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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 그곳의 기묘한 이야기 (중)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5-08-09 15:23:28
추천수 15
조회수   821

제목

[퍼옴] 그곳의 기묘한 이야기 (중)

글쓴이

김창욱 [가입일자 : 2000-06-04]
내용




지송,,,중간게 안올라 갔네요ㅜ.ㅜ

================================================================================================



그...그 놈이 누굽니까?"




예의상 전상병에게 질문을 했지만 여전히 나는 전상병의 답변이 나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러나 곧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너도 알잖아. 누구일지."




나는 마른 침을 한번 삼키고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자살했다는 정..정한수라는 사람 말입니까?"




"......"

 

초소 천장을 뚫어버릴 듯한 기세의 빗방울 소리가 전상병의 대답소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그 사람인지 어떻게 압니까? 누가 봤습니까?"




"......"




내 뒷편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는지 모를 전상병은 나의 물음에 입을 열지 않았다.

 

"전상병님..."




나는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난 알고 있어."

 

"...예?"

 

"............"

 

나는 다시 한번 마른 침을 삼켰다.

 

"뭐..뭘 말입니까?"

 

그러나 전상병은 대답을 더 이상 하지 않았고, 우리 둘은 깊은 침묵속에 오랫동안 빠져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었을까?




멍하니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가 깨닫지 못한 것이 눈 앞에 나타났다.




십수미터 앞 커다란 아카시 나무 옆에 누군가가 판초우의를 뒤집어 쓴 채 어둠속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누군가 순찰중이라면 손정등도 켜지 않은 채 저 어둠속에서 가만히 서 있지는 않으리라.




게다가 지금은 근무 교대시간도 아니다.

 

"저....전상병님..."




"...."




"누...누가 앞에 있습니다."




어떻게 이 어둠속에서 그것도 빗줄기가 쏟아지는 곳에서 그가 보이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나는 그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길게 늘여진 판초우의가 거의 땅에 닿을 정도로 작은 키였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고 보고 있었다.




내가 전상병을 다시 부르려고 하자 그는 일어서서 이미 내 곁에 서 있었다.




그러나 전상병은 그 어둠속의 형상을 찾지 못하는 듯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




순간 서서히 눈 앞에 나타난 어둠 속의 사내가 우리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밖으로 나가 수하를 하기 위해 초소문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전상병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제지했다.

 

"나가지마..."




"예?"




"모른 척 해"




"무...무슨 말씀이십니까?"




"쳐다보지마....눈 감어."




"도..도대체 무슨 말....."




"그냥 내 말 들어!! 신발놈아!!"




이미 전상병은 무언가 알 수 없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전상병이 왜 공포스러워하는지 그의 표정을 보고나서야 나도 깨달았다.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총을 쥐고 있는 손의 악력만큼이나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설마 저 앞에 서 있는 정체가 전상병이 말한 그것이란 말인가?




삭신이 저리고 온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정체가 서서히 내 코 앞까지 도달하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싸늘한 한기가 주변을 감사고 있었다.




몇 십초가 흘렀을까?




나는 질끈 감았던 눈꺼풀의 힘을 뺐다.




그리고 실눈을 조심스럽게 뜬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아직도 전상병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전..전상병님...지금 무슨 일입니까?"




"발 봤어?"




"예?"




"다가올 때 발이 보였냐구? 걸을 때 판초우의 펄럭이는 것 봤어?"




"그게...저..."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이 발을 보지 못했다. 정말로 보지 못했다. 머리가 핑 도는 듯 아찔해졌다.




그가 키가 작아서 판초우의가 거의 땅에 닿을 듯 스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걷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줄을 타고 내려오듯 나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미친듯이 왼손으로 얼굴을 비벼댔다. 그리고 답을 했다.




"못 봤습니다."




나의 대답에 전상병을 고개를 돌려 나에게 물었다.




"너 귀신 볼 줄 알아?"




"제..제가 어떻게 귀신을 봅니까?"




"지금 니가 본거잖아."




헛것을 봤다고 말해야 하는데, 거짓말이었다고 말해야 하는데 이미 내 시각중추에 저장된 정보는

내가 본 것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되뇌이고 있었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싶었다.




나는 초소문을 박차고 나가 쏟아지는 장대비에 몸을 맡겼다.




뭐 이런 성기같은 부대가 다 있냐?




나는 호흡이 거칠어지고, 심장이 터질 듯 했다.




