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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장] 인생은 참 피곤한 것 같아...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5-10-28 11:57:54
추천수 29
조회수   1,146

제목

[101장] 인생은 참 피곤한 것 같아...

글쓴이

김지태 [가입일자 : 2001-11-13]
내용
 프롤로그 : 백일장의 조건이 살면서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들에 대한 것이 있어서 이 부분을 적으려 합니다.
 

 

아버지는 삼형제중 막내셨다. 어머니는 당연히 막내 며느리이다. 나도 형제가 삼형제고 그중 막내다.

 

 

나의 부모님은 당시세대로는 흔치않게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이전해에 돌아 가셔서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모시고 산 세월은 10년이 조금 안된다. 아무튼 어머니는 막내며느리인 당신이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그게 굉장히 싫으셨던 것 같다. 어려서는 잘 몰랐다. 그러나 어렸을때도 시부모 모시고 사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여성중앙 신년 부록으로 나오곤 했던 가계부에 조금씩 적곤 했는데 나는 그 것을 또 몰래 훔쳐보고 그런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나는 할머니가 어머니를 무척 고되게 시집살이를 시키는 줄 알았다. 

 

 

1979년 9월 박통이 총맞아 뒈지기 전달에 할머니는 노환으로 돌아 가셨다. 드디어 어머니는 시부모로 부터 해방이 되었겠구나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 것은 나의 착각 이었다. 어머니는 그 후에도 무슨 얘기가 나오던 절묘하게 당신의 시집살이 스토리로 이어가곤했고 한두번도 아니지 무슨 말만 섞으면 시집살이 얘기로 변하는 대화가 좋을리가 없었다.

 

 

그래도 한켠으로는 얼마나 고됐으면 저럴까 싶어서 어머니가 안됐기도 했으나 더한 나의 바램은 이제는 자유롭게 되었으니 하루라도 빨리 시부모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당신의 인생을 찾기를 바랬다.

 

 

내가 군에서 제대하던 해인 89년 아버지는 오랜세월 다니시던 직장에서 은퇴하고 집에 계셨다. 두 분이서 자주 놀러가고 구경도 다니고해서 나는 은퇴후의 삶을 두분이서 알콩달콩 지내는 줄 알았다. 그런데 두분이서 얼굴을 맞대고 사는 만큼 어머니의 트레이드 마크인 무슨 대화가 오가던 시집살이 얘기로 틀어주는 기가막힌 화법에 아버지도 많이 당혹스럽고 화를 내곤 했다는 사실을 얼마전에야 알았다.

 

 

나는 1992년에 결혼했고 분가해서 살았다. 그러다가 95년에 아버지는 췌장암으로 돌아가시게 되었고 어머니는 홀로 남겨졌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가지 않겠다고 하셔서 한동안 혼자 사셨다. 그러다 2004년 형들과 얘기를 하여 어머니를 셋중 하나가 모시기로 했다.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아무튼 내가 모시게됐다. 큰형은 형편이 모실 형편이 안돼었고, 둘째형도 그 무렵이 SK를 그만두게 되고 애들이 아직 어릴때라 여의치가 않았나...

 

 

아무튼 아버지가 그랬던 것 처럼 막내인 내가 어머니를 모시게됐다. 좋은 얘기도 한두번이지 무슨 얘기가 나오던 시집살이 스토리로 변하는 기막힌 화법에 아내도 이내 곧 지쳤다. 10년이 넘는 동안 아내는 되도록이면 어머니와 함께 있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나는 화라도 낼 수 있지만 아내는 그러기가 어렵지 않은가? 나는 그 심정을 이해 하기에 아내의 그런 행동에 대해서 아무런 얘기를 안했다.

