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년 대 초반..
다니던 직장에 문제가 생겨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되었습니다,
앉아서 굶을수만은 없어, 생계를 위해 막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한 적이 있습니다.
다들 어렵게 지내던 시절이라,
일거리가 없어 하루 일하고 나면 이틀씩 쉬다보니, 생활은 늘 곤궁할수밖에 없었죠.
이무렵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군에서 제대를 하여, 저를 만나러 왔습니다.
친구도 딱히 할게 있었던건 아니기에, 제가 자취하고있던 집 근방에 방을 얻어 같은 일을 하게 되었죠.
벌이가 시원찮은것은 매일반이라 먹는게 부실하니,
저나 친구나 피골이 상접했었죠.
밥은 하루 한끼만 먹고, 국수를 삶아 끼니를 연명하니 그럴수밖에요..
이렇게 몆 개월을 보내던 중 저에게 직장이 생겨 친구를 떠나야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떠나기 3 일 전 저녁에..
친구와 막걸리잔을 부딪히며 제가 말했습니다.
"어차피 내가 가면 짐정리를 해야되니, 저기 쌀자루에 쌀 다섯 되 정도 남은거 너 주고갈께~ "
떠나는 날이 됐는데,
몆일간 일을 못하게되자 돈이 없는겁니다.
당장 버스를 탈 차비조차 없는 기막힌 상황을 접하게 되자,
저는 쌀 다섯 되가 담긴 자루를 들고 쌀가게를 찾아가 돈으로 바꿨습니다.
친구와 작별인사를 하면서,
쌀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쌀을 주고 가겠다는 약속은 결국 지키지 못했습니다.
피골이 상접한 친구를 뒤로 하고 버스를 타는데 마음이 참 무겁더군요.
이 일은 30 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두고두고 제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후 친구는 열사의 땅 리비아로 떠나, 수 년간 고생한후 귀국하여 결혼도 하고,
지금은 서울에서 장성한 남매와 남부럽지않게 잘살고 있습니다.
저역시 예전처럼 국수가 주식이 아닌,
국수는 어쩌다 별미로 찾아 먹을 정도로 먹는것만큼은 아끼지 않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무덥던 어느 여름날..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 갔습니다.
친구와 인사동거리를 거닐며, 예전 청소년기에 같이 그림을 감상하던 추억에 잠겨봤습니다.
북촌한옥마을을 돌아서 다시 인사동으로 접어 들었는데,
거리공연 등 볼거리와 먹거리 때문인지, 젊은청춘 선남선녀들이 구름처럼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어,
지나치는 행인과 어깨를 부딪힐정도로 복작복작 하더군요.
유유자적 한가로이 거닐던 예전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변방으로 밀려난듯한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어쨋거나 얼음우유를 갈아 만든 눈꽃처럼 빛나는 우유빙수도 사먹고, 재미난 구경도 많이 했습니다.
몆 시간을 걸었더니 배도 고프고 갈증이 나서,
종로 대로변에 있는 모빌딩의 수제돈까스점엘 들어갔습니다.
돈까스를 안주삼아 생맥주 몆 잔을 마시며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던 끝에, 제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예전에 말이지.. ㅇㅇ에서 고생하던 생각나냐?
나는 말이지.. 그때 너한테 쌀 다섯 되 주기로 하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게 두고두고 마음에 짐이 됐다.
지금이라도 이 얘기를 해야할것 같다.. 정말 미안했다.. "
친구가 말없이 빙그레 웃더군요.
그러면서,
"나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내가 생각이 나지 않는데 니가 맘에 둘 일이 없다.
잊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