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드나드는 한 사이트에 어떤 회원이 올려 놓은 글인데, 1945년 8월 15일 <일왕의 항복문>이라 합니다.
조정래의 장편소설 <정글만리> 211~213쪽에 이 글이 나옵니다.
아베를 비롯한 일본에서 정치한다는 놈들의 가이드라인이라 해서 찬찬히 들여다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제 닭그네가 신년사라고 을퍼댄 것과 그 느낌이 상당히 비슷합니다. 나만 그런가요?..
"오늘날 세계의 대세와 우리제국이 처한 조건을 깊이 숙고한 결과 짐은 비상수단에 의지해 현재의 상황을 해결하기로 결정했노라.
짐은 우리정부에 공동선언 조항을 수락하기로 했다는 뜻을 미국,영국,중국,소련 정부에 통고하라고 지시했다.
우리백성의 안전과 안녕뿐만 아니라 만국의 번영과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리 황실에 대대로 내려오는 엄숙한 의무인 바 짐은 그 의무를 마음 깊이 새기고 있노라.
실로 짐은 일본의 자존과 동아시아의 안정을 확보하려는 진심어린 바람에서 미국과 영국에 전쟁을 선포했을뿐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거나 영토를 확장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전쟁은 4년을 끌어왔다. 그동안 짐의 육군과 해군은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싸웠고 국가의 종복은 근면을 아끼지 않았으며 짐의 1억백성도 섬김에 소홀함이 없었다. 다들 최선을 다해 왔으나 세계의 대세 또한 일본의 이익과 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더욱이 적은 잔인하기 짝이 없는 폭탄을 새로이 사용해 무고한 생명을 무시로 빼앗기 시작했으니 그 피해가 실로 어디까지 갈지 헤아릴 수 없구나. 이 이상 교전을 계속한다면 일본 한 나라의 파괴와 소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류 문명 전체의 전멸로 이어질 것이니라.
상황이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짐의 1억 백성을 구할 것이며 또 무슨 낯으로 황실 조상님들의 신위를 뵈옵겠는가. 이것이 짐이 정부에 열강의 공동선언 조항에 응하라고 지시한 연유다.
짐은 제국과 합심하여 시종 동아시아의 해방에 힘써온 동아시아의 동맹국들에 심심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에서 다쳤거나 제 본분을 다하다 죽은 장교와 사병 뿐만 아니라 그 유족을 생각하면 짐의 가슴은 밤이나 낮이나 고통을 가눌길 없다.
짐이 가장 염려하는 바는 부상자와 전쟁 피해자, 집과 호구지책을 잃은 사람들의 후생복지다. 금후 제국에 닥칠 고난과 시련은 분명히 녹록지 않을 것이다.
짐은 그대들 짐의 백성들 속내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짐은 시운의 지시를 받아들여 어차피 불가피하다면 아무리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라 해도 인고하고 또 인고해 만세에 태평성대를 위해 길을 닦기로 다짐하였노라. 지금까지도 제국의 근간을 구하고 유지해 온 바 그대들의 한결같은 충정을 믿기에 짐은 항시 그대들과 함께 있다.
행여 감정이 격발해 공연히 일을 복잡하게 만들거나 형제끼리 의견이 달라 갑론을박하여 소요를 조성해 정도에서 벗어나 헤매다 끝내 세계의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하라.
각자 책임이 막중하고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명심하고 신령스러운 땅의 불멸을 항시 믿으며 세세손손 한 가족으로 지내라. 장래를 건설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라. 정직되고 고결한 품성을 도야하며 굳은 의지로 밀고 나가 제국의 영광을 드높이고 진보하는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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