 

 

2007년경 아내가 하던 부동산 사무실을 그만뒀다. 그래서 사무실은 장인어른 혼자서 운영하게 됐다. 그러던중 아내가 나에게 제안했다 사무실 벽을 터서 사무실을 합치고 오는 손님 물건 이라도 받아 달라고...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때까지 난 몰랐다. 벽을 튼게 헬 게이트를 연 것 이었고 사무실을 합치게 한 이유가 장인어른이 부동산 중개사고를 낼까봐 나를 이용해 감시자 역할을 맡긴 것 이라는 사실을 의도는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장인어른은 남의 말에는 무척 귀가 얇다.  게다가 욕심은 또 많아서 달콤한 얘기로 귀를 홀리면 앞뒤 생각지도 않고 뛰어드는 성격이다. 이미 과거 두번이나 증권회사 직원에게 자신의 노후자금을 몽땅 맡겼다가 한푼도 못 건지고 날린바가 있다. 그런 성격의 장인 어른이 부동산 중개를 하다가 하나 남은 집마저 날릴까봐 아내는 불안했던 모양이다.  

 

6년을 장인어른과 함께 일 하면서 그동안 가졌던 좋은 감정은 다 날라가고 나역시 장인어른이 보기에  모든 일에 태클 걸고 따지고 드는 싸가지 없는 놈이 되어 버렸다. 더 이상 같이 했다가는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아내가 그만 둔 이유도 같았다. 아무리 아버지라해도 일을 같이 하는게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남의 얘기에는 팔랑귀인 반면 자식이 하는 얘기는 그게 만고불변의 진리라고해도 절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그건 나와 일할때도 그랬다. 결국은 장모님이 큰소리를 쳐야지 그때 가서야 말을 듣곤했다. 

 

 

욕심많은 장인 어른 덕에 중개업으로 번 돈 나는 1원도 못 만지도 다 줘, 게다가 오래전부터 모아놨던 부동산 공금통장도 다 줘, 내 사무실 같이 쓰는데도 난 내 사무실 임대료는 한푼도 에누리 없이 다 받아, 게다가 사무실에서 쓰는 각 종 문구류, 물값등 소소한 운영비용 다 내가 내. 그러나 이런 내용 보다도 내가 가장 화가 나는건 나에 대한 대접이 남만도 못한 장인어른의 행태에 가장 화가 났다. 그래서 결국 사무실 문을 작년 말에 강제로 폐업했다.

 

 

스스로의 복을 스스로 차버린 꼴 이다. 지금도 사무실 폐업 한 것에 대한 미련과 원망섞인 얘기를 나에게 한다.

 

 

성격이 내 어머니와 장인 어른은 극단적으로 극과 극이다. 

 

 

나는 어렸을때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할머니가 그렇게 못된 시어머니 였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 않았다. 그냥 보통의 조금 얌전한데 약간 까다로운 면이 계셨던 보통 노인이었다. 실 예로 나는 할머니가 어머니를 혼낸다거나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어머니의 성격이 원래 그랬던 것이다. 스스로의 인생을 들들볶는 성격, 할머니가 지나는 말로 뭐라고 했을 것이다. 분명 그런데 어머니는 그걸 지나는 말로 듣질 않은 것이다. 매사를 말이다. 그러면서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피곤하게 한 것 이다. 그러니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36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 모양인 것 이다.

 

 

이제는 제발 할머니로 부터 벗어나서 그러지 마시라해도 그 말을 이해를 못한다. 당신이 얼마나 까다롭고 자식을 힘들게 하는지도 정작 본인은 모른다. 내가 뭘 어쨋다고...이런 식이다. 아마 어머니도 과거 할머니와 별반 다르지 않다라고하면 뭐라고 할까...차마 이 얘기는 어머니께 하지 못했다. 일요일 날 맛있는거 만들어서 같이 좀 먹자해도 이건 이래서 못먹고, 저건 저래서 못먹고, 어디 좀 가서 맛있는거 사드릴께해도 얼마전 TV에서 음식점 보니까 더럽고 못 미더워서 못 먹겠고, 차타고 나가면 멀미나서 못 먹겠고, 뭘 해드리고 사드려도 잘 먹었단 얘기를 들을 수가 없다. 

