり、我が?の?術振興を?う唯一の資金配分機?として、?術?究の振興に不可欠な諸事業を?施してまいりました。さらに平成25年4月から第三期中期目標期間がスタ?トし、
① 世界レベルの多?な知の創造
② ?固な?際協?ネットワ?クの構築
③ 次世代の人材育成と大?の?育?究機能の向上
④ エビデンスに基づいた?術振興?制の構築と社?との連携の推進
を事業の柱とし、?術?究の振興と人材育成のための活動を幅?く行う機?として?展を?けています。
내용은 몰라도 천황 하사금 이런 말이 보일 거고 친일적 인적 네트워크 구성의 목적이 있다는 것쯤은 파악이 되실 것이다.
이분 위에서도 중증이라 말한 바 있는데
그는 2005년 서구식 근대화에 맞서 동아시아식 근대화를 주장한 식민지 근대화론 성향의 나카무라 사토루(中村哲)--아래의 안병직 이영훈 교수와 식민지연구을 공동 진행--의 책 <근대 동아시아 역사상의 재구성>을 국내에 번역하기도 하셨다.
그리고
뉴라이트의 수장격인
학문의 전당 서울대를 꽉잡고 있는(이를 달리 말하자면 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안병직과 이영훈
이영훈은 그의 저서 《대한민국 이야기》와 여러 논문에서 이영훈은 무력이 아니라 법과 무역을 통해 전개된 식민지적 수탈을 논하였다. 대한민국 이야기에서 이영훈은 정신대와 종군위안부의 차이점을 명확히 밝히고, 위안부는 강제 징집된 것은 아니나 배후에 일본군과 조선총독부가 있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2004년 9월 2일 문화방송의 100분 토론에 출연하여 "정신대가 조선총독부의 강제동원이 아니라 한국인의 자발적으로 참여로 이뤄진 상업적 공창"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일제 식민 통치를 찬양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욕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이 교수는 "정신대 관련 일본 자료를 보면 범죄행위는 권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참여하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었다"며 "한국 여성들을 관리한 것은 한국업소 주인들이고 그 명단이 있다"고 주장하여 정신대 문제를 성매매와 동일시 하였다.
그 이후 이영훈의 행적은 수구 꼴통들의 이론적 발판을 마련해 주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선구자적 모습을 보이시며 본인의 증상이 중증임을 스스로 밝히셨다(특히 마지막 멘트가 인상적)
http://news.kukmin.tv/news/articleView.html?idxno=10397
이영훈은 한때 80년도 대학생 새내기들의 필독서였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글이 실리기도 했고 안병직은 올곧은 가치관으로 제자들의 절대적 존경을 받아 오시던 분이었다. 이영훈은 그런 그의 가장 성실하고 촉방받는 수제자였다고 한다.
그러던 분이 어느날 갑자기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점점 돌이킬 수 없는 정도로 삐뚤어져 버린다.
왜일까?
두교수는 각각 1989년 1992년에 일본 도요타재단 의 자금 지원을 받아 식민지 연구를 진행한다.
https://www.toyotafound.or.jp/english/
그리고 그 같은 자금 지원의 결과로 잉태된 연구 성과는 1989년 B 출판사에서 발행된 <근대조선의 경제구조>(이하 1989년 연구)와 1992년 I 출판사에서 발행된 <근대조선 수리조합연구>(이하 1992년 연구)다. "1차 공동연구"로 불리는 전자(前者)는 일본 학자 7명과 한국 학자 6명의 공저이며, 후자(後者)는 양국 각각 2명 도합 4명의 공저다. 총14명이 이 작업에 참여했다.
이 책들은 오늘날 식민지 근대화론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기념비적 저작들로 평가받고 있다.
꼼꼼하게 읽어 보시기 바란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77883
이들이 깔아 놓은 판에 어중이
떠중이에
교양이 철철 넘쳐 나시는 분까지 확신을 가지고 한마디 씩 하시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이 자꾸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일본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한국이 ‘내정간섭’을 하면 안 된다.”
정권교체 외에도 우린
할일이 졸라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