"이창훈... 너 왜 그래? 미쳤어 새꺄?"




나의 기이한 행동에 전상병이 열이 받았는지 내 등뒤에서 욕설을 내뱉았다.




그냥 나는 얼굴에 비를 맞으며 정신을 차리고 싶었다.




마음을 진정시킨 나는 천천히 뒤돌아 전상병이 서 있는 초소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공포에 질리다 못해 나는 분에 받친 눈물을 쏟아냈다.




초소안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전상병 옆에 또 한명의 누군가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총을 겨누었다.




그러나 정작 나의 조준에 놀란 것은 전상병이었다.

 

"야이 강아지야!! 너 지금 뭐하는거야!!"

 

나는 전상병의 외침을 무시한 채 멜빵에 매달린 손전등을 집어들고 초소안을 비췄다.




불빛과 동시에 그 형상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나의 공포는 거기서 멈춘것이 아니었다.

전상병의 왼쪽 어깨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헛것을 보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나를 향해 계속 욕설을 퍼부었다.




"야 신발놈아 총 안 내려!!!"




"에이...신발 피...."




"뭐?"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신발 왜 어깨에서 피를 흘리냐고!!"




"너...지..지금 뭐라 그랬어?"




나의 외침에 전상병은 미친 듯이 양쪽 어깨를 쓸어내렸다. 나만큼이나 전상병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도 그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 와중에 내 눈에 또 다른 무언가가 들어왔다.




"김....선호...."




나의 세 음절에 전상병은 어깨를 쓸어내리던 행동을 갑자기 멈추었다.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들어 부릅 뜬 눈으로 나에게 물었다.




"너...이 강아지...지...지금 뭐라고 그런거야?"




"이...신발 니 명찰에 써 있잖아 신발!!!"




지금은 고참이고 뭐고 없었다.




둘 중에 하나는 지금 귀신들려 누구를 죽이던가 아니면 아랫턱에 총구를 대고 자살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나는 죽기가 싫었다.




전상병은 천천히 초소문을 열고 나와 빗속에 몸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너...지금 했던 말 다시 해봐."




"...."




나의 대답이 없자, 갑자기 전투화 바닥이 내 복부를 향해 날아들었다.




내가 수미터를 나동그라지자 전상병은 번개처럼 달려와 내 멱살을 쥐고 다시 물었다.




"너 신발놈아!!! 방금 전에 무슨 이름 얘기 했잖아!!! 다시 말해봐!!!"




나는 코와 입속으로 쏟아지는 빗방울 때문에 대답은 커녕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가슴에 붙어있는 이름은 조금 전에 보았던 그 명찰 속의 그것이 아니었다.




전대웅....그의 명찰이었다.




그 귀신이 누구에게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둘 중에 하나는 분명히 미친게 틀림없었다.




"기....기억이 안납니다."




나는 이 무서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거짓말을 했지만, 전상병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나의 대답과 함께 전상병은 내 멱살을 더 강하게 틀어쥐었다.




"콜록..콜록..."




"이 신발놈아. 거짓말 하지마. 너 아까 뭐라고 이름 불렀잖아."




"콜록...콜록..."




나는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아아아악!!! 신발 모른다고!!!!!!"




나는 비명 소리와 함께 멱살을 쥔 전상병의 손목을 틀어잡고 그를 향에 달려들었다.




장대비속에서 몇 초간 엎치락 뒤치락 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 거기서 뭐하는거야!!!"




순찰을 돌던 당직사관이었다.

 

 




근무를 마치고 행정실에서 머리를 박고 있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런 미친 새끼들...근무자끼리 쌈질을 해?"




당직사관인 선임하사가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전상병과 나를 향해 비아냥거리듯이 말을 뱉았다.




"야..이창훈."




"일병, 이창훈!!"




"너 미친것 아니냐? 니 고참한테 어떻게 대들 생각을 하냐?

아무리 요즘 군대가 당나라 부대가 되었다고 해도 이건 아니잖아."




"시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전대웅이 너는 고참이라는 새끼가 쫄따구하고 쌈질이나 하고 자빠졌냐? 응?

너희 두 놈 중대장이나 대대장 알면 최소 군기교육대야... 알아?"

 

"......."




그러나 이 순간 그 것보다 다른 걱정거리가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묵언의 합의하에 전상병과 나는 몸싸움의 이유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단지 몇 마디 나의 욕설로 인해 싸움이 일어났다는 전상병의 그럴싸한 시나리오로 마무리되었다.