 

 

반면 성격이 정반대인 장인 어른은 자식들이 힘들어 죽으려해도 당신들의 안위가 더 중요한 사람이다. 오직 한사람 아들인 처남만 빼고 말이다. 처남에게는 모든 걸 다 주려한다. 그런데 그게 나와, 아내, 처제한테 받은걸 다 주려한다. 

 

 

이렇듯 부모를 봉양하는건 상상이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어머니는 할머니를 보며 나는 나중에 저러지 말아야지 다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은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다는 사실을 모른다. 나도 어머니와 장인어른을 보면서 나는 나중에 자식에게 저러지 말아야지 한다. 그러나 과연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싶다.

 

 

미리 포석을 까는 의미로 딸아이한테 나는 나중에 절대로 너에게 신세는 안질테니 너 잘 살 궁리만하라고 한다. 내 말의 의미를 딸이 잘 이해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런 얘기를 한다. 엄마, 아빠가 널 낳은 것은 엄마, 아빠의 의지로 널 넣은 것이니 너를 키우고 가르치는 것은 당연히 의무이지만,  네가 태어난 것은 너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난 것이니 나중에 엄마, 아빠를 네가 책임질 이유는 없다라고

 

 

나는 사는 동안도 그렇지만 죽어서도 가족들에게 조금의 부담도 지우고 싶지않다. 시신기증을 한 의미도 사실 남은 가족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가 큰 이유중 하나이다. 시신기증을 하면 장례 기본비용도 공짜고(식대나 부대비용은 공짜가 아니다. 장례식장 이용비용만 공짜), 나중에 화장과 산골도 무료로 해주니 부담스럽지만 쓸데없는 장례비용에 큰 돈을 안들여도 된다. 게다가 장례식도 안하면 전혀 돈이 안든다. 그래서 난 장례식도 하지 말라고 미리 못을 박아 두었다.

 

 

이 글을 보는 분들도 그런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나는 나중에 나이 먹으면 저러지 말아야지...이런 생각

 

 

그런데 이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의 실천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 같다. 인생은 참 피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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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일진 2015-10-28 12:14:10
답글

그렇습니다..왜 그러시는지 원인을 알면 많이 좋아지는데....
답답하죠.
깊이 있는 글이라 추천합니다.

henry8585@yahoo.co.kr 2015-10-28 12:32:06
답글

이런곳에 가족 이야기하기 힘든곳인데 용기내서 글올려주신 지태님 감사합니다.

추전합니다

김지태 2015-10-28 12:43:03
답글

저도 응어리진게 있어서...

조창연 2015-10-28 12:50:06
답글

긴글이지만 정독했습니다.
사실 저도 제 아버지의 성격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살다보니 닮아가고 있더군요.
이게 참 그런거같습니다.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기보다, 내 주관만 너무 내세우기 때문에 격차를 줄이기 어려운게 아닌가 합니다.
제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추천합니다~

정영숙 2015-10-28 13:26:58
답글

저두 끝까지 정독했습니다.
며느리인 입장에서 시부모님과 같이 산다는게 참 마음적으로 힘들텐데
지태님은 좋은분하고 사시고 계시네요? 결혼 잘 하셨습니다.^^
추천합니다.~~

김승수 2015-10-28 13:27:58
답글

돌뎅이도 당신을 무쟈게 싫어라 하면서 젊은시간들을 보냈습니다만

어느날 , 세면대앞에 서있는 내 얼굴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봤습니다

김주항 2015-10-28 13:35:22
답글

저는 뻔디 할배로 부터 나이 머그면 그라지 마라야쥐 를
거의 매일 듣고 삶돠..그러나 괘않씀다 사능 과정이라서...ㅎ

이종호 2015-10-28 14:54:00
답글

개밥고수님의 맴 이해함돠...그래서리 추천 두껍게 누질러씀돠...^^

홍순업 2015-10-28 23:51:51
답글

개인적인 가정사를 이렇게 쓰시기 쉽지 않으셨을텐데...잘읽었습니다....^^ 추천드렸습니다 !!

yhs253@naver.com 2015-10-30 07:41:31
답글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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