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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년은 이랬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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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8 16:4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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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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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년은 이랬으면 좋겠다...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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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선 [가입일자 : 2009-01-25]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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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년이 되면
비슷한 할망 할배들과 어울려 게이트볼을 치는 일 따윈 하지 않겠다.
싸나이가 쫀심이 있을진대 장난감 같은 스틱으로 비리비리한 공이나 툭툭 건드리는
놀이를 하고 있어서야.. 어찌 할매들과 어울려 노닥거리며 간지러운 공치기를 한단 말인가.
차라리 땅을 파겠다.
동네 노인정에는 절대 발걸음을 하지 않겠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놀벗, 말벗을 찾아 노인정을 기웃거리며, 이 풍진 세상의 끝자락에 남아있는
오욕의 한 모퉁이를 서성대느니
산 정상에 올라가 고독하게 굶어죽는 한 마리의 표범으로 남고 싶다.
집에 홀로 남겨져 손주를 기다리는 일 따윈 하지 않겠다.
손주들의 재롱에 살가워하며 고사리손에 용돈을 쥐어준들 내 인생에 무슨 변화나
별다름이 있겠는가. 그저 창밖을 내다보며 한 달에 한 두번 오기도 힘든 녀석들을 오매불망하는 건
슬픈 일이다.
나를 좋아해주던 아니던, 그건 녀석들의 몫이다.
하루종일 들어앉아 삼시세끼를 마눌에게 종용하는 일 따윈 하지 않겠다.
평생 밥상을 받아왔으면 부려먹을 만큼 부려먹었으니 놀이삼아 운동삼아 음식을 배워볼 일이다.
벌어먹고 사느라 몰랐던 음식 만드는 재미나 마눌 위하는 즐거움을 느끼며
또다른 인생을 사는 것도 즐겁지 않겠는가.
나이들어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먹는 건 못할 짓이다. 두 끼면 족할 것을.
뻑하면 친구들을 불러내 만취하는 일 따윈 하지 않겠다.
오랜 친구들을 너무 가까이 두고 의지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긴 시간 쌓아온 우정이야
소중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들이 내 곁에 있어줄 건 아니지 않는가. 먼저 그들을 떠나보내면
그 상실감을 어떻게 감당한다는 말인가.
그저 언제든 츄리닝 바람에 슬리퍼 끌고 동네 슈퍼 앞 파라솔 아래서 가볍게 막걸리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동네친구를 많이 확보해 둘 일이다.
등산복 바지에 등산화 신고 시내를 돌아다니는 일 따윈 하지 않겠다.
나이들수록 옷차림은 젊어야 한다. 신상 청바지에 상큼한 운동화면 마음도 젊어질 것이다.
등산복 차림에 쏘주 한 잔 걸치면 괜시리 지하철 안에서 말도 많아지고
끼리끼리 어울려 시끄럽게 떠들게 될 것이다.
그저 그날의 바람결처럼, 햇살처럼... 차려입을 일이다.
아지매 급 할망을 두엇 사귀고 싶다.
고상하고 지적인 아지매 급 할망은 전시회나 음악회에, 스타일 좋은 아지매 급 할망은
분위기 있는 술자리에 함께하면 좋을 것이다.
항상 보는 마눌이랑 여기저기 붙어다니는 것은 그리 좋을게 못된다. 같이 있는 시간 만큼
떨어져 있는 시간도 필요한 법.
그러나 그런 만남은 순수해야 한다. 이상한 짓 하면 조강지처에 천벌 받는다.
한 때 빠져 지내던 바이크를 다시 만나고 싶다.
어디라도 좋다.
태양이 작렬하는 서해안의 섬길... 서리가 내려앉은 늦가을 이른 아침의 영동 국도..
그 텅빈 아스팔트 위를 스치며
지나온 인생과 지난한 삶을 반추하고 얽히고 설킨 인연과 악연의 실타래를 풀어 감으며
폐부 깊숙한 곳으로 생명의 바람과 우주의 먼지들을 소통하고 싶다.
그리하여 생명이 땅으로 돌아가는 의미를 이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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