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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친구 이희수님이 올린 글 중에서.....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4-12-18 00:38:27
추천수 22
조회수   1,503

제목

페이스북 친구 이희수님이 올린 글 중에서.....

글쓴이

한승호 [가입일자 : ]
내용
삼대아승지겁을 줄여서 일념(一念)으로 삼고 7일을 늘려서 일겁(一劫)을 만드는 것 따위도 오히려 별 것 아니거늘,



더구나 삼천대천세계를 시방 밖으로 내던지고 수미산을 겨자씨 속으로 집어넣는 것쯤이야 집안에서 일상 차 마시고 밥 먹는 정도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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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tra76@naver.com 2014-12-18 00:40:06
답글

이희수
지금 곧바로 끊어버려 쉽게 꿰뚫으려고 한다면, 다만 몸과 마음을 놓아버려 텅 비어 신령하고 고요하면서도 비추어서, 안으로는 자기라는 견해를 잊고 밖으로는 가는 티끌마저도 끊어져서 안과 밖이 환하여 오직 한결같아야 하니, 오직 하나의 진실뿐입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40:58
답글

이희수
만약 이 한 덩이의 심전지(心田地)를 믿어 도달할 수만 있다면, 하나를 깨쳐 일체를 깨치며 하나를 밝혀 일체를 밝힙니다. 그렇게 되면 곧바로 하는 것마다 모두 철두철미하여 대 해탈 금강의 바른 몸입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41:22
답글

이희수
하는 일마다가 모두 평등하여 나도 없고 집착도 없습니다. 오묘한 지혜가 환하게 드러나서 본체에 사무쳐 통하니, 착한 행동이 어찌 오묘하지 않겠습니까. 마음 깨치는 데만 애쓴다면 반드시 속지 않을 것입니다. 깨달음을 목표 삼을 뿐 느리거나 더딜까를 의심하지 마십시오.

sutra76@naver.com 2014-12-18 00:41:46
답글

이희수
서로 만나기 이전, 생각을 움직이기 이전의 상태에서 단박에 알아차렸다면, 그것을 그냥 그 사람에게 남겨둘 것이요, 다시 형상과 문채로써 알음알이를 지어서는 안됩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42:41
답글

이희수
엄양존자가 조주스님에게 물었습니다.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땐 어떻게 합니까?”
“놓아버리게.”
“한 물건도 가져오질 않았는데, 무엇을 놓아버리라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보아하니, 아직 놓아버리지 못하였군.”
엄양존자는 마침내 크게 깨달았습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43:06
답글

이희수
이로부터는 설사 만세가 지나더라도 움직이지 않고 그저 무심한 경지만 지키면서, 초연히 홀로 체득하여 다시는 상대가 없습니다. 상대가 있다면 양쪽이 생겨서 갑자기 너와나, 이익과 손해가 있게 되어 참된 경지를 밟을 수 없습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43:28
답글

이희수
이 도는 그윽하고 깊어 천지가 아직 형성되기 전, 중생과 부처가 나뉘지 않은 데까지 다하고 담연히 고요하여 모든 변화의 근본이 됩니다. 애초에 있고 없음이 아니어서 티끌 인연에 떨어지지 않고 찬란히 빛나 그 끝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43:48
답글

이희수
염화미소와 바늘을 던지고 불자를 들었던 것과 지팡이를 꽂고 선판(禪板) 궤안(机案)을 거절했던 일과 눈을 깜짝이고 눈썹을 드날렸던 일 등은 모두가 형식적인 도리와 말을 빌린 주장을, 별안간 지나치는 전광석화와도 같이 신속히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44:11
답글

이희수
하나를 깨치면 모두를 깨치고 하나를 밝히면 일체를 밝힌 다음에 훤출하게 통달하여 생사문제를 투철히 해결하여 범부를 뛰어넘어 성인의 경지에 들어갑니다. 높고도 원대한 식견을 쌓고 평소에는 칼끝을 노출하지 않다가 무심하게 돌출했다하면 여러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44:32
답글

이희수
이 무심한 경계, 즉 사념 없는 진실한 종지는 요컨대 매섭고 영리한 사람만이 비로소 얻을 수 있습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셔서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사람들로 하여금 견성성불하게 하였을 뿐입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45:01
답글

이희수
오조(五組)스님께서는 항상 물으셨습니다. “과거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현재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미래의 마음도 얻지 못한다. 이 세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필경 마음은 어느 곳에 있느냐?”

