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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절 증후군~저는 문제없다~ 입니다.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5-02-17 17:10:59
추천수 33
조회수   1,397

제목

설명절 증후군~저는 문제없다~ 입니다.

글쓴이

변선희 [가입일자 : 2005-04-21]
내용

설명절이 다가옵니다. 오늘부터 내일까지 온갖 음식 장만하고 차례를 지내야 합니다. 맏며느리냐구요? 전 막내며느리입니다. 그런데도 어찌어찌 제가 제사를 모시고 차례를 모신 지 어언 이십여년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집에 많은 친척들이 오고, 그럭저럭 큰 집 같은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음식 만드는 일, 힘든 것도 있지만 사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음식 냄새나는 것과 사람들 웅성대는 것이 명절 같아 전 좋습니다.




아버지께서 사업에 실패하시고 고향에 못 내려가시던 시절, 온 동네가 지짐냄새로 진동하는데, 단칸방에서 아버지 어머니와 우울하게 보내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떠들썩한 고향마을 같은 그런 명절 분위기가 더 좋은 건 당연한 일도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 같은 것도 있습니다.




2년여 전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에 아버지 홀로 되셨습니다.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두 분만 사셨기 때문에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독거노인이 되셨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아버지를 모셔 와야 하나, 언니가 모시나 오빠들까지 여러 공론이 있었지만, 워낙 엄하시고 음식도 까다로우셔서 모시기 힘들다는 것이 서로의 핑계였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장손으로 늘 고임만 받던 분이라 유별납니다. 반찬도 웬 만 한 건 안 드시고, 술을 안 드시므로 단 걸 좋아하시고, 생활비가 하루만 늦어도 오빠들에게 호령하며 전화하시고, 전자제품이 망가지면 우리들에게 전화하셔서 막 야단치십니다. 우리들끼리는 아버지 흉도 보니까 우리가 뭐 as 센터인 줄 아셔. 직접 전화하시면 될 걸.“ 하면서도 겉으로는 설설 기는 척 하며 새 텔레비전도 사드리고, 가스렌지도 바꿔드리고 그랬습니다.




그래도 가까이 살고 있는 언니가 매일 같이 들러 찌개를 끓여드리고, 저는 일주일에 한 번 빨래며 청소를 맡고, 오빠들도 일주일에 한 번 들려 청소도 하고, 필요한 것도 서로 사다놓으므로 그럭저럭 별 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큰 일이 났습니다. 언니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언니는 자신의 건강보다는 아버지 걱정이 더 큽니다.

 

제가 걱정 말라고 하고 언니가 하던 수발을 하게 되었는데, 솔직히 형만한 아우가 없습니다. 매일은 고사하고 세 번 가는 것도 힘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한꺼번에 찌개를 한 3일분 쯤 해 놓고 떠서 잡수시도록 하고, 냉장고에는 따로 찌개거리를 앉혀놓고 물만 붓고 끓이면 되도록 놓아둔다고 누구든 집에 들려 찌개가 없으면 물 붓고 끓이라고, 오빠들이나 조카들에게 단체 메시지를 하였더니, 다 같이 그렇게 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물려받을 유산이 있는 아버지도 아니시고, 평생 우리들 키운 것은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이셨지만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늘 호통치시기 잘하는 아버지 앞에서, 제각기 어디 가서도 빠지지 않는 말발의 소유자이건만 우리들 아버지에게 말대꾸 한 번을 못 합니다. 오빠들은 정말 아버지가 어려워 집에 가면 구석에 앉아 있거나 무릎 꿇고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전기밥솥이 고장 났다면서 어서 사가지고 오라고 전화를 하셨습니다. 백화점에 사러 가셨는데, 맨 음식만 팔지 전기제품 파는 곳은 없더라나요. 아마도 할인마트 지하만 다니다가 오신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거는 원래 전자제품 매장 가셔야 한다고 말씀드려려다가 난 그런 거 모른다.’ 호통치실 아버지가 두려워 제가 해결하겠다며 갔는데, 솔직히 고쳐드리러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니 겉은 새 것이었는데도, 안 내 솥은 칠이 다 벗겨지고, 우리가 자주 보았는데도 밥솥 안 상태는 엉겨 붙은 게 많아 고쳐드리기가 가슴아파 남편 카드로 내 맘대로 꽤 좋은 밥솥을 샀습니다. 아버지는 찰기 있는 압력솥 밥을 안 드십니다. 그래서 일반 전기밥솥을 사야하는데, 이 일반 밥솥은 제일 좋은 것도 십만원을 안 합니다.