한차례의 푸닥거리가 끝나고 나와 전상병은 내무반으로 들어섰다.

일병 찌끄레기가 상병 말호봉하고 몸싸움을 하다니.....




수 많은 고참들의 압박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새벽 두 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인데 고참 몇몇이 잠을 이루지 않고 침상에 걸터 앉아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친개 최병장이었다.

어둑어둑한 와중에서도 칼자국 같은 눈 밑의 흉터는 그가 나를 바라보는 또다른 시선으로 보였다.

내가 그의 앞을 지나가는 내내 최병장은 검게 그을린 얼굴속에 박힌 하얀 안구의 초점을 내게 계속 맞추었다.




그의 뒤를 이어 몇몇 고참들의 따가운 시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밤을 무사히 넘길 수가 있을까?

날이 밝을 때까지 몇 번을 불러나갈까?

어떤 놈의 주먹이 제일 아플까?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고 있을 쯤 최병장이 입을 열었다.




"내 밑으로 아무도 건들지 마."




순간 안도의 한 숨이 나도 모르게 내쉬어졌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최병장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침상에 앉아 머리를 감싸쥐고 있던 전상병을 이끌고 밖으로 향했다.

그 둘은 밖에서 조용히 뭔가 정보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지만 침상에 누워있는 동안 여러가지 소리들이 자그맣게 들려왔다.




최병장이 계속의 뭔가를 캐묻는 것 같았고, 전상병은 억울하다는 듯 하소연을 수차례 하는 듯 들렸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정말 내가... 전상병은 보지 못한 귀신을 본 걸까?

그 귀신이 죽었다는 정한수인가? 정한수는 정말 자살한 걸까?




그런데 김선호가 누굴까? 전상병의 명찰은 분명히 김선호였다. 처음 듣는 이름이다. 적어도 우리 부대에는 김선호가 없다.

왜 김선호라는 이름에 전상병이 미친 사람처럼 내게 달려든 걸까?

 

 




"이창훈 너는 당분간 위병소 근무서라."




날이 밝자 당직사관인 선임하사가 명령을 내렸다.




"네. 알겠습니다."




"고참이 좀 괴롭혀도 참아야 되는게 군대생활이다. 니 고참들은 더한 고생 참아가며 작대기 하나씩 올린거다.

고참이 좀 못되게 굴었다고 몸싸움하면 대한민국에 남아날 군대 없다.

중대장이나 대대장한테는 보고하지 않을테니까 당분간 몸 조심해."




"네. 알겠습니다."




머릿속에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선임하사가 이상한 말을 내뱉았다.




"그런데 전대웅이 공수부대 출신이라 힘이 장사였을텐데 너도 참 대단하다. 그 놈하고 몸싸움 할 생각을 했으니"




"!!!!!!!!!"




이게 무슨 말인가? 전대웅 상병이 공수부대 출신이라니.....




"특..특전사 말입니까?"




"그래 임마. 거기서 훈련하다가 다쳐서 왔다는데 사병 세 명을 한꺼번에 일반 부대로 오기는 아주 드문 일인데...."




"나머지 두 명이 누굽니까?"




"전대웅이하고, 김창식...그리고 최병희.... 벌써 생김새 보면 딱 티가 나지 않디?"




"모...모두 같은 부대에서 온 겁니까?"




"그래. 군대에서 아주 희귀한 일이지. 특히 전대웅은 사단장의 먼 친척뻘이랜다. 말썽일으키지 마라."




이럴 수가.... 전상병, 김병장, 미친개 최병장이 모두 같은 부대에서 전입 온 병사라니...




전상병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인 것일까?

 

 

낮 3시 근무였지만 간간히 하늘을 덮고 있는 구름으로 인해 뙤약볕은 피할 수가 있었다.




위병소 초소 밖에 나와서 근무를 서는 나와 달리 내 사수는 초소 안에서 뭔가를 열심히 탐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러가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동안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수미터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음이 눈에 들어왔다.




연륜이 느껴지는 얼굴 생김새와는 달리 그녀의 피부는 생각보다 매끈하였고, 보통의 요즘 여자들과는 달린 쪽진 머리가

곱게 빗어 넘겨져 있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그녀에게서 느껴졌다.




그녀는 한참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니 내게 천천히 다가와 내 앞에 멈춰섰다.