sutra76@naver.com 2014-12-18 00:45:20
답글

이희수
상당한 사람들이 죽는 날에 가서는 손발을 허우적거립니다. 이는 대체로 평상시에는 평온했으나 내내 거칠게 들뜨면서 티끌 인연을 따라 뒹굴다가, 시절이 도래하면 목이 마르자 우물을 파는 격이니, 그래서야 어떻게 해 내겠습니까.

sutra76@naver.com 2014-12-18 00:45:41
답글

이희수
조사가 서쪽에서 오셔서 오직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교 밖에 따로 전한다” 또는 “바른 도장을 외길로 전하며 언어문자를 쓰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심은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쉬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46:01
답글

이희수
얻을 것이 없는 자리에서 얻고, 얻더라도 역시 얻는 것이 아니어야만 진실한 얻음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깨달음도 있고 얻음도 있게 되어 끝내는 사이비 반야[相似般若]에 떨어지니 그것은 구경[究竟]이 아닙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46:21
답글

이희수
마음 그대로가 부처이며 부처 그대로가 사람이어서 사람과 부처가 차이가 없어야 비로소 도라 했으니, 이는 진실한 말입니다. 마음만 진실하면 사람과 부처가 모두 진실합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46:42
답글

이희수
만약 털끝이나 겨자씨만큼이라도 주관과 객관, 나와 남을 구별하면 즉시 막혀서 영원히 뚫지 못하리라. 이는 이른바 “무명(無明)의 참 성품이 부처의 성품이며, 허깨비같이 부질없는 몸이 바로 법신이다”한 것이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47:05
답글

이희수
맹렬했던 처음의 발심을 변치 말고 계속 이어지게 해서 철저한 곳에 도달하면 자기의 도업(道業)이 완성되지 못할까 근심하지 않아도 된다. 대장부라면 모름지기 향상의 대기대용을 알아서 편안하고 즐거워야 비로소 멈출 수 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47:30
답글

이희수
무심을 보임(保任)하면 끝내는 부처도 존재하지 않는데 무엇을 중생이라고 하겠으며, 보리도 없는데 무엇을 번뇌라 부르겠는가. 홀연히 영원히 벗어나 시절을 따라 복을 받아들여 밥을 만나면 밥을 먹고 차를 만나면 차를 마신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47:50
답글

이희수
인간 세상에 노닐더라도 모든 인연을 허깨비로 보아서 잡는 것마다 주인이 되라. 인정을 따르지 말며 나다 남이다 하는 생각을 끊고 알음알이를 벗어 대뜸 견성 성불하여 묘한 마음을 곧바로 가리키는 것으로 계단을 삼아야 한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48:10
답글

이희수
도는 본래 말이 없으며 법은 본래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말없는 말로써 생겨남이 없는 법을 드러내면 결코 제2의 것(第二頭)이란 없다. 잠깐이라도 쫓아가서 붙들려고 하면 벌써 빗나간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48:36
답글

이희수
조사가 서쪽에서 오시어 단지 이 일만을 창도하시면서 말 밖에서 체득하고 일 밖에서 알아차리는 것만을 귀하게 여겼을 뿐이니, 스스로 상상의 근기가 아니라면 어떻게 대뜸 알아차릴 수 있으랴.

sutra76@naver.com 2014-12-18 00:48:59
답글

이희수
모름지기 가만히 계합하여 스스로 잘 간직해서 마침내 쇄쇄낙락할 수 있으면 다시 무슨 열반을 증득한다느니 생사를 깨친다느니 하는 말이 있을 수 있으랴. 다 군더더기다. 그렇긴 하나 이런 말도 지극한 도리로 삼지 말아야 부처의 병통과 조사의 병통을 비로소 면하리라.

sutra76@naver.com 2014-12-18 00:49:23
답글

이희수
대장부가 마음의 요처를 참구하려 한다면 어찌 일정한 한계를 세우랴. 다만 깊은 신심을 갖추고 한결같이 앞을 향한다면 실제의 경지를 밟지 않을 자는 결코 없으리라. 매일 새롭고 나날이 참신하며 매일 덜어내고 나날이 덜어내어 한 걸음 물러나 밑바닥까지 이르면 될 뿐이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49:45
답글

이희수
조사와 모든 부처님이 외길로 전하고 밝혀 보이신 것은 사람마다 제 발 아래 본래 있는 성품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성인, 범부의 기세계(器世界)와 6근, 6진인 정보(正報)는 오랜 겁도록 끊어진 적이 없었으나 각자 사람마다 망상으로 티끌경계를 반연하여 장애에 가리웠을 뿐입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50:05
답글

