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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공포의 가리산 길에서...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5-08-16 19:40:12
추천수 25
조회수   2,093

제목

그 날.. 공포의 가리산 길에서...

글쓴이

최대선 [가입일자 : 2009-01-25]
내용


이틀 간 쏟아진 장대비에 대대규모의 연병장이 물에 잠기고

난방용 석탄창고에 물이 들어차 뻘이 되면서 후반기 교육은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교육이고 뭐고 물난리 뒷처리가 시급했지만 무엇보다 코 앞에 닥친 일은 먹을 것과 잠자리였다.

물에 젖은 석탄을 삽자루로만 힘겹게 치워내다 저녁이 되면 식사가 그나마 가능한

중대급 부대로 이동해서 좁아터진 식당 앞에 줄지어, 하염없이 배식순서를 기다려야만 했다.





육십 명 규모의 취사장에 오백 명의 인원이 갑자기 들이닥치니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인사계님.  부식이 너무 부족해서 배식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야!  부대가 완전히 개판 됐는데 지금 밥이 문제야?  적당히 하고 말어."





간부들은 퇴근하면 그만이었지만 우린 쥐꼬리만 한 배식마저 못 받으면

주린 배를 달래가며 막사 한 켠에 쭈그리고 있어야만 했다.

그 와중에도 한 번 더 밥을 받으려 ,  먹고 난 식판을 처마 밑에 떨어지는 빗방울로

씻어내는 녀석들도 눈에 띄었다.





아무런 외부의 지원도 없었다.

















뙤약볓이 내리쬐는 이른 아침부터 부대 내 운전면허 시험장은 시험용 트럭을 정렬하는

조교들로 북적였다.

삼 개월의 교육을 마치고 자체시험을 보는 날,  평소 과묵한 성격의 교관은

검은 썬글래스를 낀 채로 우리 교육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작을 알리는 차임벨 소리에 서너 명 씩 조를 지어 코스시험에 들어갈 때만 해도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이었는데 첫조의 티형 코스가 끝날 때 쯤, 분위기는 험악해지고 있었다.





" 야!  티자 떨어진 놈 이리와!"



티코스의 첫 번 째 탈락자가 헐레벌떡 교관 앞으로 달려 나왔다.





"땅바닥에 배 깔고 엎드려!"



녀석이 엉거주춤 배를 대고 엎드리는 순간,  미동도 않고 있던 교관이 군화발로 등 위를

밟고 올라섰다.



그리고는 제자리에서 지근지근 밟으며 우리들을 노려보았다.





" 떨어진 놈들은 내가 전부 밟아주겠다.   정신들 똑바로 차리고 코스 돌아!"









식은 땀이 흘렀다.





















기록적인 폭우에 내린천을 따라 인제와 신남을 잇는 국도가 완전히 끊겨나가고

물자수송 업무를 하던 자대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비상도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현리에서 리빙스턴교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산길은 산허리를 타고 가파르게 이어지는

매우 위험한 길이었다.





겨우 차 한 대 지날 수 있는 길 옆은 까마득한 낭떠러지여서 쳐다보기 조차 힘들었다.

운행경험이 많은 고참들이 운전대를 잡고, 조수로 따라가는 우리 졸따구들은

아스라한 비탈길에 괜시리 맘을 졸여야만 했다.







그날...



칠곡 출신의 착하디 착한 사수와 나는 짝을 이루어 신남에서 물자를 싣고 가리산 길을 넘어

인제로 돌아오는 수송작전에 참가했다.





침상 바로 옆에서 지내던 사수는 조그마한 체구에 순박하고 말없는 사람이었다.

동기가 워낙 많았던 탓에 타겟이 되어 고참들로부터 수없이 갈굼을 당하며 지냈지만

항상 특유의 너그러움을 잃지 않는 호인 중의 호인이었다.





내겐 까마득한 고참인데도 괜시리 만만한 나머지 이유없이 개기곤 했지만

특유의 느긋함으로 웃어넘기던 그는 팍팍한 생활에 유일한 탈출구가 되어주었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H빔을 적재함에 가득 싣고 돌아오는 길은 엉금엉금 거북이 걸음이었다.

