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아침,
우리의 김야옹님('김야옹양'이었으나 중성화수술로 지금은 '양'도 '군'도 아니심)...
평소 즐기시는 캔티넨탈 브렉퍼스트를 대령해 놓았는데도 도무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심.
마당에 나가 불러보니 어디선가 양양거리는 소리는 들리는데...
두리번거리던 끝에 발견한 김야옹님의 위치는 저 건너 나무 꼭대기. -,.ㅜ;
짐작컨대 까치집 함 털어볼 양으로 올라가긴 하셨으나
막상 내려오자니 도무지 엄두가 아니 나시는 낌새.
그럴만도 한 것이 저래봬도 레이저로 대충 찍어본 높이가 무려 8미터.
바로 밑에서 쳐다보니 한층 까마득해 보임.
알루미늄 접이식 사다리도 들고 가봤지만, 다 펼쳐야 고작 5.6미터 정도라 택도 없음.
아, 대체 게서 뭐하심?
일이 있어 나갔다가 오후 4시쯤 돌아와 봐도 요지부동, 강철처럼 현 위치를 사수하시는 김야옹님...
어쩔껴?
궁리 끝에 20년 다되가는 물건들도 뒤져내 봤지만...
김야옹님 내려올 엄두를 못내시듯 나 또한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음. -_ㅜ;
결국은 119까지 출동하기에 이르렀으나,
사다리차도 아니고 달리 뾰족한 수가 없으니 좀더 두고 보자는 말씀.
아울러 그 와중에 집앞 낚시터에서 잡히는 어종과 백숙 가격,
진짜 토종닭인지 등등을 상세히 확인 후 낚시터 사장님 명함을 챙겨 복귀하심.
하여간 수고 많으셨구요, 비번 날 놀러오시면 토종닭 한 마리 정도는 제가 쏘겠습니다.
평소 고생 많으시니 쉬실 땐 즐겁게 푹 쉬셔야죠. ^^;
잠시 후부터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비는 밤새도록 그칠 줄을 모름.
거의 30분에 한 번씩 손전등 챙겨들고 김야옹님 계신 나무 밑으로 가서
부디 내려오시기를 간청해 보았으나 그저 애처로이 양양거리실 뿐,
평소 즐기시는 깡통이나 멸치따위도 쿨하게 무시해 버리심.
아이고, 김야옹님... 그러다가 저체온증이라도 오면 큰일난다니까요?
마침내 날이 밝고, 밤새 내리던 비도 그쳤건만...
온밤을 나무 꼭대기에 지새우신 김야옹님은 여전히 내려올 줄을 모르심.
그리하여 두두둥~!!!
17일 아침 8시에 긴급출동하신 고소작업차, 이른바 스카이!!!
근데, 그런데... 3.5톤 스카이차가 나무 밑에 바짝 붙어 부릉부릉거리니...
우리 김야옹님, '아, 그것들 어지간히 시끄럽네, 내가 못 내려올 줄 알았냥?'하고는
날렵한 동작으로 나무를 타고 내려와 숲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리심.
스카이 기사님과 나는 그저 황당한 표정으로 마주보며 허탈하게 웃을 밖에.
그래도 기본요금 15만원은 다 받으셔야 한다는 기사님께
붐대는 움직이지도 않고 아웃트리거 펼치다가 상황 종료됐으니 10만원만 드리기로. -_ㅜ;
최소 25시간 이상 고공농성 중 불가피한 사정에 의해 홀연히 숲속으로 자취를 감추신 뒤에도
한참이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다가 마침내 오후 느지막한 시간이 되어서야 귀가,
그간 밀린 식사를 가뿐히 마치시고 전용석에서 천연덕스럽게도 단잠에 빠지신 김야옹님.
작년 여름, 담벼락 밑에서 앵앵거리시던 걸 멋모르고 모셔다 수발을 들기 시작했는데...
그때 모습 찾아보니 김야옹님도 많이 늙으셨음.
아무쪼록 만수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