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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연탄집 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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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9 10:3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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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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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연탄집 아들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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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효 [가입일자 : 2014-02-17]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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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마냥 가난하던 시절에
몇 골목을 사이에 두고 연탄집이 있었습니다.
6남매(여동생 죽고 5남매가 되었습니다) 놓고 폐병을 앓던 가장이
피골상접한 몰골로 골방에 내몰려 주기적으로 각혈을 하던 연탄집이 우리집이었고,
이웃 연탄집은 작딸막한 키에 딴딴한 체력을 가진 주인아저씨가 운영하는
우리집의 두배이상 큰 연탄창고에 동네 80프로 이상의 연탄을 독점하던 집이었습니다
그 연탄집과 우리집이 경쟁을 해야 했습니다.
연탄의 질도 달랐습니다. 효율좋은 왕표연탄 대리점이 그 집이면
우리집은 약간은 질 떨어지던 부림연탄 대리점을 했었지요
자연히 우리집은 왕표연탄집이 배달을 싫어하던 아파트 고층집이나
2-3층의 계단을 오르거나 가파른 언덕배기 집만 배달을 했었는데
그 잘나가던 연탄집에도 저와 동갑의 아들이 있었고...
가끔 그 집은 일꾼도 부리며 배달하던집이고 우리집은 폐병앓는 아버지 대신
나이 90의 할아버지와 또래에 비해 덩치큰 나와 한때 출신고향 최고의 미인이었던 갸날픈
어머니 그렇게 세 명이 배달을 했었습니다.
연탄수레를 밀고 다닐때 사춘기 동창여학생을 만나면 그렇게 창피할 수 없었습니다.
숨이 턱에 차오르며 연탄지게를 메고 5층 아파트계단을 오르면서
왜 이리 힘들어야하는지... 마냥 가난이 싫었습니다.
그리고 동네에서는 같은 학교에 다니던 큰 연탄집 아들과 저를 비교하곤했었죠
중학교 1-2등을 다투었던 두 연탄집 아들의 인생은 인문계진학한 그 녀석과
빨리 가난을 벗어나고싶어 조급하여 실업계(부산상고)를 선택한 이 후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그 녀석은 의대로 진학하고, 지역병원의 병원장 사위가 되었다가 아내의 자살로
다른 여의사와 재혼하여 그야말로 연탄집 아들의 성공기를 이루었지만
결국 저는 입지적 성공과는 거리먼, 그것도 도시적응도 못해 벽촌의 시골로
들어와 살게되었습니다.
가끔 참석치 않는 동창들 모임에서 두 연탄집 아들들이 다 성공할거라고 했지만
저의 이야기 부분에서 아쉽다고들 한다며 늘 참석하는 동창놈이 말하더군요
가끔은 생각합니다.
그렇게 눈에뛰게 가난하고 공부 잘했으면
개천에서 용나듯이 꼭 성공해야 하는것인지....
지나온 삶이 마냥 싫지많은 않았지만 배고픈 시절에 돌아보지 못했던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정치 이야기 좀 하면서 살면 안되는지,
얼마나 잘먹고 잘살고 현실에 만족하며 살기에
정치이야기만 하면 알레르기 반응하듯 하는지
어느동네 어느학교를 나오고 뭐 하시는 분들인지 그 들의 삶이
자못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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