 

"누구 면회 오셨습니까?"

 

나의 물음에 갑자기 그녀의 양볼에 검은 색 마스카라줄기가 흘러내렸다.

두 줄기의 눈물이 뺨을 적시고 있음에도 그녀는 애써 울음을 참는 듯 보였다.




나는 뜬금없는 상황에 초소안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탐독하고 있는 사수를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이내 나는 그 행동을 멈춰야만 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 아들을 찾아주시게"




"..예?"




"내 아들을 찾아주시게"




이해할 수 없는 묘한 기운이 주변을 감돌고 있었다.




나는 면회객 일지를 집어들고 그녀에게 물었다.




"아드님의 계급과 이름을 알려주십시오"




나는 관례상 그녀에게 묻고 있었지만 그녀는 일반적인 면회객 같아 보이지 않았다.




"......."




그녀는 입을 열지 않은 채 나를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드님이 누군지 말씀하셔야 부대에 연락...."




"죽었다오"




"!!!"




이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하는걸까?




그녀는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지금쯤 병장이 되었을 것이오"




면회객 일지에 쓸 내용이 없었지만, 오른손에 쥐어진 펜은 이미 나의 떨리는 손의 자취를 그리고 있었다.




"아드님...이름이....."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는 심정에 그녀에게 답을 확인하고 있었다.




"정한수라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그녀는 눈 한번 깜박이지도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 아이가 원귀가 되어 이 곳을 떠돌고 있소. 찾아주시오."




도대체 이 순간 무슨 말을 해야 이런 오금저리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은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는 긍정의 대답도 부정의 대답도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몰랐다.




나는 시선을 내리고 천천히 등을 돌렸다.

더 이상 그녀의 입에서 다른 말이 나오지 않기를, 아니 그냥 떠나 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내가 등을 돌려 발을 떼려는 순간, 그녀는 말 한마디로 내 발걸음을 붙잡고 말았다.




"그 아이를 찾지 못하면 부대원들이 죽어 나갈 것이네."




등골이 싸늘하다.




"그...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들이 죽은 뒤로 수없이 천도제를 지내게 해달라고 부대에 부탁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네.

아들이 원귀가 되어 이 부대를 떠돌고 있음에도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더이다."




"그런데 왜 우리 부대원들이 죽을거란 말입니까?"




나의 물음에 그 여자는 울먹이는 표정을 멈추고 갑자기 경직된 얼굴로 대답했다.




"서로 간의 처절한 살생이 일어날 수 있지. 자네도 어제 사람을 죽이려하지 않았는가?"




갑자기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면회일지와 펜을 들고 있는 두 손이 동시에 떨리기 시작했다.

벌어진 입 속이 매말라가고 있음에도 한 모금의 침도 삼킬 수가 없었다.

하얀 피부에 검게 그어진 세로선이 그녀를 마치 저승사자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그런데 왜...왜 접니까? 왜 제가 아드님을 찾아야 합니까?"




그녀는 한 동안 입을 다문 채 계속해서 나의 눈치를 살폈다.




"사자(死者)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사..사자라니오?"




"죽은 자의 기운이 느껴져...."




"그....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기어들어가는 내 목소리와는 다르게 그녀는 위병소가 떠나가라 호통치듯 소리쳤다.




"곧 죽음에 직면할거라는 말일세!!!"

 

이런...신발..

내가 죽는다구? 정말 내가 죽는다구? 이 신발 미친 여자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거야?

이 기분 나쁜 여편네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힘껏 땅바닥에 내팽겨치기라도 해야 하나?

이 총의 개머리판으로 독사같은 그 주둥이를 뭉개버려야 하나?

삽탄된 총의 노리쇠를 당겼다가 놓기만하면 총알이 장전된다.

이 여자는 내가 격분하여 자신의 몸뚱아리에 총구멍을 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나 있는걸까?

그 여자의 저주같은 독설보다 더 사악한 방법의 폭력과 위협을 가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선택은 너무나도 초라하고 단순했다.

이미 나는 그녀의 범접할 수 없는 무서운 기운에 주눅들어 있었다.

 

"아..아들을 찾으려면.. 제가 그럼 뭘 해야 합니까?"

 

 




나의 물음에 그녀는 잠시동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 또한 그녀의 답변을 기다리며 그녀의 눈동자에 시선을 맞추었다.

