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제 덕유산에 다녀왔습니다.
남편 고교의 가족산행에 참가한 것이었는데, 솔직히 결혼하고 처음의 등산이었습니다.
그전에 산에는 갔습니다만 대개 산 입구에서 사진이나 찍고 밥이나 먹고 오거나,
산에 오르기로 하고도 엄살을 부리고 중간에서 하산하는 탓에 남편은 아예 등산하면 저를 빼버렸었는데,
어제 처음 용기를 내어 가게 된 것이
그 덕유산은 가족등산 코스라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며 아주 살살 걸어내려오는 코스라는 말에
현혹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막상 등산을 가려고 하니 등산복도 없어서, 등산복을 사려다가 안 가려고 마음 먹은 탓에 옷도 남편의 헐렁한 옷을 얻어 입고, 등산화 까지도 남편것에 양말을 두어켤래 껴 신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곤돌라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갈 때 안개처럼 비가 내리고 구름이 산허리를 감싸도는 모습은 사실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곤돌라 아래로는 사람의 팔만큼 큰 고사리들이 자라있으며 군데군데 자작나무들이 하얀 나뭇기둥을 드러내고 서 있는 모습들이 너무 그림같았거든요.
그런데 정상에서 계단을 오르는데 벌써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간신히 향적봉에 올라 사진을 찍고, 남편 동기들은 양주 한병을 따서 건배를 하고 뭐 그런 중에 저도 차를 마시고 내려오기 시작하는데, 무슨 길이 그리 길고 긴지, 거기에 길은 진흙 투성이에, 간수가 흐르고, 마치 그 등신불이라는 소설에서 그 주인공 남자가 한 밤중 스님을 따라갔다던 바로 그 길처럼 길 같지도 않은 돌덩이길 이었습니다.
물론 군데군데 고사목과 주목이 어우러져 아름답게 서 있는 풍경들이 위안이 되기는 하였지만, 무려 다섯 시간을 내려오는데, 척추에 문제가 좀 있는 저로서는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하더군요.
남편 친구들은 저를 생각하고 제 뒤에서 따라 오는 탓에 쉬지도 못하고 걸었고, 그들이 혹시 사진이라도 찍으면 얼른 앞서서 가려고 더 서둘러 내려갔지만 곧 저는 앞에서 걸리적 거리게 되고, 마침내 좀 앞서 가라고 했지만
후발을지지 받았노라면서 그들은 내 뒤를 굳건히 지켜주었습니다~흑.
정말 부담 백배였습니다. 내려가는 길 3.7킬로가 그렇게 긴 줄 정말 몰랐습니다. 내려오면서 별별 생각을 정말 다 했습니다. 여기서 쓰러진다면 어떻게 하나? 그 부끄러움을 어쩌나......, 암튼 온갖 힘을 다 내어 백련사까지 내려왔더니, 글쎄 말입니다. 거기서 5킬로를 더 걸어야 밥을 먹고 차를 탈 곳이랍니다~흑.
그 곳에서 저는 주저 앉았습니다. 남편은 이미 저를 너무나도 잘 파악하였고, 남편 친구분도 이미 파악을 마친 상태라 때 마침 전화가 와서 그 곳에는 차가 못 들어가는 곳이지만 사고가 발생했다는 핑계로 차를 들여보냈다 합니다.
그런데 차는 삼십분이 지나도 안 오더니, 트럭 하나가 왔는데, 바퀴가 나뭇잎에 걸려 올라오지도 못하고 고무타는 냄새만 나고, 한참을 씨름하다가 지나는 청년들이 어찌어찌 밀고 갖은 수를 다 써서 겨우 올라와 차를 돌려 저를 태워주었습니다.
민폐가 이런 민폐가 없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음식점에 간 저를 남편 친구들이 박수로 맞아주었고 부끄럽고 창피해서 쥐구멍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남편 친구들은 남편에게 저에게 우선 아주 좋은 등산화를 사주라고 압력도 넣어 주었으며 자주 오라고 격려를 해주는 등 완전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이상한 용기가 생기고, 다음엔 정말 산에 정식으로 도전해보고 싶어지더라구요. 그리고 온몸은 쑤시지만 오늘 열심히 집안 일을 했으며 정신은 아주 맑고 개운합니다. 산은 역시 좋습니다~