그리고 기분 좋게 남편에게 티리릭 어디서 누가 얼마를 썼다.’는 카드문자가 가던 말던 새 양말도 한 세트사고, 주방용품이며 욕실용품 등 제가 쓰는 상표들로 아버지댁에 소용되 물건도 한 아름 샀습니다. 조개젓도 샀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양념은 거의 우리들이 해가는 터라 파 마늘 한 동강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려는데, 마침 동네 언니 아는 분을 만나 이야기를 하니, 그 분이 청양고추며 마늘, 파 깨소금에 참기름까지 가서 무치기만 하면 되도록 다 주셨습니다. 그 분들도 아버지 혼자 지내시는 걸 아시거든요. 세상에는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조개젓이 짭잘한 게 참 먹을 만 하더라.’ 칭찬도 하셨습니다.




어머니 안 계신 자리가 정말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마운 남편은 우리 만약 시골에 집 지으면 친정아버지, 홀로 된 언니까지 다 같이 살자.‘고 진심어린 고마운 마음을 전해 줍니다. 그래서입니다. 내가 우리 시아버님 제사 열심히 모시고, 또 시댁 일에 친정일 못지않게 참여하는 것 말입니다. 부부간에도 정은 오고가는 것 같습니다.



친애하는 와싸다 이장님과 회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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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 2015-02-17 17:22:43
답글

일착으로 선추천 (추)후감상문

선희님 명절 잘 보내시고 노고가 많으십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변선희 2015-02-17 17:26:10

    이민재님 감사합니다. 마음 같아선 민재님 댁 찾아가 세배도 하고 싶습니다만~ㅋㅋ 세뱃돈 주실 거 같아서요~ 어느 덧 세배할 곳보다, 받을 곳이 더 많은 나이가 되어감을 실감합니다. 민재님 모쪼록 다가올 새해 가내 두루 평안하시고.. 널리 널리.. 복 많이 다 댁에 들어오길 기원합니다~

염일진 2015-02-17 17:24:32
답글

변선희님은 신사임당같으십니다.
명절 즐겁게 지내시길 .~

변선희 2015-02-17 17:27:45

    염일진님.. 사임당께서 울고 가시겠습니다. 언제나 따뜻한 마음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댁 모든 일에 행운이 함께하는 나날되세요~ 감사합니다~

김윤성 2015-02-17 17:35:43
답글

어쩜 우리 마눌님 같으세요?

변선희 2015-02-17 18:07:46

    어찌 그댁 마나님을.. 제가.. 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상수 2015-02-17 18:01:52
답글

변선희님 같은 마음 따듯한 와이프를 빨리 만나야 할텐데요.

이젠 포기하셨는지 "넌 언제 장가가냐" 라는 말씀도 없으시네요.

변선희 2015-02-17 18:07:16

    어~ 여 조카들 많아요~ 어머니들께서 워낙 솜씨 탁월하시고, 요조숙녀들이신데.. 32살 대학병원 간호사 28살 도청사 유치원샘...미모 좋습니다~날씬~

이용수 2015-02-17 18:31:31
답글

오랫만에
사람냄새나는 글이어서
맛있게
읽고 감돠,,,,,,,,,,

변선희 2015-02-17 22:12:39

    이용수님 감사합니다. 가까우시면 떡국드시러 오십시요~음식냄새도 참 좋지만, 사람냄새도 참 좋지만, 사실 음식맛만 하겠습니까...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김지태 2015-02-17 18:32:26
답글

효녀시네요

변선희 2015-02-17 22:15:14

    고맙습니다. 이제 팔순 넘으신 부모계신분들, 마음 다 똑같을 겁니다~ 김지태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편윤호 2015-02-17 18:51:37
답글

언제나 훈훈한 이야기.. 잔잔한 감동입니다.