잠시 후 그녀는 상의 깊숙히 숨겨두었던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도는 붉은빛의 주머니였다.




"뭡니까?"




"부적일세."




"부적?"




"삶과 죽음의 경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라네."




'삶과 죽음의 경계?'




순간 나는 얼마 전 전상병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한수 어머니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하니까 그 늙은 무당이 하는 말이..부적을 몸에 지니는 순간부터 귀신을

보게 될거라는거야.]

 

헉...어찌 이런 일이 나에게.....

머릿속에 저장된 여러가지 정보가 길을 잃은 듯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그리고는 이내 허탈감을 이기지 못한 듯 조용히 말이 튀어나왔다.




"귀...귀신을 본다는 그 부적?"




작은 나의 목소리에도 그녀는 크게 놀라는 눈치였다.




"그 걸 어떻게 아는가?"




"아드님이 죽기 전에 제 고참한테 그 부적이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말해줬답니다."




나의 대답에 그녀는 또 한번 눈물을 글썽거렸다.




"미안하네....정말로 미안하네....흑흑.."




"아드님도 찾고 저 뿐만 아니라 부대원들 목숨까지 건질 수 있다는데 뭐가 어렵겠습니까..."




그녀는 이내 다시 한번 눈물을 쏟아냈다.




나는 개의치않고 그녀 손에 쥐어져 있는 주머니를 빼앗듯 집어들었다.




"이제..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눈물을 거둔 그녀는 내가 해야 될 행동들을 나열하듯 설명했다.




"그 주머니 안에는 빨간색과 노란색 두 종류의 부적이 있다네.

오늘 밤 해시에 노란색 부적을 태우고 그 재를 물에 타서 마시게."




"해시라면...?"




"오늘밤 9시에서 11시 사이일세. 그리고 빨간 부적은 네 장이 있는데 하나만 남겨두고 몸이 닿는 곳에 가까이 두게."




"그...그러면 그 때부터 뭐가 보이는 겁니까?"




"그렇진 않다네. 효력이 언제부터 발생할지는 나도 모른다네."




그녀는 잠시 숨을 돌리더니 말을 이었다.




"행여 귀신을 그 때부터 보더라도 놀라지 말게나.

아는 척도 하지 말 것이며, 절대로 말을 걸어서도 안되고, 눈을 맞추어서도 안된다네.

자네가 귀신을 볼 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네 몸을 빌어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네."




그녀의 말에 갑자기 싸늘한 한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그럼 아드님은 어떻게 찾습니까?"




"남은 한 장의 붉은색 부적을 넘겨주게. 그리고 이 어미의 말을 전해주게....흐흐흑...."




서글픔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는지 그녀는 연신 닭똥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이제 살아있는 사람에서 더 이상 해를 입히지 말고 떠나달라고...어미가 간절히 바란다고..

그리고 짧은 인연이지만 이승에서나마 부모 자식으로 만나줘서 고마웠다고......흐흐흑

이승의 연이 길지 않았지만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오랫동안 행복한 삶을 살아달라고 전해주게...흐흐흑"




그녀의 울음에 나 또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런데 전..아드님 얼굴을 모릅니다."




"주머니에 작은 사진이 들어있네...."

 




근무가 끝난 후 나는 내내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주머니를 매만졌다.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걸까?

아니...내가 무슨 일을 저지를 것인가?

두려움, 공포, 무력감, 후회...또는 기대...하나로 정할 수 없는 여러가지 감정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나저나 어제 이후로 전상병이 조금씩 이상해져 가고 있었다.

식사 시간에도 초점을 잃은 눈으로 밥이 코에 들어가는지 입에 들어가는지 관심도 없는 듯 숟가락을 뜨고 있었다.

근무시간이?한 시간 가량 남았음에도 근무 복장을 챙기고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치만 살필 뿐 아무런 안부나 위로의 말도 던질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거지? 그리고 복장은 왜 저래?'




내가 여러 생각에 잠겨 있을 쯤 선임하사가 앞에 나서 무언가를 하달했다.




"밥먹고 나서 오늘밤 8시부터 9시 반까지 야간 침투훈련 실시한다."




여기저기서 허탈감에 빠진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원래 내일 하기로 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내일 하루종일 비가 온단다. 비 맞으면서 훈련하고 싶은 놈은 내일 해도 돼.

그리고 취사반은 훈련 열외니까 그렇게들 알고 있어."




선임하사의 말에 더 이상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했다.

