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카의 비애라는 이야기가 있다.
한 청년이 빨간 스포츠카를 너무나 타고싶었다.
그러나 그 청년은 너무 가난하여 빨간 스포츠카를 살 돈이 없었다.
그러나 간절히 타고싶은 열망만은 식지를 않아,
모진 각오를 하고 죽어라 일을 하였다.
천신만고끝에 드디어 빨간 스포츠카를 살돈을 마련하였다.
곧 빨간 스포츠카를 탈수 있다는 기쁨에 들떠 흥분된 마음으로 방문을 나서던 순간,
문득 방문옆에 걸려있는 거울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그 거울안에는 머리가 허연 웬 노인이 서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루루 흘러내렸다.
그랬다.
오직 빨간 스포츠카만을 사기위해 돈을 모으는데 수십년이 걸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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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년대 초.. 꿈도 크고 패기도 넘치던 나였지만,
그러나 내게는 돈이 없었다.
서울로 통학하느라 기차를 타고 다녔는데,
학원 수강비와 차삯 일체를 어머니께 손을 벌려야했다.
점심값을 아끼기위해 어머니께서 싸주신 도시락을,
종로 골목 한켠 오뎅집에 들어가서 꼬치 두 개를 시키면,
그릇에 국물과 함께 담아내주는데, 그 국물에 식은 밥을 말아먹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수강생중에 여학생 한명이 할말이 있다며,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한다.
속으로 좀 당황했다.
커피값을 내가 내면, 이따가 기차를 탈때 기차표를 못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랴..
예나 지금이나 그넘의 자존심 구겨지는건 죽기보다 싫어,
내가 내는게 뱃속이 편한것을..
더구나 그 여학생은 학원내에서도 퀸카중 퀸카라,
이런 여학생이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는데 어찌 거부할수 있으랴!
학원앞 다방에 들어갔다.
얘기를 들어보니,
자기가 동양화를 배우고있는데,
그림에 찍는 낙관에 관심이 생겨, 직접 낙관을 제작하고싶어 배우고 있다는데,
조각도로 돌을 파내며 글씨를 새기는 작업이 만만찮다고 한다.
그러면서 평소 나를 지켜봤는데,
성격이 섬세해보여 잘할수 있을것 같아보인다며,
내게 해볼수 있느냐 물었다.
잘만하면 앞으로 전망이 유망하대나 뭐래나..
내가 관심을 보이자 가방을 열더니,
길쭉하고 사각진 돌뎅이 몆 개와 조각도 셋트를 꺼내 내게 건네줬다.
연습삼아 하나만 먼저 조각해보라고 했다.
호기롭게 커피값을 내고 나오는것 까진 좋았는데,
이따 기차를 탈 생각을 하니,
은근 걱정이 되기는 했다.
몰래 기차를 탔다.
지금이야 그렇지않지만 예전엔 승무원이 차내에서 차표검사를 하고,
내려서 나올때는 역무원이 직접 차표를 받았다.
승무원이 차표검사를 할때는 화장실로 들어가 몸을 숨기면 그만이었지만,
차에서 내려 나가는게 걱정이었다.
그런데 기차를 매일 타다보니,
송탄역이 가까워지는 지점을 지날때는 서행하는 구간이 있다는걸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펄쩍!
기차에서 뛰어내렸다.
아무리 서행이라지만 그래도 달리는 기차이다보니,
추진력에 의해 몸이 쏠리면서 떨어질때 땅바닥에 무릎을 찧었다.
허겁지겁 도망쳐나오느라 미처 무릎을 살필새도 없었지만,
한갓진 곳에서 바지춤을 걷어 올려보니 무릎이 까져 피가 엉겨있었다..ㅠㅠ
그 뒤로도 그 여학생을 다방에서 몆 번 더 만났는데,
연습으로 깍아본 낙관을 보고, 칭찬을 해주는것 까지는 좋았지만,
커피값을 내고 다시 무임승차하여,
또 기차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끔직한 짓은 두번 다시 하고싶지 않았다.
하여 그녀에게 솔직하게 말하였다.
나는 가난한 사람이다.
밥 한번 사고싶어도 그럴수가 없다.
그러자 그녀가 아무 말없이 테이블 밑으로 지폐를 꼬깃꼬깃 접어 내손에 쥐어주었다.
딱봐도 그녀의 모습은 부티가 줄줄 흐른다.
늘씬한 몸매에 세련된 옷차림이며 교양있는 말솜씨를 구사한다.
이런 그녀가 왜 나같은 촌뜨기를 가까이 하는지,
내가 생각해도 이해할수가 없었다.
만날때마다 그녀가 전해주는 돈으로 커피값을 냈다.
그러나 이짓도 한두번이지.. 자존심 강한 나에게 상처가되었다.
퀸카중에 퀸카인 그녀!
나라고 왜 그녀가 싫겠는가?
그러나 당장 다음달 수강료를 낼 걱정을 해야하는 내 자신을 되돌아보며,
신분의 격차를 뛰어넘기에는 그 벽이 너무나 높음을 절감했다.
그뒤로 학원을 옮긴후 그렇게 그녀를 잊어갔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흘러 수십년이 지나갔다.
이제 부산까지 가는 KTX기차표를 살수도 있게됐고,
우아한 음악이 흐르는 커피숍에서 고급진 커피를 사마실수도 있게 됐다.
그러나..........................
거울속에서 웃고 서있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저 사내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