가뜩이나 힘이 달리는 구형 트럭에 어마어마한 무게를 싣는 바람에 바퀴 스프링이

반듯하게 펴질 정도였지만 십여 대에 모두 적재하려면 다른 방도가 없었다.





리빙스턴교를 지나 한참을 달리다 잠깐 휴식한 뒤

무슨 생각인지 사수는 나에게 운전대를 넘겼다.   안그래도 몰아보고 싶었던 나는

두말 않고 운전대를 넘겨받았는데 잠깐 사이에 냉방장치도 없는 운전석에서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유압도 없는 핸들은 정지중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무거운 브레이크는 온 체중을

실어야만 했다.









한시간여를 달리다 가리산 코스 중 가장 위험한, 가파른 구간에 도착하여 오십여 미터의 고갯길을

통과하기 위해 한 대 씩 차례로 출발시켰는데

바로 앞차가 고개를 거의 넘을 무렵, 내 차의 클러치에서 발을 떼었다.





1단 기어를 넣고 엉금엉금 밑에서부터 기어 올라가는데 거의 고개를 넘어가던 앞차가 움찔거리는게

시야에 들어왔다. 무슨 문제인지 멈칫거리던 앞차가 굉음을 내며 다시 출발하려던 순간

가득 실려있던 H빔 몇개가 우당탕 소리와 함께 적재함에서 떨어져나와

내 차 앞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30도 가량의 가파른 경사길 위로 떨어진 H빔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심장이 떨어져나갈 듯 들이닥치던 빔이 간신히 차앞에 멈추긴 했지만

정작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힘겹게 멈춰 선 트럭은 무거운 적재물로 인해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였지만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었다.





겨우 한대가 지나갈 만 한 길 왼 쪽은 산비탈이었고 오른 쪽은 천길 낭떠러지였다.



사이드 미러로 바라보는 차의 뒷바퀴가 굽어 도는 길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었고

옆자리의 사람좋은 사수의 얼굴은 얼어붙은 듯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운전자를 바꿀 수도, 휘어지는 고갯길에서 후진할 수도 없어 온 힘을 실어 브레이크를

누르는 와중에 십여 대의 차에서 중대원들이 내려 떨어진 빔을 가까스로 고개 위까지

한참을 끌어올리는 동안 내 머리속은 온갖 생각들로 어지러웠다.











자칫하면 굴러 떨어질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





이 무거운 차체를 미끄러지지 않고 다시 출발시켜야만 했다.





밀리거나 시동이 꺼지면 끝장이었다.







조심스럽게 뒤꿈치로 브레이크 페달을 옮기며 발 끝으로 악셀을 눌러 rpm을 올렸다.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엔진이 굉음을 내지르는 순간



떨리는 발 끝으로 조심스럽게 클러치를 들어올리며 출발을 시도하자 마자



뒤편 적재함에서 빔들이 밀리며 요란한 소리가 울리고 코 끝엔 미션의 디스크 타는 냄새가

매캐하게 밀려들었다.









꺼질듯 말 듯 거칠게 비명을 지르는 엔진이 심장을 부채질하고 뜨거운 등줄기엔 온 몸의 물기가

적셔 흘렀다.













필사적으로 악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내 운명이 발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 앞의 나무들이 가물가물하고 귀 속이 아득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온 몸의 세포들이 미친 듯 전율할 때...















밀릴 듯 말 듯,  꺼질 듯 말 듯 하던 차체가 조금씩 조금씩 언덕 위로 기어올랐다.





























차가운 쇳덩어리와 사람은..     오뉴월의 가리산 길을 그렇게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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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2015-08-16 19:44:57
답글

2차대전때 불하받은 GMC 폐차직전 트럭들...ㅜ.,ㅠ^

염일진 2015-08-16 19:49:23
답글

아 몰랑..~~!
내 등짝에 식은 땀은 누가 책임지나욧??

