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료 2배 폭등? 기금 유지 시점 전제가 달라…민간 연금펀드보다 수익률 2배
기금 바닥나면 꽝? 기금 소진은 숙명…유럽처럼 납부방식 변경 등 대안 찾아야
여야가 내놓은 국민연금 강화 방안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여야의 합의문에 담긴 국민연금 강화의 방향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현재 ‘용돈연금’으로 불리는 국민연금의 지급 수준을 좀더 끌어올리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용돈’마저 제대로 못 받는 저소득층과 사회적 약자한테 국가의 지원을 좀더 확대하라는 겁니다. 물론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국민연금 강화를 실현하려면 우리는 앞으로 만만찮은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노인빈곤율(49%) 1위인 상황에서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몇 가지 오해와 직시해야 할 현실을 짚어보겠습니다.
①‘2060년 연금고갈 공포’는 타당한가
고갈돼도 연금 받지만…부과식·적립식 선택이 문제죠
국민연금에 관한 기사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뜰 때마다 종종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습니다. 5일 오후 3시 포털사이트 다음을 열어보니 ‘임시·일용직·주부도 국민연금 흡수해야’ 제목의 한 일간지 기사가 올라왔네요. 클릭해서 댓글창을 열어봤습니다. 여지없네요. ‘추천순’으로 정렬된 독자 의견 가운데 ‘엄지손가락’(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댓글은 ‘국민연금 폐지가 정답’이라는 글입니다. 그다음은 ‘안 내고 안 받으면 안 되나? 가입 여부의 자유도 없나?’이고요, 이어 ‘난 국민연금 안 내고 싶다’입니다.
기사의 내용이나 방향과 관계없이 국민연금을 다루는 기사에는 대개 이런 댓글이 따라붙습니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 또는 불안이 높다는 방증입니다. 그 대표적 이유는 ‘국민연금 기금 고갈론’일 겁니다.
국민연금에 가입한 노동자와 자영업자는 지금도 월 소득의 9%를 연금 보험료로 냅니다. 만만찮게 부담이 되는 보험료인데, 사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평균 국민연금 보험료율(19.6%)보다는 한참 낮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이 보험료율을 높이지 않으면 현재 쌓아둔 국민연금 기금(적립금)이 2060년이면 바닥을 드러낸다고 봅니다. 네, 일부 언론이 기회가 닿을 때마다 소개하는 ‘국민연금 기금 고갈의 공포’가 현실화하는 것이죠.
피 같은 연금 보험료를 길게는 40년간 꼬박꼬박 내야 하는 국민한테는 말 그대로 공포일 수 있습니다. ‘보험료를 내봤자 그때 가서 못 받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지요.
지나친 두려움과 공포는 합리적인 논의를 방해하기 마련입니다. 당장 이번에 여야가 내놓은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올리기로 한다’는 합의를 두고 따져보겠습니다. 국민연금 강화 합의안을 이끈 새정치민주연합 쪽에서는 정부가 계산한 자료를 근거로 현행 보험료율(9%)을 1.01%포인트만 올리면 된다고 봅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2060년을 적립금 소진 시점으로 놓고 계산한 결과입니다.
정부 생각은 다릅니다. 보건복지부는 5일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점을 연장해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려면 보험료는 두배(16.69%)가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9%의 보험료율이 약 16.7%로 오른다는 것인데, 정부 주장도 크게 틀린 건 아닙니다. 대신 정부 주장대로 국민연금 적립금을 2100년까지 유지하려면 소득대체율을 지금(40%)과 같게 해도 보험료는 ‘두배 가까이’(14.11%) 오르기 마련입니다.
공적연금의 노후소득 보장 강화에 초점을 맞춘 야당이 2060년 기금 소진을 ‘현실’로 받아들였다면, 국민연금의 재정건전성 확보를 강조하는 정부는 2060년 기금 소진을 피해야 할 ‘미래’로 보는 시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옳은지 따지는 건 쉽지 않습니다. 각자 장단점이 너무 뚜렷해 결국 선택의 문제이니까요. 지금처럼 국민연금 기금을 차곡차곡 쌓은 뒤 이를 연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을 ‘적립 방식’, 그때그때 걷어 가입자의 연금으로 지급하는 쪽을 ‘부과 방식’이라고 합니다. 국민건강보험이 부과 방식으로 꾸려지는 대표적인 사회보험제도입니다. 독일 등 많은 유럽의 복지국가는 이런 방식을 택하면서도 노인한테 넉넉히 연금을 드리고 있고요.