변선희 2015-02-17 22:16:16

    우리 와싸다 회원분들께 새해 인사를 하려다가 서두가 그만 길어졌습니다. 편윤호님 설맞이 잘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박병주 2015-02-17 19:13:44
답글

가정교육이 지대로 됐군요.
마치 우리 아버님을 뵙는것 같어유.
ㅠ.ㅠ

변선희 2015-02-17 22:17:42

    박병주님 그쵸? 우리 시대 아버님들 다 그러신 것 같아요. 젊은 시절 전화오면 무조건 ' 넌 누구냐? 아버지가 누구냐?' 친구들에게 무서운 아버지로 호가 나셨었랬습니다.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숭우 2015-02-17 19:20:08
답글

착하고 어지신 선희님.
복이 듬뿍 넘치는 명절 되세요. ^^

변선희 2015-02-17 22:18:18

    고마우신 이승우님 올 한 해 늘 평안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김보연 2015-02-17 19:34:09
답글

화면상으로... 쓰신 글이 참 읽기 어렵게 되어 있는데,
읽기 시작하니 끝까지 읽게 되네요. ^^
행복한 명절 잘 보내시고,
새해, 아버님과 가족분들 모두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변선희 2015-02-17 22:19:15

    김보연님 덕분에 연을 나눠 글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정말 늘 행복하신 일만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최정순 2015-02-17 22:14:22
답글

울컥 울뻔햇음다 감동그자체네요 아버님건강히오래사셨으며좋겠읍니다
선희님화이팅입니다~^^

변선희 2015-02-17 22:20:37

    최정순님 감사합니다. 별 일이 아닌, 일인데 저도 어머니 안 계신후면 울컥울컥 할 때 있어요. 최정순님껫도 부모님 생각을 하신 것이겠지요. 정순님의 부모님께서도 늘 건강하시라고 축원합니다.

이민재 2015-02-17 23:24:52
답글

명절 전날 제가 할 일은 '생률 치기', 차례주 준비, 먹을 갈아 지방 쓰기, 차례상 음식 장만에 심부름을 위한 '비상대기조' 지요. 그리고 전부침에 막걸리 한 잔 하는 호사도 누리고요.ㅎ

오늘이 지나면 위의 "(추)후감상문"은 영영 물 건너 갈 듯하여 작금에 작성하여 봅니다.

사람 사는 냄새의 글 좋습니다. 뭐 다 같이 이 세월을 넘어가니 본문내용에 공감 합니다.

구구절절 옳고 사리에 맞는 말씀이라 따로 정감을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 ^^

조한욱 2015-02-18 06:27:59
답글

잘 읽었습니다.^^

이수영 2015-02-18 08:20:59
답글

저도 잘 봤습니다 ㅎ
선희님도 그렇지만 오빠분들도 대단하시네요
아무리 어려워도 무릅꿇고 앉는게 쉽지 않은 연배실텐데요...

권민수 2015-02-18 11:18:49
답글

동화책 보는느낌?

우용상 2015-02-18 18:45:41
답글

저도 어머님 돌아가신지 7년 되었습니다. 밑의 남동생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님을 당연히 제가 모시고 살아야 하는데, 아버님께서 며느리 눈치 보시기 싫다고 거절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아파트 단지로 이사오셔서 자주 뵙는 걸로 절충을 했습니다. 사실 제 아버님도 많이 까다로우시고 맞춰드리기 힘든 분이어서 모시고 살게 되면 여러가지로 많이 부딪히게 될 것 같았는데, 고모님들께서도 그런 사정을 아시는지라 제 집에서 함께 사시는 걸 극구 반대하시더라고요.

이제는 네 분이나 계시는 작은 아버님들도 명절때 오시지 않으니, 저희 네식구와 아버님, 남동생 이렇게 다섯명이 명절을 지냅니다. 예전에는 사람 북적이는게 싫었는데,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명절 기분이 나지 않습니다. 어머님 생각도 나고요.

오늘따라 어머님이 해주시던 음식들이 생각납니다. 전라도 진안 분이셔서 음식을 잘 하셨는데, 요즘 유독 어머님이 해주셨던 김치전, 비빔국수, 콩나물잡채, 말린 묵 볶음 같은 것들이 생각나네요.

어머님 산소에 가 볼때가 된 것 같습니다.

권민수 2015-02-18 20:05:40
답글

용상님 글을 보니 괸시리 울컥하네요.
어머니 살아계실때 좀 잘해드려야겟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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