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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다섯 되..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5-02-01 13:40:07
추천수 19
조회수   1,435

제목

쌀 다섯 되..

글쓴이

조창연 [가입일자 : 2014-08-08]
내용



1980 년 대 초반..

다니던 직장에 문제가 생겨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되었습니다,

앉아서 굶을수만은 없어, 생계를 위해 막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한 적이 있습니다.

다들 어렵게 지내던 시절이라,

일거리가 없어 하루 일하고 나면 이틀씩 쉬다보니, 생활은 늘 곤궁할수밖에 없었죠.

이무렵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군에서 제대를 하여, 저를 만나러 왔습니다.

친구도 딱히 할게 있었던건 아니기에,  제가 자취하고있던 집 근방에 방을 얻어 같은 일을 하게 되었죠.

벌이가 시원찮은것은 매일반이라 먹는게 부실하니,

저나 친구나 피골이 상접했었죠.

밥은 하루 한끼만 먹고, 국수를 삶아 끼니를 연명하니 그럴수밖에요..

이렇게 몆 개월을 보내던 중 저에게 직장이 생겨 친구를 떠나야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떠나기 3 일 전 저녁에..

친구와 막걸리잔을 부딪히며 제가 말했습니다.




"어차피 내가 가면 짐정리를 해야되니, 저기 쌀자루에 쌀 다섯 되 정도 남은거 너 주고갈께~ "




떠나는 날이 됐는데,

몆일간 일을 못하게되자 돈이 없는겁니다.

당장 버스를 탈 차비조차 없는 기막힌 상황을 접하게 되자,

저는 쌀 다섯 되가 담긴 자루를 들고 쌀가게를 찾아가 돈으로 바꿨습니다.

친구와 작별인사를 하면서,

쌀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쌀을 주고 가겠다는 약속은 결국 지키지 못했습니다.

피골이 상접한 친구를 뒤로 하고 버스를 타는데 마음이 참 무겁더군요.

이 일은 30 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두고두고 제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후 친구는 열사의 땅 리비아로 떠나, 수 년간 고생한후 귀국하여 결혼도 하고,

지금은 서울에서 장성한 남매와 남부럽지않게 잘살고 있습니다.




저역시 예전처럼 국수가 주식이 아닌,

국수는 어쩌다 별미로 찾아 먹을 정도로 먹는것만큼은 아끼지 않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무덥던 어느 여름날..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 갔습니다.

친구와 인사동거리를 거닐며, 예전 청소년기에 같이 그림을 감상하던 추억에 잠겨봤습니다.

북촌한옥마을을 돌아서 다시 인사동으로 접어 들었는데,

거리공연 등 볼거리와 먹거리 때문인지, 젊은청춘 선남선녀들이 구름처럼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어,

지나치는 행인과 어깨를 부딪힐정도로 복작복작 하더군요.

유유자적 한가로이 거닐던 예전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변방으로 밀려난듯한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어쨋거나 얼음우유를 갈아 만든 눈꽃처럼 빛나는 우유빙수도 사먹고, 재미난 구경도 많이 했습니다.

몆 시간을 걸었더니 배도 고프고 갈증이 나서,

종로 대로변에 있는 모빌딩의 수제돈까스점엘 들어갔습니다.

돈까스를 안주삼아 생맥주 몆 잔을 마시며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던 끝에, 제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예전에 말이지.. ㅇㅇ에서 고생하던 생각나냐?

나는 말이지.. 그때 너한테 쌀 다섯 되 주기로 하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게 두고두고 마음에 짐이 됐다.

지금이라도 이 얘기를 해야할것 같다.. 정말 미안했다.. "




친구가 말없이 빙그레 웃더군요.

그러면서,




"나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내가 생각이 나지 않는데 니가 맘에 둘 일이 없다.

잊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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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선희 2015-02-01 13:49:01
답글

사업한다고 떠나신 젊은 서방님을 잃을까 하여 어린 저만 데리고 서울 입성하신 우리어머니. 사실 고향에서는 종부요. 음식에 바느질에 못하시는 것 없던.. 분이었는데, 양식이 없어 남몰래 공사장에 나가 벽돌을 나르셨던 모양입니다. 근데 그 십장이란 사람이 임금을 안 주어서.. 쌀 떨어진 어느 신새벽 그 집으로 찾아가셨답니다. 그 집도.. 우리와 별 다를 바 없이 가난해 보이는데, 거기 누런 봉투에 쌀 같은 것이 보이길래.. 우리는 지금 쌀도 없다면서 그거라도 달라고 하셨답니다. 그 아내분.. 착했나 봐요. 선뜻 그 서너됫박 쌀 봉지를 내주어.. 그거를 가져와 아침 지으시며 혼자 우셨습니다. 쌀독에 쌀 떨어진 거.. 가장 무섭다는 말.. 시골 다섯가마를 넣던 뒤주가 대청마루에 딱 버티고 있었는데.. 그런 거 생각하면서도 아버지 원망 안 하시고.. 평생.. 잘하셔서. 시동생들이며.. 사촌 시동생. 그들 댁까지 엄마 참 좋아하셨습니다... 쌀 이란.. 거 지금도 저는 뿌듯하고 소중합니다. 참고로 전 20킬로 쌀통도 2개 입니다. 잡곡.. 하나는.. 쌀.. 쌀 넘 좋습니다.