이희수
근본의 큰 역량을 발현해 용맹하게 닦아 지녀서 한 생각도 내지 않고 앞뒤가 끊기게 되면, 단박에 이 마음을 분명하게 믿고 이 자체를 분명하게 보아서 허공같이 넓고 태양처럼 밝아집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50:25
답글

이희수
주관, 객관이 나뉘지 않고 한량을 짓지도 않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단박에 철저하게 깨치면 마음 그대로 부처임을 꿰뚫을 수 있습니다. 따로 부처라 할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적나라하게 텅 비고 오묘하고 분명하게 통하여 절대로 의지하거나 기댐이 없습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50:45
답글

이희수
이제 힘을 덜려 한다면 망상의 외연과 의심의 망정을 쉬어 깨끗이 다한 곳이 바로 자기가 생사를 투철히 벗어난 곳임을 아십시오. 그저 이것이 바로 금강권, 율극봉이니, 반드시 이 자리에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51:06
답글

이희수
불조의 종승(宗乘)에서는 단도직입만을 힘쓸 뿐입니다. 마치 큰 코끼리가 강을 건너듯 굉장한 기세로 밑바닥까지 사무쳐야지 만약 조금이라도 주저했다가는 천 리 만 리 어긋나 어찌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51:25
답글

이희수
마치 통 밑이 빠진 듯 가슴이 깨끗하며, 의심의 망정이 다하고 훌륭하다는 생각도 모두 잊어서 자연히 근본이 환하게 밝아지면 옛사람들과 똑같이 증득하여 일찍이 간격이 없어집니다. 바로 이것이 진리에 들어가는 문이며, 마음 깨닫는 법칙입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51:46
답글

이희수
처음 발심했던 마음처럼 한결같이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의 칠통팔달한 자재력을 가지고 의심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면, 스스로 불조를 초월하고 생사를 투철히 벗어나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52:11
답글

이희수
“지극한 도는 어려움 없으니 그저 이것저것 가리지 않기만 하면 된다”고 한 이 말은 진실하다 하겠습니다. 조금이라도 가림이 있다면 그것은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마음이 생기고 나면 나와 남, 사랑과 증오, 좋고 싫음, 취하고 버림이 쑥쑥 일어납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52:38
답글

이희수
지극한 도의 요점은 마음을 쉬는 데 있을 뿐이니 마음을 쉬고 나면 모든 인연이 쉬어버립니다. 허공같이 툭 트여 조금도 의탁함이 없는 이것이 진실한 해탈인데 어찌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sutra76@naver.com 2014-12-18 00:53:01
답글

이희수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지금 그대를 위해 이 일을 보임하오니 끝내 헛된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야말로 불지견(佛知見)의 연원을 사무치면 모두가 실제 아님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된 경지를 밟게 되면 모든 행동거지가 다 헛된 데 떨어지지 않습니다.

sutra76@naver.com 2014-12-18 00:53:21
답글

이희수
도를 배우는 이가 이미 지향하는 목적이 있다면 마땅히 힘써 옛사람과 짝이 되어 마음 깨칠 것을 기약해야만 합니다. 참된 경지를 밟게 되면 하는 것마다 모두 근본자리로 돌아가 모든 성인도 그를 가두지 못하며, 알음알이가 다 없어지고 잘잘못을 모두 벗어납니다.

이승규 2014-12-18 09:36:03
답글

기독교가 되었건, 불교가 되었던, 어떤 종교에서든 진정한 깨달음이라는 것을 얻은 사람이라면...

저렇게 많은 주절거림이 있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쩝~

홍성욱 2014-12-18 10:13:53
답글

승호님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에 안쓰신 이유는 끊어 읽어야 되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요?

sutra76@naver.com 2014-12-18 11:50:34
답글

승규님이 깨달으시면 더 멋진 글을 아주 짧게 써 주세요~ ^^

성욱님.. 다른 이유는 없구요.. 사실 본문글만 올리려다가 다른 글들도 올린것이고 각각의 글이 다른 날짜에 따로 올라온 것 이여서 리플로 달아 보았습니다.... ^^

jbh12044@hanmail.net 2014-12-18 17:26:57
답글

깨달아 버리면 모든 것에 대입해서 다 관장할수 있기 때문에
한 마디로도 할수 있고 천마디로도 할수가 있지 않을까요...?

여튼 좋은글 잘봤습니다. ^^

sutra76@naver.com 2014-12-19 00:07:26
답글

봉희님 감사합니다.~ 좋은의견 이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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