권태형 2015-08-16 19:52:10
답글

리빙스턴교가 나오네요.. ㅋㅋ
저는 리빙스턴교 건너편 부대에서 근무했습니다.
근무시절 100km행군코스 같은데요.
요즘은 길 좋아졌더군요...

최대선 2015-08-16 20:47:22

    그 주위에 몇몇 부대 중이었나 보네요. 지금은 제법 유명해져서 찾아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시절엔 정말 오지였죠. 가리산 골짜기 얼음물에 머리박던 시절이 까마득합니당..

김승수 2015-08-16 19:52:35
답글

글을 읽으면서 .. 왜 .. 펄떡펄떡 뛰던 팔뚝만한 가리산 송어회가 생각나지 ?

이종호 2015-08-16 20:02:40

    매를 벌어요..ㅜ.,ㅠ^
그러니 스뎅식판 모서리로 읃어터지지...ㅜ.,ㅠ^

김주항 2015-08-16 20:14:58
답글

차므로 스릴 있게 읽었 씀다
뇐네 들은 잘 모리지만 글은
이렇게 펄덕 펄덕 뛰는 송어
처럼 맛나게 써야 제 맛임돠....~.~!!

이종철 2015-08-16 20:19:30
답글

영화로 맹글어야 한다능...*&&

이종호 2015-08-16 20:28:28
답글

저두 울 마님과 속초 갔다오다 네비없던 시절 그쪽
어마무시한 길을 오밤중에 질러온다고 잔머리 굴리다
식겁하고 넘어놨던 기억이 잇씀돠...ㅜ.,ㅠ^

최대선 2015-08-16 20:42:08
답글

마눌님이 밥먹으라 재촉하는 바람에 뒤 스토리를 빼먹었네유..
실제로 제대하고 십년 후 쯤 그 부대에서 예비군 수송하다 길 옆으로 굴러서
많은 인명사고도 있었죠. 잦은 사고로 결국 부대가 다른 곳으로 통합되고 말았다는..

날도 더운데 살떨리는 야그들 좀 올려주세유.

김병현 2015-08-16 20:50:43
답글

볼리비아의 데스로드가 생각 나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3iNLtwMtRSY

이창민 2015-08-16 21:32:47

    앙리 조르쥬 클루조의 걸작 '공포의 보수'의 그 도로이죠?

최대선 2015-08-17 01:08:56

    끔찍하군요. 차라리 속도를 좀 올려서 지나는 게 나아보입니다.

홍순업 2015-08-17 10:03:03

    후덜덜 하네요.....ㅡ,.ㅡ

전성일 2015-08-17 09:21:46
답글

리빙스턴교가 구간 폭파되었을때 탱크가 건널 수 있도록 조립교를 설치하는 특수(?) 업무를 부여받은 공병대에 있었는데..리빙스턴교로 다녔다니..대선님도 을쉰급인가 봅니다..

최대선 2015-08-17 12:30:26

    삽질도 특수(?)하게 하시겠군여.. 주말농장에 배추 심기 전 퇴비작업 하려는데
땅 좀 파주세용.

도재수 2015-08-17 10:05:11
답글

가리산 특공에서 유격훈련받던 생각이 납니다.
한번은 유격조교들이 일주일후 평화의 댐 공사현장의 지뢰제거 작업에 투입된다며 큰 은헤를 베풀어 산악코스가서 더덕캐다 온 기억이 납니다.
저는 현리 군단사령부에서 근무했었습니다.

최대선 2015-08-17 12:38:22

    가리산 특공대 유격 받으러 몇시간 씩 걸어서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유격 끝나고 계곡물에 씻으러 가면 발이 시려 담그지도 못했었죠.
숲이 무성해서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계곡이 생각납니다.

진성기 2015-08-17 11:31:01
답글

두달 전에 다녀왔는데걸어도 걸어도
힘만들어

욕만 투덜거리며 다녀왔습니다

최대선 2015-08-17 12:41:59

    걷는 코스로 이용되나보군요. 그래도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징글징글하고 이가 갈리는 곳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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