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게 지금부터 약 40 여 년 전 일이다.
70 년 대 말 일정한 목표도 없이 방황하고, 덥기도 하고, 배도 고프던 시절...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밥만 먹여주면 무슨 일이든 할수있을것 같았다.
모 식당에 그릇닦이일을 하게됐다.
상당히 규모가 큰 고깃집이라 오전 9 시 부터 밤 11 시까지 서서 하는 일은 지치고 고되었다.
주로 하는 일이 오전엔 점심과 저녁준비를 위해 야채를 다듬고,
점심이후엔 주방장이 요리를 하고난후 뒷처리와 산더미처럼 밀려들어오는 그릇을 닦는것이다.
쉬는 날은 한달에 두번 정기휴일이다.
지치고 힘들었지만 어차피 오래 할일도 아니고, 당장 배고픔을 면하고 게다가 돈까지 주니 이거면 어디냐!
아무 생각없이 담담하게 일을 할수가 있었다.
근데 30 중반으로 보이는 주방장의 성격이 드럽다.
딱히 나를 갈구는건 아닌데,
시다로 일하는 나와 나이가 비슷해보이던 청년에게 하는걸보면, 무식이 아주 몸부림을 친다.
시다가 하는일이 뭔가 지마음에 안들면,
버럭 고함을 치기도 하고, 심지어 양파를 썰던 큰칼로 스뎅탁자를 쾅쾅 내리치며 공포분위를 조성한다.
욕설은 뽀나스다.
근데 이 시다의 성품이 참으로 부처님 가운데토막이다.
너는 짖어라 나는 내갈길 가련다.. 단한번도 토를 다는걸 본적이 없다.
짐작이긴하지만 그 청년은 아마도 지금쯤 꽤나 명망높은 셰프가 되어 있을것만 같다.
근데 아이러니한건, 이 성격 드러운 주방장에게 전혀 어울리지않는 꽃다운 18 세 여동생이 있다는거다.
유추해보자면, 가난한 시골생활을 벗어나기위해 간신히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기위해 서울로 상경하여 오빠와 같이 일하는거로 보인다.
여동생이 하는 일은 주로 오전에 나와같이 야채 다듬고 쌀을 앉혀 밥을 하고 일이 끝나면 청소를 한다.
오늘같이 무덥고 습한 어느 여름날 오전..
한무더기의 파를 쌓아놓고 이 꽃다운 18 세 츠자와 마주앉아 파를 까고 있었다.
더운 날씨라, 무릎까지 내려오는 얇은 하늘색 주름치마를 입고,
파를 까고 앉아있는 츠자의 뽀얀 사타구니 속살이 눈부시다.
무심코 한 행동인지 내게 보여주려고 그런 포즈를 취한건지는 지금도 미스테리다.
어쨋거나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 뽀얀 속살을 타고 안으로 들어가 더 깊은 곳을 고정하게된다.
눈이 나린듯 눈부신 흰 천쪼가리가 아담하고 볼록한 언덕을 가리고 있다.
심장이 바쁘게 뛴다.
안보는듯하면서 시선을 돌려보지만 은근슬쩍 자꾸만 시선이 가는건 어쩔수가 없다.
뭐.. 이런 나를 즈질이라고 흉봐도 할말은 없지만,
본시 내가 그곳에서 나왔으니 회기본능에 의해 이끌리는것일거다.
그뿐인가?
깐파를 담은 소쿠리를 들려고 구부리는 순간...
하얀 면티가 벌어지며 언뜻 보이는 출렁이는 두 개의 눈부신 봉우리!
찰라의 순간이지만 거대한 쓰나미가 밀물처럼 몰려왔다.
이 역시 나를 즈질이라고 흉봐도 할말은 없다.
어릴적 내가 그것을 먹고 자랐으니 마치 고향을 찾아가는 연어떼처럼 본능에 충실한 것일 뿐이다.
그 곳을 그만두려고 마음먹은 어느 토요일밤..
다음날이 쉬는 날이라, 일을 마치고 샤워를 한후 개운한 마음으로 침소로 향했다.
침소라고 해봤자 객실바닥을 대충 걸레질하고 이불을 깔고 드러눕는거다.
예나 지금이나 음악듣는걸 좋아하여,
쌔빠지게 고생해 벌은 돈으로, 당시 유행하던 길쭉하게 드러누운 대한전선 모노카셋트를 하나 샀었다.
박인희 노래 "어느 여름날"을 들으며 일기를 쓰던중.. 뭔가 써늘한 기운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 창문을 보는데,
헉!.. 열려진 창문 사이로 그 츠자가 빠꼼히 쳐다보고 있는게 아닌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으며,
"모해요?"
..................
모해요? 참 아리까리한 말이다.
야심한 밤에 잠을 안자고, 나를 찾아와 이런 말을 한다는건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말이다.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앞일을 예측할수 없는 처지에다 며칠후면 떠날사람이니,
인연의 고리를 복잡하게 만든다는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내일이 쉬는 날이니, 같이 영화나 보러가자고 말을 꺼내고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것도 아니다.
그러나 순진한 아가씨 가슴에 상처로 남을수 있는 짓은 하고싶지 않았고,
더구나 책임지지 못할 행동은 하지 않는거라 배웠다.
거기다 더 큰 이유는,
큰칼 내리치던 오빠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뒷감당할 자신이 없다는것도 솔직한 심정이었다.
"모하긴.. 이제 막 자려고~ 어린 아가씨가 밤늦게 이렇게 남자방 함부로 엿보는거 아니다.. 얼렁 가서 자라~ "
표정에서 실망한 빛이 역력하다.
나름 큰맘먹고 용기내어 찾아왔을텐데...
수십년이 지난 오늘.. 그때처럼 날씨가 후덥지근하고 창밖엔 비까지 내린다
그 츠자는 지금쯤 잘살고 있을까?
비가 오니 마음이 멜랑꼬리해지는게 쓸데없는 상념에 젖어들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