 




"밥먹고 나서 고양이 올가미 설치해라."




이 와중에도 김병장은 고양이 죽이기에 여념이 없는 것 같았다. 갑자기 김병장이 내 앞에 나타나 말을 걸었다.




"또..말입니까?"




순간 아차 싶었지만 김병장은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취사장 뒷편에서 나는 올가미를 만들 철사 줄을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잡힌 고양이들은 지금 어디 있는걸까? 김병장이 삶아 먹었나? 아니면 오늘 고깃국에 넣은 걸까?




여러가지 생각에 올가미 설치가 늦어질 쯤 서서히 땅거미가 취사장 주변을 휘감고 있었다.




나는 결국 김병장의 명령대로 다시 잔밥통 주변의 개구멍에 올가미를 설치했다.

 

취사장 일이 끝나고 나는 아무도 없는 내무반에 앉아 그 무당이라는 여자가 주고 간 부적을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드디어 그 여자가 말한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심장은 터질 듯 쿵쾅거렸지만, 나는 조용히 내무반을 빠져나와 내부반 뒷편 으쓱한 곳에서 조심스레 주머니 속에

감추어 두었던 물건을 꺼내 들었다.




[오늘 밤 해시에 노란색 부적을 태우고 그 재를 물에 타서 마시게.]




시간이 아홉시가 넘었음을 확인한 나는 주변을 조심스레 살피며 그 노란 부적에 불을 붙였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난 이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부적이 나와 부대원의 목숨을 구하고, 이 부대의 알 수 없는 비밀을 풀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닥에 깔아놓은 하얀 종이 위에 회색빛으로 노란색 부적의 재가 모아졌다.




나는 물이 담긴 컵에 그것을 털어넣고 한모금에 마셔버렸다.

 

'이제...뭐가 보인단 말이지?'




그 여자도 확신하지 못하는 결과를 나는 이미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붉은색 부적을 온 몸 이곳저곳에 쑤셔넣었다.

 

이 때 내무반과 붙어있는 행정반에서 요란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강아지야!! 실탄이 든 탄창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해!!"




누군가와 전화상으로 얘기하는 것으로 보아 근무자가 틀림없었다.




"뭐? 실탄?"

 

불현듯 낮에 그녀가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그 아이를 찾지 못하면 부대원들이 죽어 나갈 것이네.]




"신발...귀신이 실탄을 가져갈 일도 없고......"




그 순간 저녁 시간 때 넋을 잃은 모습으로 밥을 먹던 전상병이 떠올랐다.




"전대웅!!!"




나는 야간 침투 훈련이 실시되고 있는 취사장 뒷편의 야산을 향해 미친 듯이 뛰었다.




취사장 쯤 도달하자 올가미가 설치된 잔밥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누군가 낯선 이도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어둠 속에서 총을 메고 썩은 내가 진동하는 잔밥통 앞에서 허겁지겁 숟가락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누...누구...?"




그 순간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행여 귀신을 그 때부터 보더라도 놀라지 말게나. 아는 척도 하지 말 것이며, 절대로 말을 걸어서도 안되고,

눈을 맞추어서도 안된다네]




미친 듯이 숟가락질을 하던 그가 잠시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헉....신발...'




삼장이 터져나갈 듯 요동치고 있었다. 전기에 감전이 된 듯 오금이 저리로 발을 한걸음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눈을 맞추지 않기 위해 애써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리고 죽을 힘을 다해 후들거리는 다리를 들어 한걸음씩 그의 옆을 스쳐 지나기 시작했다.

곁눈질이었지만 그는 전쟁 중인 군인 같았다. 땀인지 피인지 모르는 검은 액체가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듯 보였다.

무서워서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수미터 이상을 더 걸었다. 그제서야 내 뒤편에서 바쁜 숟가락질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수십미터 앞에 구름 사이로 비친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에서 훈련 중인 부대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야간 침투 훈련이라 모두 자세를 낮추고 매우매우 느린 속도로 산정상을 향해 걸어나갔다.




풀섶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감췄다를 반복하며 부대원들은 천천히 앞으로 전진했다.




그런데 부대원들이 너무 많아 보였다.

 



나는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그들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제촉했다.

양쪽에 검은 산능선을 끼고 억새풀과 잡초로 우거진 평지에서 부대원들이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었다.

누가 누군지 잘 구분되지 않았지만 나는 어둠속에서 그들을 뒤따르며 숨죽인 목소리로 선임하사를 불렀다.

