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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아홉 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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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1 04:3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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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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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아홉 잔..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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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선 [가입일자 : 2009-01-25]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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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마다 장날이 돌아오면 소년의 집은 절간에 초파일이 닥치듯
정신없이 북적거렸다.
여기 저기 장터를 돌며 물건을 파는 장사치들이 경운기에 옷가지며 생필품,
먹거리들을 가득 싣고 파시한 이전 장터를 떠나 식당을 겸하는 소년의 집으로
밤 늦게 시끌벅적한 딸딸이 소리를 텅 빈 장터에 쏟아 부으며 들어서면
소년의 인상은 저도 모르게 찌푸려지곤 했다.
거친 장돌뱅이들에게 방을 내주는 것도 마뜩치 않은데다
음식수발을 하느라 바삐 움직이는 어머니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갈 곳을 찾지 못하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온 식구가 한 방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 짐을 풀어야 하는
장사꾼들 때문에 졸린 눈을 꿈벅이며 일어나야 하는 일과는 소년에겐
악몽과도 같았다.
그치들은 마술사 같았다.
경운기 위로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옷가지들을 끌어 내려 정해진 자리에
빠른 손놀림으로 펼치는 광경은 다시 봐도 언제나 신기하기만 했다.
빨강 파랑 울긋불긋한 옷가지들이 하나하나씩 옷걸이에 걸리거나
가지런히 놓여지는 광경은 흡사 개미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과
다를 바 없었다.
장이 열리고 사람들이 하나 둘 장터로 모여들면 어머니는 덩달아
손놀림이 바빠지며 전날 준비한 국수가락이며 비빔밥 재료들을 꺼내고
육회를 썰었고 소년은 홀 가장자리에 멍하니 앉아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다.
이른 아침부터 술을 찾는 사람들이 흙냄새와 시끄러운 고성을 섞으며
하나 둘 테이블을 채우면 소년은 그 하루가 어서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어머니의 잔심부름을 쫓아다녔다.
복작거리던 식당이 잠시 조용해지던 오후 무렵
두어명의 늙수그레한 남녀 일행이 불콰한 막걸리 냄새를 풍기며 들어서서
소주를 시키는 광경을 지켜보던 소년은 아무 생각없이
국수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는 그들의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루한 몸을 의자 모서리에 기댄 채, 커다란 됫병으로 잔 술을 따라마시는
일행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년은 됫병의 술이 한 잔씩 소주잔에 담겨질 때마다
속으로 헤아리고 있었다.
떠들썩한 손님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설 즈음 소년의 귀는
음식값을 계산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유심히 듣고 있었다.
" 국수 두 그릇에 소주 몇 잔 드셨어요?"
"다섯 잔 먹었어."
"엄마. 저 손님들 아홉 잔 먹었는데."
"아니 우리가 몇 잔 먹었는 지 니가 어떻게 아냐?"
"제가 세었거든요. 분명히 아홉 잔인데."
"이 쪼그만 자식이 어른들한테 사기치고 있네."
"아니에요. 제가 분명히 세었는데."
"아줌마! 장사를 이따구로 할거야. 어린새끼가 못하는
거짓말이 없네. 싸가지 없는 자식!"
"미안해요. 애가 잘못 봤나 보네요. 다섯 잔 값만 주세요."
"그래도 그렇지 어린자식이 뭘 안다고. 쯧쯧."
소년은 억울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일인데 어떻게
자기가 먹은 분명한 잔 수를 속이는 지 분통이 터졌다.
유일하게 믿어 줄 어머니를 바라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돌아서 있었다.
다시 소년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가는 붉어져 있었고
한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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