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화실생활 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수강생중에 츠자 몆 명과 아즈매 몆 분이 계셨드랬죠.
츠자들이야 한창 봄날에 물오른 파릇한 버드나무가지 같았으니,
그 싱그러움이 이루 말할나위 없었지요.
더구나 화실선배가 오디오매니아라,
하루종일 LP판을 돌려 음악으로 실내를 가득 채웠으니,
제 인생 통털어 그때가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수강생중에 아즈매 한분이 계셨는데,
평소 말수도 적으시고 미모도 그리 출중한 분이 아니어서인지,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뚜렸한 분은 아니었습니다.
항상 화실 한켠에서 있는듯 없는듯 조용히 그림만 그리다 가시곤 하셨지요.
그런데 어느날입니다.
저녁 6 시 쯤 수강생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는데,
유독 그 분 혼자 남아 그림을 그리고 있더군요.
수강종료시간이 8 시 까지이니 더 계시고 안계시고는 그 분 자유이기는 합니다.
2층 화실에서 창밖을 내려다보니,
아랫집 기와집 안마당에는 어스름히 깔리는 땅거미 사이로 감잎이 가을 바람에 흔들리고,
실내에는 스모키의 LP판 Living next door to Alice가 잔잔히 울려 퍼지는데,
이런 고즈녘한 분위기가 너무 좋더군요.
화실선배는 오더작품을 그리고 있었고,
저는 다음날 수강생들이 사용할 캔바스작업을 하고 있던중,
문득 그때까지도 조용히 그림만 그리던 그 아즈매께서 불쑥 나에게 하시는 말씀,
"조선생님.. 제가 춤한번 보여드릴까요?"
이게 뭔소린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에,
선배와 저는 동시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아즈매를 바라보았죠.
제가,
"정말요?" 하자,
"그럼요~ 곡은 스모키의 I"ll meet you at midnight를 걸어주시고 볼륨을 좀 올려주세요~ "
잠시후 제가 곡을 찾아 바늘을 올려놓자,
쿵쿵~쿠궁~ 하며 반주음이 시작되는데,
자리에 서있던 그 아즈매...
준비하고 있었다는듯이 고개를 젖히며 두 팔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음악이 진행될수록 그 아즈매의 몸은 마치 한마리 나비가 환생한듯 했습니다.
한마리의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서 턴을 돌며 하늘거리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저는 마치 꿈을 꾸는듯 했습니다.
선배도 넋을 놓고 바라보더군요.
눈앞에서 라이브로 이런 황홀한 춤을 보게되다니!
턴을 돌때마다 하늘거리며 돌아올라가는 치맛단은,
우리 두사람의 벌어진 입을 다물수 없게 만들었지요.
제 평생에 음악이 이리 멋지고 춤이 이토록 아름다울수 있다는걸 처음 경험했습니다.
음악에 맞춰 무아지경속에서 춤을 추던 그 아즈매의 공연이 끝난후,
우리 두사람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동기립하여 열광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지금도 그 아즈매의 직업은 모릅니다.
추측으로는 모 대학 무용과 교수님이 아니었을까 싶긴하지만 확인해보진 못했습니다.
다만 그날 이후로는 그 아즈매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됐고,
수강생중 그 어떤 츠자보다도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30 년이 훌쩍 지난 오늘... 그때처럼 가을 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지난날 내 청춘의 한 기억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그때 그 아즈매 생각이 떠오릅니다.
비록 LP판은 아니지만,
당시 들었던 스모키의 I"ll meet you at midnight 음원을 재생해봅니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면서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이제는 그 아즈매를 다시는 볼수 없지만,
이렇게 음악속에서 한마리 나비가 되어 날개짓을 하며 잠시 내곁을 머물다 가는군요.
그림출처 : http://swingboy.net/234
길을 가다보면 마주오는 알지못하는 부부를 볼때가 있습니다.
남자분은 참 잘생겼습니다.
여자분은 참 못생겼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부부를 보면,
남자는 왜 전혀 어울리지 않을것 같이 보이는 여자와 결혼했을까?
그러나 그때 이후로 생각이 바꼈습니다.
그래.. 저 여자분은 분명 뭔가 내가 알지못하는 엄청난 매력을 소유하고 있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