"선임하사님...."

나의 목소리가 작았는지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나는 누구라도 나를 돌아볼 수 있도록 조금 가까이 접근하여 그를 불렀다.

"선임하사님...?"

그러나 이내 그 부름을 멈춰야만 했다.

내 앞에서 산정상을 향해 소리없이 전진하는 그들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소리없이 전진하는 그들.......정말로 억새풀 스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어디서 그렇게 뒹굴다가 왔는지 하나같이 흙투성이가 된 옷을 입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두 다리가 덜덜 떨려왔다.

누군가 뒤돌아 보기를 바라며 선임하사를 불렀지만, 지금은 누군가 뒤돌아 볼까봐 가슴을 졸여야 했다.




"너...이창훈 아냐?"

순간 내 등 뒤에서 나를 알아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선임하사였다.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부릅 뜬 눈으로 선임하사를 쳐다보았다.

"너 이 자식...여기서 뭐하는거야?"

나는 다시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있던 자리에서는 억새풀 사이를 스치는 싸늘한 바람 소리만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등골을 찢는 듯한 공포가 밀려왔다.

나는?힘겹게 마른 침을 한 번 삼켰다.




"야..임마. 여기서 뭐하는거냐니까?"

"다...다들 어디 갔습니까?"

"이 자식이 귓구멍에 전봇대를 박았나...아까 훈련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다 들 어디에 있습니까?"

"매복 중이잖아."

그제서야 나는 선임하사 뒤 풀숲 사이에서 나를 쳐다보는 여러 개의 눈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저 앞에 가던 부대...."

나는 고개를 돌려 그들이 있던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무슨 부대?"

역시 선임하사는 그들의 존재를 모르는 것 같았다.

".....전대웅 상병 어딨습니까?"

"전대웅? 전대웅은 왜?"

그 순간 어둠에 묻힌 풀숲 사이에서 누군가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선임하사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무시한 채 풀숲을 헤치고 그를 향해?걸어갔다.

"야! 이창훈!! 저 새끼가 미쳤나?"

선임하사의 욕설과 분노는 이 상황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전상병의 앞에 서자마자 나는 그가 들고 있는 소총의 총부리와 개머리판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전상병은 내게 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나보다 더한 힘을 주어 움겨 쥐었다.

나 또한 이제 질세라 입을 굳게 다물고 그가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더욱 세게 총을 움켜 쥐었다.

나의 손과 팔은 힘에 겨워?떨림을 멈추지 않았지만, 그는 전혀 힘들어 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내게 얼굴을 가까이 하더니 물었다.

"너...뭐하는 새끼야?"

그의 부릅 뜬 두 눈과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정은 그가 제정신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나 또한 제정신이 아니다.

"너....너 누구야? 총 이리 내.."

나의 물음에 그는 살기가 묻어나오는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이 재빨리 그의 총에서 탄창을 분리하였다.

"퍽"

그와 동시에 그가 휘두른 소총의 개머리판이 내 가슴에 떨어졌다.

나는 수미터 뒤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으으..윽...."

탄창을 손에 쥔 채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나에게 선임하사가 달려왔다.




"이 강아지들!! 뭐하는거야!! 또 쌈질이야!!"

선임하사의 호통 소리에 짙은 어둠 속에서 매복해 있던 십수명의 부대원들이 풀숲 사이에서 일어나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창훈..너 이 새끼 훈련장 와서 뭐하는 짓이야?"

가슴을 찢는 듯한 고통이 몰려오고 있었지만, 나는 오른 손에 쥐고 있던 탄창을 확인해야만 했다.

예상대로 ?빈 탄창이 아닌 실탄이 들어있는 탄창이었다.




"뭐야 이거......"

내 오른손에 쥐어있는 탄창을 본 선임하사는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실탄 분실을 방지하기 위해 실탄을 끼워넣는 자리에 붙여놓은 봉인딱지가 보이지 않았다.




"헉....한 발이 장전되어 있어...."

그 말과 동시에 나는 용수철에서 튕겨 나가 듯 전상병을 향해 몸을 던졌다.

"이~~야아아아아!!"

"탕!!!"

눈이 멀 것 같은 섬광과 함께 고막을 파열시킬 듯한?천둥소리가 내 머리를 때렸다.

