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3학년이던 1974년 아버지는 당시에 지금의 삼성전자 단지이던 영통에 필립스 공장을 짓던 관리 감독자셨습니다.
즉 지금의 삼성전자 단지는 원래 필립스 단지였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인근에서 하숙을 하셨는데 여름방학을 맞아 아버지 계신 곳에 엄니와 둘째형과 함께 그레이 하운드 버스를 타고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갔습니다.
아부지가 계신 하숙집은 복숭아 과수원을 하는 집 이었습니다. 집은 꽤 널직해서 아버지가 계신 방과 과수원집 내외가 사는 집은 별채에 있었습니다.
처음가서 며칠간은 화장실을 못갔습니다.
그 집이나 우리집이나 그때는 집과 동떨어진 곳에 있는 푸세식 화장실인건 똑같은데 서울놈 티내려 그랬던건지...그건 아니고 화장실이 집과는 좀 많이 떨어진 과수원 입구에 있었는데 전등불 하나 없이 컴컴해서 참 가기가 꺼려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울집은 그래도 전등은 있었는데...
그 집에 일주일 정도 있었는데 과수원집 내외가 참 친절하고 인심도 좋았습니다. 당시에는 참 귀한 음식이던 달걀 후라이를 매일 한번씩은 밥상에 올려주곤 했지요.
어쩌면 아부지가 하숙비를 넉넉히줘서 그랬던 것 일수도 있지만요, 아무튼 저로서는 생전 처음 서울을 벗어나 시골생활을 하는게 처음 며칠 화장실가서 응가를 못해결하긴 했지만 곧 적응하고 나서 접한 시골생활은 어린 저에게 새로운 경험이고 참 좋았습니다.
하루는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대청마루에 누워 있는데 과수원 아지매가 한바구니 가득 복숭아를 담아서 내놓고는 실컷 먹으라고 하시는데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 먹는 복숭아 맛도 참 별미 였습니다.
집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복숭아 나무가 끝도 안보이게 심어져 있고 가지마다 탐스러운 복숭아가 열려 있었지만 가정교육을 잘 받은 저와 형은 며칠간 한개도 따먹지 않았고 복숭아에 손댈 생각도 안했거든요. 이를 본 과수원댁이 대견하게 보였던가 봅니다. 애들이 애답지 않고 너무 점잖으니까 일부러 먹으라고 잘익고 탐스러운 놈만 따다가 주신겁니다.
이후로도 수시로 과수원 아지매는 저희에게 복숭아를 주셨는데 그때 아마 평생 먹을 복숭아의 반 이상은 먹은듯 합니다. 실컷 먹었어요.
지금도 복숭아를 보면 그 과수원집이 생각나곤 합니다. 그때는 공짜로 실컷 먹었는데 지금은 큰 맘 한번 먹어야 먹는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ㅡ,.ㅜ
그 과수원은 이미 오래전에 형체도 없이 사라졌구요, 둘째형이 영통에 사는데 어쩌면 그 과수원집 터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지난주에 제가 이름모를 곳에서 복숭아 한박스가 왔다고 와싸다 분이 보냈다면 이실직고 하라고 글을 올렸었는데 알고보니 저희 둘째형이 보낸 것 이었더라구요.
형도 과일가게를 지나다 복숭아를 보곤 1974년 영통의 그 과수원집이 생각 났던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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