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잠시 써두었던 글인데
올려봅니다~~~
1.
레코드 음악의 즐거움
LP를 듣고 있다는 것은 음악을 듣는 고급스러운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013년에 한국에 개봉된 좀비 영화 “WARM BLOOD”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을 느끼는 여자사람에게 낡은 턴테이블에 LP를 올려놓고 홀리스의 “The air that I breathe”를 들려준다. 좀비와 고급음악 취향이라니 말도 안되는 조합으로 생각되지만 정말 멋진 장면이었다. 홀리스의 CD를 구해서 음악을 들었지만 영화에서 들었던 감동보다는 약했다. CD의 사운드는 메마른 느낌이다. 음악의 무대도 좁게 느껴질 뿐 아니라 감동적인 음악이 가지고 있는 터질 것 같은 에너지가 부족하다. 갈증이 느껴진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다가 갈증이 느껴질 때면 좀 더 좋은 사운드로 듣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올드팝이라면 틀림없이 LP로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참이나 회현동과 용산의 중고음반 매장을 찾아 헤맨 끝에 드디어 홀리스의 LP를 구했다. 독일의 Polygram에서 발매된 레코드를 소중하게 집으로 가져가서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앰프의 전원을 켜고 레코드 바늘을 내려놓는다. 내게는 꽤 익숙해진 무음 구간의 먼지가 작은 소리로 탁탁 거리더니 음악이 시작된다. 어렵게 레코드판을 구해서 들은 홀리스의 노래는 정말 기대 이상이다. 영화를 볼 때 느꼈던 감동 이상의 멋진 음악에 나는 탄성을 내며 빠져들어서는 레코드 한 장을 다 듣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부럽지 않다.
단 돈 만원을 주고 산 홀리스의 레코드에서 들었던 감동은 정말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마치 콘서트홀의 가장 좋은 자리에 초대받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온 몸으로 전율이 느껴진다. 요즘말로 정말 고급진(?)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 맛에 레코드를 듣는다. 이 맛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은 CD가 훨씬 좋은데 잡음소리 틱틱나는 레코드를 왜 듣느냐고 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턴테이블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자신은 LP 레코드로 진지하게 음악을 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모르면 가만히 있는 것이 더 좋다. 레코드로 음악을 듣는 것을 CD와 비교하는 사람은 잡음에 대한 노이로제가 있거나, 청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틀림없이 바보라고 생각한다.
“이 좋은걸 왜 몰라? 하긴 들어봐야 알지!!!”
2.
좋은 사운드의 즐거움
보통 사람들은 좋은 사운드의 조건에 잡음이 없어야 한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은 CD와 같은 디지털 음원의 상술에 세뇌된 것일 수 있다. 클래식이건 팝이나 가요와 같은 대중음악이건 실제의 공연에 가보면 정말 엄청난 잡음으로 가득하다. 청중들의 웅성거림, 의자 삐걱거리는 소리를 비롯해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잡음들이 있지만 거기에 가서 잡음을 듣고 오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고 무대 위의 열기와 열정을 느끼고 온다. 음반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이러한 잡음들이 녹음에 잡히지 않도록 하기에 오디오로 음악을 들을 때는 배경잡음이 대부분 사라지지만 설령 약간의 잡음이 있다고 해도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에 손상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레코드로 음악을 들으며 그 사운드를 CD와 비교해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구체적인 비교를 하지 않고 음악을 들어보아도 바로 체감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개방감”이다. CD에서 흘러나오는 “깨끗한 소리”는 LP에서 흘러나오는 “탁 트인 소리”와 쉽게 비교된다. CD의 “깨끗한 소리”는 아주 잘 정돈된 현대적인 아파트의 거실과 같은 느낌이다. 왠지 휴지라도 한 장 떨어져 있으면 치우고 싶은 분위기에 꼭 있어야 할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치워버린 듯 하다. LP의 “탁트인 소리”는 넓은 정원과 멀리 보이는 경치가 함께하며 한 쪽 창으로는 햇살이 비치고 그 창으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넉넉한 주택의 거실이다. 언뜻 보면 정리를 덜 해놓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꼭 필요한 물건들이 있어야 할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있어 풍성함과 여유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