이처럼 ‘부과 방식’도 선택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국민연금 기금이 바닥을 드러낸다고 해서 연금을 못 받는 불상사가 생길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이지요. ‘국민연금 기금 고갈’에 대한 공포는 과도하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건 정부, 특히 복지부가 적립금 소진을 최대한 막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국민연금의 재정건전성 확보입니다. 경기 악화, 소득 부진 등으로 필요한 보험료를 걷지 못할 상황에 대비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막대하게 쌓아 놓은 적립금으로 ‘경기를 부양’할 수 있어서입니다. 국민연금은 지금도 국내외 주식·채권시장에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이 돈이 사라진다면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연금 기금을 필요할 때 쉽게 빼내기도 어렵게 됐다는 점에서 이 또한 문제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② 소득대체율 올리면 미래세대 부담이 늘어나나?
느는 것 맞습니다…문제는 합리적인 수준이냐는 거죠
소득대체율을 10%포인트 올리자는 여야 합의가 나오자 보건복지부는 ‘보험료 두배 인상’에 이어 4일 ‘미래세대의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는 내용의 자료를 내놨습니다.
사실관계를 먼저 짚겠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국민연금 재원조달 방식은 적립식과 부과식으로 나뉩니다. 국민연금 기금의 예상 소진 시점인 2060년을 기점으로, 현재 부분 적립식에서 부과식으로 바꾸면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은 달라집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 홍길동은 월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냅니다. 홍길동의 월 소득은 100만원인데요. 9만원을 내는 겁니다. 대신 40년간 꼬박 연금을 부었을 때, 홍길동은 65살 이후 매달 40만원(소득대체율 40%)을 연금으로 받습니다. 그런데 2060년 이후 국민연금 재원을 부과식으로 조달한다면, 홍길동처럼 월 100만원을 버는 가입자의 월 보험료는 21만4000원(21.4%)으로 오릅니다. 9%이던 홍길동의 보험료율이 재원 조달 방식을 바꾸자 21%를 넘어버리네요.
여야 합의대로 소득대체율을 10%포인트 올리고 역시 2060년 이후 국민연금 재원을 부과 방식으로 바꾼다는 조건으로 하면, 홍길동은 지금보다 소폭(1.01%포인트) 오른 월 10만100원의 보험료를 내면 됩니다. 다만 2060년 이후에는 25만3000원(25.3%)의 보험료를 내게 됩니다.
눈 밝은 독자라면 금방 눈치챘을 겁니다. 소득대체율 10%포인트를 올려 생기는 보험료의 인상폭보다, 국민연금 재원조달 방식을 부과식으로 바꿔 빚어지는 보험료 인상폭이 훨씬 크다는 사실 말입니다. 복지부의 ‘보험료 두배 인상’은 대부분 재원조달 방식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죠.
복지부가 ‘미래세대의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며 그 근거로 내놓은 보험료율 두배 인상(25.3%) 수치도 큰 의미를 둘 수 없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보험료는 어차피 소득을 기준으로 부과할 수밖에 없는데 30~40년 이후 경제상황이나 임금을 정확하게 계산하기가 쉽지 않은 탓입니다. 따라서 연금 전문가들은 후세대의 부담을 측정하는 기준을 국내총생산 대비 공적연금 총지출액으로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유럽도 이 지표를 씁니다. 이 경우 2050년 기준으로 한국은 9%로 미국(4.8%)보다는 높지만 일본(13.7%), 독일(13%)보다 낮습니다. 미래세대가 독박을 쓴다는 표현이 과장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입니다. 문제는 부양해야 할 노인인구의 비중이 이들 나라보다 높다는 겁니다. 2050년 65살 인구 비중은 한국, 미국, 일본, 독일이 각각 38%, 20%, 39%, 32% 수준입니다. 한국은 부양인구는 많은데 공적연금 지출은 적은 셈입니다.
