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 년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했던 서울~
그 당시엔 선택하여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직업도 없어서,
공부도 하고 생계도 해결하기위해,
모신문 지국에서 신문배달일을 하게 됐습니다.
석간 신문이라 오후에 일을 하게 됐는데,
마지막 구역은 드문드문하지만, 전체에서 초중반까지 70% 구역이 촘촘히 이어지는 곳이라,
오직 도보로 이동하는게 더 적합했습니다.
300 여 부가 넘는 신문을 어깨끈을 하여 걸쳐 메면,
어깨가 축 늘어질 정도로 무거웠죠.
2 시 경부터 시작한 일은 해가 넘어서야 끝났는데,
당시 15,000 원 ~ 20,000 원 사이의 봉급을 받던 배달원들은 대부분이 객지생활이라,
그 돈으로 방을 얻어 자치를 한다는건 어림도 없었지요.
하여,
보급소 사무실 한 켠에서 밥을 해먹고,
잠도 여기저기 알아서 구부려져 자는 공동생활을 했습니다.
낙원지하상가 시장에서, 김치 500 원 워치를 사면,
허연 비닐봉지에 담아 너뎃 바퀴를 돌려 묶어주고는 했지요.
정부미쌀로 지은 누리끼리한 밥에다, 오로지 김치 하나로 이어진 식생활은,
영양의 불균형으로, 결국 소말리아 난민처럼 뼈만 앙상한 모습으로 변해갔죠.
이무렵 길거리 음식으로,
연탄불위에다 석쇠를 올려 쥐포를 구워 주거나 떡을 구워 주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고추장으로 볶은 떡볶이가 유행하기 시작 했습니다.
제가 지금도 떡을 잘먹지는 않지만,
유일하게 떡볶이는 좋아라 합니다.
이유는 그 허기지던 시절 떡볶이가 제 입맛을 돋구었고,
배고픔을 해결해줬던 유일한 간식이었기 때문이지요.
종로에서 청계천을 가로질러 걸쳐있던 세운상가..
그 아래 포장마차에서 팔던 왕떢볶이에 막걸리 한 잔.. 캬!
매콤한 왕떡볶이에 쌉싸름하고 걸쭉한 막걸리 한 잔은 환상의 궁합이었죠.
그 맛을 잊지 못해 서울을 떠난 이후에도,
볼일이 있어 서울을 방문하게 되면,
일부러라도 세운상가를 찾아 막걸리 한 병과 떢볶이 한 접시를 시켜먹곤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흘러 저도 어느덧 나이를 먹으니,
서울에 갈일도 드물어지고, 세운상가에 그 포장마차들이 그대로 있을지도 만무하고,
있다한들 한다름에 다시 달려갈 정도의 열정도 사그라져 버렸습니다.
이제...
머리 희끗 희끗한 마눌님이 제가 좋아한다고 떡볶이를 만들어 줍니다.
그나마 분식가게를 해본 경험이 있어 맛은 제법 좋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 옛날 청계천 세운상가 포장마차에서,
막걸리 한 잔 쭉 들이키며,
매콤하고 두툼한 왕떡볶이 한 입 쏘옥 베어 물던,
그 아스라한 옛추억의 기억은,
평생 제 머릿속 한켠에 영원히 남아 있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