조창연 2015-02-01 14:45:19

   
변선희님.. 장문의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쌀이 넘 좋습니다.
먹고 살만한 지금이지만 과거 어렵게 지내던 기억이 떠올라,
밥먹다가 밥 한 톨이라도 흘리게 되면,
줏어 먹습니다.. ㅎ ㅎ

염일진 2015-02-01 13:53:04
답글

눈물 젖은 빵이로군요

조창연 2015-02-01 14:45:50

    1진을쉰.. 제가 읽어봐도 그렇군요.. ㅎ ㅎ

bae0005@hanmail.net 2015-02-01 13:55:01
답글

드뎌~~~소리조아님 글을 보게 되네요~~잘 계시지요? 국밥에 빙그레 웃으시면서 여유롭게 음식 드시던 생각이 납니다
연락을 부탁 드렷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서...천안서 갈비대접 받았던거 갚아야 되는데......네이트에는 아이디가 저장 돼 있습니다.. 쪽지 남겨 드리겠습니다.....연락처는 전부 삭제 되었네요.....제로 행임도 잘 계시지요?

조창연 2015-02-01 14:46:26

    행운목님.. 오랫만이지요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너무 적조했습니다..^^
쪽지 주시면 답 드리겠습니다~

이민재 2015-02-01 13:57:53
답글

저도 집안 어르신에게 들은 얘기인데 어려운 시절에는 산으로 들로 야초, 나무뿌리 이런 것으루 연명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덕분에 그러한 곤궁한 처지까지는...

사람 먹고 사는 것이 참으로 무섭습니다. 이제 친구와의 가슴 아픈 일화는 내려 놓으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 때는 다 같이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어르신 친구분께서도 그때를 이해해 주셨으리라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만.

조창연 2015-02-01 14:47:08

    이민재님.. 그시절이야 어려운 생활을 하신분들이 많았죠.
민재님은 그리 곤궁하시지 않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제 친구도 그때일을 어렴풋이 기억할겁니다.
제 마음 편해지라고 덮어 주는것이죠.

bae0005@hanmail.net 2015-02-01 14:06:36
답글

잊어라~~하는 짧은 한마디는 배려이고 사랑이죠......본인은 정작 잊지 못할것 입니다.......그 배고프던 시절 , 막막한 시간이었을텐데......... 함 보듬아 드리지 그러셌셔요.? 어려운 시간에 외면당했단 생각~ 그보다 실망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조창연 2015-02-01 14:48:18

    행운목님.. 맞습니다 친구는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이라는걸...

김창훈 2015-02-01 17:06:39
답글

저도 비슷한 기억이 있습니다.
두고두고 짐이 되서 몇 번 그 친구를 찾아봤는데 연락이 안 되네요.
추억하며 만날 친구가 있다는 것은 좋은거죠.
친구분과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한 만남 가지시길 기원합니다.

조창연 2015-02-02 10:05:07

    김창훈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창훈님께서도 그 친구분과 꼭 연락이 되어 좋은 관계 유지되시길 바랍니다.

구행복 2015-02-01 18:20:29
답글

가난이라는 것을 몸으로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어색한 글.
하지만 먹을게없어 느꼈던 배고픔이라는 것을 몸으로 경험했던 사람들에게는 아주 많이 공감되는 글.
저도 아주 많이 공감합니다.

따지고보니 저희 세대는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안고 태어났나봐요.
어린시절 돌이켜보니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굶주림, 배고픔, 추위, 가난, 찢어져 군데군데 기운 겨울내의, 콧물 질질, 머리에 버짐이 생겨 마늘을 짖이겨 바르던 기억...

그리고 젊은 시절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겨울에도 따뜻한 나의 집, 자가용, 지천에 널린 맛있는음식, 언제든 떠나기만 하면 되는 해외여행, 무지하게 따뜻한 겨울 옷, 오디오...
물질적 축복은 무지하게 받고 있는데 웬지 2%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좋은 글 잘 읽었고 멋진 친구분과의 우정 잘 이어 나가세요.

조창연 2015-02-02 10:06:23

    구행복님.. 제 글이 공감되신다는 말씀은 저와 비슷한 세대로 이해하겠습니다.^^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 풍요해진건 맞는데,
지금 젊은 세대가 마냥 행복해보이지만은 않은건 정신적으로 더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 아닌가합니다.
이는 행복님이 말씀하신 그 2%이지 싶기도 하고...

새로운 한 주.. 행복님의 성함처럼 행복하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종호 2015-02-01 21:50:30
답글

제가 지금도 수제비를 잘 안 먹습니다 희안하게 수제비를 먹으면 얹히고 체합니다.....
지겹게 먹었던 수제비....

콩나물에 종이봉지에 사온 됫박 쌀 한움큼 넣고 한강수로 만들어 만든 콩나물죽....
지금은 술마시고 칠렐레된 다음날이면 마님께 만들어 달라고 하는 술병 치료제입니다.

아껴먹던 밥이 쉬어도 버리지 못하고 물에 헹구어 먹던 그 시절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우리 4남매 끼니 거르지 않게 하려고 남의 집 식모살이까지 하셨던 울 엄니를 생각하면
평생을 갚아도 못 갚을 겁니다...

지금은 차고 넘치는 음식들...전 지금도 식당엘 가서 아무리 배가 불러도 밥을 남기는 적은 없습니다

조창연 2015-02-02 10:07:18

    종호엉아.. 종이봉지하니까 옛날생각이 새록새록합니다...
쌀집에서 됫박쌀을 사면 풀로 붙여서만든 누리끼리한 종이봉투에 담아주곤 했었죠.
지금이야 20kg 쌀 한포대씩 사오지만 그 시절엔 됫박쌀 참 많이도 샀습니다.
그런 시절이 있어 오늘날 더 알차고 값지게 살아가는게 아닌가합니다.
식사 잘챙겨드시고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이종호 2015-02-02 14:59:54

    깔끔쟁이 창연님도 건강 잘챙기시구 담배도 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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