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나이를 엄청 많이 먹은 사람은 아니지만,
산간벽지에서 태어나 자라다보니 좀 촌스러운데가 많습니다.
저두 잘몰랐지만 찾아보니,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이 1963 년 9월 15 일, 삼양식품에서 중량 100g에 10 원이라는 가격으로 출시했다는군요.
제가 라면을 처음 맛보게 된게 6~7 세 무렵으로 기억되는데, 아마도 가격이 20 원인가 했었던듯 합니다.
당시 20 원은 옥수수따고 감자 고구마 캐먹던 산골 사람들에게는 작은 돈이 아니었기에,
아이들에게 라면 사먹으라며 선뜻 20 원을 건네주는 부모는 거의 보기 드물정도로 귀한 값이었습니다.
기차도 전기도 없던 산골에서의 생활은,
그날 그날 배곯지않고 하루 하루를 넘기면 그걸로 다행이었지요.
양말이란것도 국민학교 졸업후 부모님을 따라 도회지로 이사하면서 처음 신어 봤습니다.
산골아이들이 이발을 하는날은 일년에 두 번 추석과 설날입니다.
산골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립니다.
검정고무신이 낡아 찢어지면 어머니께서 검정실로 꿰메주십니다.
설날을 이틀 앞둔 시점에..
이발을 하려고 마을에서 15 분 거리에 있는 윗마을 이발소를 향해 갑니다.
길 중간쯤에 있는 시냇물을 건너야 하는데,
얼음을 딛으며 조심조심 건너다보면 고무신이 미끄러워 발을 헛딛게 되기도 합니다.
주르륵 미끌어지면서 발이 빠지면 찢어진 검정고무신 사이로 영하의 냇물이 마구 마구 스며 들어옵니다.
금새 발이 얼어 살을 에이지만,
다시 집으로 가면 바보같이 물에 빠진다며 부모님한테 혼날까봐,
울면서 이발소를 향해 갑니다.
이발소에 도착합니다.
산골의 겨울은 대체적으로 한가합니다.
할일없는 몆 몆 마을 어르신들이 이발소에 모여앉아,
누구네 집 소가 송아지를 낳았다는둥 아무개 집 아들이 몆 날 몆 일 장가를 간다는둥 담소를 나누곤 하지요.
난로에 조개탄을 때어 훈훈하기까지 하니, 어르신들이 시간을 보내기엔 아마도 더없는 장소였을 겁니다.
담소를 나누다보면 누군가의 입에서 호기있게,
"오늘 내가 한 턱 내지~ " 하며,
옆에 있는 구멍가게로 가서 꽁치통조림, 라면, 사홉짜리 유리병에 든 소주를 사오십니다.
이발소주인이 냄비와 김장김치를 내오면,
불빛이 벌건 난로위에 물을 담은 냄비를 얹고, 그 안에 김장김치를 뚝뚝 썰어담은뒤 통조림속 꽁치를 넣고 팔팔 끓입니다.
찌게가 끓으면 라면 두 개를 넣고, 스프로 간을 한 후 다시 한소큼 끓입니다.
냄새가 코를 찌르지만, 감히 어르신들앞이라 언감생심 먹고싶다는 말을 못합니다.
이발을 마치고 내려오자,
어르신 한분이 말을 건네십니다.
"얘야! 너 모래변사는 아무개 아들이지? 이리 와 이것 좀 먹어봐라~ "
하시며 젓가락을 주십니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맛!
천국에 가면 이런 맛을 볼수 있을까?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정도로 기가 막히고 황홀한 맛이었습니다.
못먹고 못입던 그시절...
그때 맛본 몆 젓가락의 라면맛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제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아,
성인이 된 후에, 어릴적 레시피 그대로 몆 번 끓여 먹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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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단한번도 그 때의 그 맛을 한번도 재현해보지 못했습니다.
예전 어르신이 군에 갔다와서 들려주는 얘기를 들어보면,
군시절 너무 배가 고파, 식당주방에 몰래 들어가 누룽지를 훔쳐먹다 걸려 직싸게 얻어 터졌는데...
그 때 그 누룽지 맛이 최고였답니다.
아무래도 그 때 그 맛이 안나는걸 보면,
제 배가 너무 부른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