그리고 주변의 산능선을 타고 총소리의 메아리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희뿌연 영상에서 소란스런 주변의 목소리들이 자그맣게 들려왔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선임하사가 나를 향해 뭐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것 같았지만 그 소리는 고막을 진동시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초첨을 맞추려고 애를 썼지만, 내 눈앞의 영상은 서서히 어둠속에 묻히고 있었다.

 

"이창훈 일병? 정신이 드나?"

의사 복장을 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힘없는 눈으로 주변을 조심스레 살펴보니 이 곳이 의무대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나를 깨운 사람은 군의관이었다.

"천만 다행이네. 총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어. 1센치만 안으로 들어가 스쳤어도...자넨 죽은 목숨이었을거야."

몸을 일으키자 잠시 오른쪽 이마 부분이 욱신거렸다.

붕대 대신 커다란 반창고가 이마에 붙여져 있었다.

군의관은 병실에 있던 전화기를 이용해 누군가에게 내가 깨어났음을 알렸다.

그리고는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부대로 복귀해도 되네. 그런데 먼저 헌병대를 들렀다 가야겠네."

"헌...헌병대 말입니까? 헌병대를 제가 왜 가야 합니까?"

"총기 사고는 일단 헌병대 조사를 받게 되어 있어. 수사관이 사건 경위에 대한 조서를 꾸밀 수 있도록 진술을 해야 돼."

".........."

군의관은 잠시 내 머리맡에 있는 작은 봉투를 들어 보였다.

"이거 자네건가?"

"뭐..뭡니까?"

"부적 같아 보이던데...자네 옷에서 나왔네."

"네...."

"후후...부모님이 주신 건가 보지?"

"........"

군의관은 봉투를 나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하여튼 다시는 의무대에 올 일이 없길 바라네."

 




태어나서 처음 대면하는 군수사관이라 논리적인 진술을 하려는 생각보다 두려움이 먼저 밀려왔다.

"음...그러니까 전대웅 상병이 다음 근무자에게 넘겨줘야 할 실탄이 든 탄창을 숨기고 빈 탄창을 넘겨줬다?"

"네. 그렇습니다."

수사관은 연신 손가락 사이로 펜을 돌리며 치켜 든 눈으로 힐끔힐끔 나의 표정을 살폈다.

"아무도 전대웅 상병일거라고 생각을 못했다는데 넌 그 걸 어떻게 알았지?"

"그..그냥 수상했습니다."

"....."

"그냥 낮부터 넋이 나간 사람처럼 이상해 보였습니다."

"....뭐야? 그게 다야?"

나는 모든 걸 부정하고 싶어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냥 직감적으로...."

수사관은 펜을 입에 물고는 나를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전대웅은 군검찰로 이송되서 재판을 받을거야. 혹시 군검찰에서 소환명령이 떨어져서 증언을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돼. 전대웅도 지금 자신이 한 일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

조금이라도 제 3자가 믿을 만한 말을 해야지. 안 그래?"

"......"

"음...좋아. 일단 여기까지 하자."

수사관은 조서 작성을 마쳤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날 따라와. 전대웅이 너하고 면담을 원한다."

"절 말입니까?"

"너 한테 사과를 하고 싶단다."

 

유치장의 철창살을 가운데 두고 전상병과 나는 마주 앉았다.우리는 한참 동안을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기만 하였다.

"미안하다..."

전상병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까맣게 그을린 두꺼운 살더미 사이에, 있는지 없는지 조차 분간하기 힘든 눈시울에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나 또한 어렵게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까?"

"그 걸 왜 나한테 물어? 다친 건 너잖아..."

나는 이마에 붙여진 커다란 반창고를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레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에 전상병도 눈물어린 표정의 미소로 답하였다.

어젯밤에 보았던 그 살기어린 눈빛은 온데간데 없고 , 지금 내 앞에는 장난끼 가득한 어린 아이가 있었다.

"너...사회에서 만났으면 그냥 좋은 친구였을텐데....어쩌다가 군대에서 고참 쫄따구로 만나서 이 고생이냐.."

"......."

나는 잠시 말없이 머리를 긁적였다.

수미터 떨어져 우리를 지켜보던 수사관이 자신의 시계를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난 밖에 나가서 담배 한대 피고 올테니까, 얘기 잘 마무리 해라."

수사관이 자리를 비운 걸 확인한 전상병은 잠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입가의 미소를 지우더니 조심스레?입을 열었다.




"내 얘기 잘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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