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찾아온 베를린 필과 사이먼 래틀을 보고 왔습니다. 시간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글을 쓰게 되네요. 게으름도 게으름이지만 요즘 경제가 어렵다보니 돈은 안되면서 몸만 바쁘네요.



공연장인 예술의 전당으로 향하면서 가슴 떨리는 느낌이란. 예매를 서너달 전에 했기 때문에 사실 여러 음반을 통해 이번 연주 레파토리 브람스 교향곡을 듣고 또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감을 잡기위해서랄까요.

집에서 혹은 사무실에서 열심히 브람스를 들으면서 정말 가을과 잘 맞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여름 한철은 네빌마리너와 세인트마틴인더필드의 사계를 열심히 들었어거든요. 가장 여름스러운 곡이었기 때문에. 덕분에 브람스 교향곡이 정말 가을과 잘 맞는 느낌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공연장에 도착해보니 VIP의 향연입니다. 제가 아는 고위관료부터 각국대사님들, 그리고 금융권의 고위 인사들까지 아는 사람에 치일 정도더군요. 덕분에 그분들 사모님들이 어떤 분이신지 볼수 있는 기회였구요. 묘한 것은 그 사모님들은 하니같이 샤넬 백을 메셨다고 누가 그러두군요...ㅋㅋㅋ



저는 둘째날 3,4번을 들었습니다. 3번. 3악장이 백미죠. 뭐랄까. 완급의 미학이 살아있는 그런 연주더군요. 현악기 파트의 튜닝이 정말 잘 돼 있다는 느낌. 목관과 금관이 주고받는 앙상블이 가히 최고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6명으로 구성된 콘트라바스주자들이었습니다.

오디오적인 소리를 만들때 가장 어려운 것이 콘트라바스의 초저음입니다. 악기로 낼 수 있는 가장 낮은 음은 하프가 내주지만 브람스 편성에서는 콘트라바스가 가장 낮은 음입니다. 특히 손으로 튕겨서 연주하는 부분에서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으며, 퍼질 듯 퍼지지 않는 묘한 뉘앙스를 제대로 느꼈습니다.

3번은 다소 느린 듯 연주되면서도 강하고 여린 조율은 매우 잘 돼 있다는 느낌. 목관이 연주할 때는 금관과 현이 뒤로 살며시 빠져주면서 목관을 무대 전면으로 내세우고, 현이 나설 때는 자칫 튈수 있는 금관이 고도로 절제된 연주를 보여준다든지. 숨을 죽이면서 3악장에서는 그저 음악에 빠져들었습니다.



4번은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모든 연주자들이 너무도 자신있고 힘차게 연주하다보니 래틀을 바라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으니. 아마도 수없이 갈고닦은 연습의 결과라는 생각. 그렇게 각자 자신있는 연주이면서도 강인함에 돋보이는 느낌이랄까.

하모니도 극적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순간순간 모든 악단이 여리게 연주하는 대목에서의 절묘한 적막 등. 완급조절의 미학도 빼어났습니다.



특이한 점은 대부분 악단이 악기군을 배치할 때 좌우로 넓은 대형을 보이는 반면 이번 베를린 필은 좌우 배치 인원을 줄이는 대신 무대 전면에서 뒷면까지 배열을 높였습니다. 넓은 음장감을 보여주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더더욱 각 악기층이 더 또렷하게 위치를 잡는 효과가 있었다고 느껴지거든요.



이번 가을 좋은 연주를 들었다는 생각에 그날 밤 집에서 다시한번 브람스 4번을 들으면서 공연을 감흥을 살렸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제가 고생해서 3년여만에 만든 시스템이 비교적 공연장의 느낌과 다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참고로 저는 프랑스 카바세사의 카리스마 카라 스피커, 비지니스코리아 쥴리아드 인티 KT88 진공관 앰프, 마란츠 11S2 CDP, 프로젝트 9.1 턴테이블 등으로 시스템 매칭해서 듣고 있습니다...



다음번 공연은 구스타브 두다멜이 이끄는 시몬느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지금까지 국내에 온 단원들 가운데 수가 가장 많은 200명(합창단 제외)이 연주하는 말러입니다. 12월이 기다려지네요....즐음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