많은 연금 전문가가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특성상, 비록 적립식으로 운용한다 해도 일정한 시점이 되면 기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국민연금 기금은 1988년 제도 도입 이전에도 어차피 자연스레 소진될 것이고 일정 시점에는 독일 등 서구처럼 부과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일정한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현세대의 연금을 미래세대가 부담한다’는 사회보험 원리에 대한 합의였던 것이지요. 이를 ‘세대간 재분배’라고 합니다.
현세대의 연금을 미래세대가 책임지는 ‘세대간 재분배’의 개념을 생각한다면, ‘미래세대의 부담’ 자체를 너무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문제는 여느 세상사와 마찬가지로 어디까지가 합리적인 수준이냐 하는 점이겠지요.
최성진 기자
③ 보험료 인상 반대 여론 왜 강한가?
당장 부담 늘겠지만 사적 연금보다 2~4배 이득이죠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자 하면 다들 싫어합니다. 가능하다면 지금까지 낸 보험료를 돌려받아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하거나 하다못해 빠듯한 가계에 보태고 싶다는 국민도 많을 겁니다. 국민연금은 경제활동을 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강제로’ 가입하는 사회보험제도입니다. 매달 내는 연금 보험료를 일종의 ‘세금’으로 여기는 분도 많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여야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 합의에 ‘국민적 동의’를 강조하며 제동을 걸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한데, 그 부담을 떠맡고 싶지 않다’는 걸 겁니다.
정서적 반감과 달리 국민연금 가입은 무조건 ‘이득’이라고 합니다. 가입자가 낸 총보험료와 노후에 돌려받는 연금액을 비교한 값을 ‘수익비’라고 하는데요. 국민연금의 수익비는 현재 시판중인 어떤 민간 연금보험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그런데도 보험료를 더 내겠다는 가입자는 상대적으로 적지요.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국민적 불신의 강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1988년 도입돼 채 30년이 되지 않았는데 계속해 기금 고갈 이야기가 나오고, 1998년, 2007년 두 차례의 연금 개혁으로 소득대체율을 애초 70%에서 40%로 낮췄으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선택적으로 가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언제 어떻게 소득대체율이 바뀔지 모르고, 심지어 못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의 다른 표현이겠죠. 실제 2013년 국민연금공단이 대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했을 때도 ‘수령 불확실’(22.2%), ‘낸 만큼 받을 수 있는지 우려된다’(19.4%) 등 전체 응답자 10명 가운데 7명이 국민연금 수급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보험료율 인상을 현실화하려면 기업의 반발도 넘어야 할 산입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국민연금 보험료 가운데 직장가입자가 내는 보험료 비중은 90.8%(2013년 기준)입니다. 이 가운데 사용자인 기업이 절반을 내기 때문에 국민연금 전체 보험료의 45.4%(15조6716억원)를 기업이 부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험료율을 얼마로 올리든 연금 추가 지출액의 45.4%는 기업 통장에서 나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경제계는 이 돈을 청년실업 해소나 투자 등에 쓰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미래에 대한 투자와 현재 가치를 비교하는 건 기업의 생리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렇듯 소득대체율 상향 조정은 많든 적든 보험료 인상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이는 가입자의 부담을 늘리기 때문에 만만찮은 저항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분명 존재합니다. 연금 개혁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로 비유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국민들 입장에선 보험료 인상이라는 당장의 ‘고통’이 미래에 넉넉한 보상으로 되돌아온다는 점에서 결코 불리하지 않습니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위원장의 말입니다. “국민연금은 평균적인 사적 연금과 비교했을 때 약 2배 정도 더 받는다. 또 직장가입자들은 보험료의 절반만 내니까 본인 부담 대비로 보면 4배 이상의 혜택이 있다. 법으로 정해진 공적 연금은 기금이 소진되더라도 국가가 지급을 보장해준다고 가정하는 게 합리적이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